하이닉스 직원 '돈자랑'에 뜻밖의 '기부릴레이' 확산, 왜?

입력 2026-02-06 17:25:15 수정 2026-02-06 17: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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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하이닉스에 다니는 한 직원이 세종의 한 보육원에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기부해 화제가 되고 있다. 블라인드 갈무리
SK 하이닉스에 다니는 한 직원이 세종의 한 보육원에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기부해 화제가 되고 있다. 블라인드 갈무리

AI 반도체 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1억대 성과금이 예상되는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의 보육원 기부 사연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며 기부 릴레이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출발점은 최근 SK하이닉스 직원 A씨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오늘 자랑 좀 할게. 나 돈 좀 쓰고 왔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는 글에서 세종시 조치원에 위치한 영명보육원에 피자 10판과 과일, 간식류 등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A씨가 공개한 사진에는 피자와 견과류, 딸기·샤인머스캣·귤 등 과일이 담겨 있었다. 블라인드는 직장 이메일 인증을 거쳐야 가입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게시글에는 작성자의 소속 회사가 표시된다.

A씨는 "오늘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소비를 하고 왔다"며 "(보육원) 아이들이 견과류를 많이 못 먹는단 얘기 듣고 견과류도 종류별로 사서 전달했다"고 했다. 이어 "학창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그때 취업하고 자리 잡으면 꼭 보육원에 기부도 하고 맛있는 거 사서 보내준다고 다짐했는데 그거 이루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기 전에 행복한 마음으로 장 보고, 맛있는 걸로 사주려고 과일도 맛보고 신경 써서 고르고, 근데 갔다 오니까 행복하면서도 너무 슬픈 그런 복잡한 마음"이라며 "차 타고 집에 오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건지 모르겠다. 내가 위로를 받고 온 건가 싶고 그냥 아이들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게 아닐까 봐 속상하다"고 했다.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고 밝힌 A씨는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돈을 돈답게 쓴 기분이다. 혹시나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으면 한번 도전해 보라"며 "남에게 베푼다는 게 꼭 부자들만 하는 건 아니다. 봉사라는 게 내가 위로를 받고 온 기분이라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 복잡한 심정이 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 게시물은 조회 수 8만6천회를 넘기고 댓글도 600개 이상 달리며 큰 관심을 받았다.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A씨는 지난 3일 다시 글을 올려 기부 참여를 독려했다. 그는 "이슈가 된 김에 아이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고 싶어서 다시 글 쓰게 됐다"며 "보육원 원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현재 애들이 쉴 곳이 마땅치 않아서 학업보다는 핸드폰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더라"고 전했다.

이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리모델링해 주려고 모금 활동을 하시는데, 백원 천원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면 아이들에게 좀 더 빠르게 휴식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염치 불구하고 또 글을 남긴다"고 밝혔다.

A씨는 "소액이지만 나도 기부에 동참했다"며 30만 원을 송금한 화면과 모금 계좌를 공개했다. 또 "얘기 듣기로는 4천만원 모금하시는데 지금까지 1천만원밖에 모금이 진행 안 됐다고 한다"며 "5월까지 기부금을 모아 보고 만약 부족하면 내가 휴가 내서 반 셀프 인테리어로 발품 팔아서 개별 업자들에게 견적 받고 진행해서 2천500만원까지 줄여 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거든 우리 어른들이 으쌰으쌰해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자"고 호소했다.

기부 릴레이. 블라인드
기부 릴레이. 블라인드

이후 댓글에는 '기부 인증 릴레이'가 이어졌다. 대한항공, NC소프트, NH농협은행, KCC, 한국조폐공사, 브로드컴, 공무원 등 다양한 직장인들이 기부 인증에 동참했고, 다른 SK하이닉스 직원들도 참여했다. 한 변호사는 "덕분에 방구석에서 편하게 기부할 수 있었다"며 "무임승차하는 것 같아 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 달 사건 수임하면 추가로 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영명보육원에 따르면 A씨의 기부 독려 이후 현재까지 약 2천100만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지난해 12월부터 모금을 시작했지만, A씨의 게시글 이후 문의와 후원이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이권희 영명보육원 원장은 조선닷컴을 통해 "며칠 사이 80분 정도가 1만~30만원 금액을 보내 주셨다"며 "원래는 기부금이 다 모이는 데 2년 정도는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속도라면 금년 말쯤에도 도서관 리모델링 착수가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또 "보육원에 도서관 같은 공간이 없다 보니까 아이들이 방학에 하루 종일 휴대전화 하고 게임하고 이런 모습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아이들이 카페 같은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취미 활동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며 "예상 외로 호응이 좋아서 너무 감사하다. 기적 같은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