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기생과 풍류보다 더 좋은 '승기악탕(勝妓樂湯)', 도미

입력 2026-02-05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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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도미는 행운을 상징하는 물고기이다. 음식을 먹으며 행운까지 맞이한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러나 행운은 그저 오는 게 아니다. 수심 200m의 수압을 견딘 도미의 인내가 담겨있다. 그리하여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한 거다.

도미는 '백어(白魚)의 왕'이라 칭한다. 예전 제례나 연회에는 반드시 비늘 있는 생선을 차렸다. 비늘은 선비의 기개나 무사의 갑옷을 상징하며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였고, 흰 살은 신성함으로 보았다. 도미의 수명을 20~40년으로 보는데 어류 중 '장수' 물고기이다. 또한, 도미 대가리 부분이 가장 맛있다는 데서 '어두일미(魚頭一味)'가 유래되었다.

옛 문헌 속 도미는 약재에 가까운 귀한 식재료였다. 도미(참돔)의 본초는 진조(真鯛), 맛과 성질은 달고 따뜻하며, 비위(脾胃)로 귀경(歸經)하고, 보기·활혈 작용한다. 도미는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게 없다. 도미 대가리 부분의 젤라틴과 비타민 B1은 시력 보호와 신경 안정에 도움을 주고, 전체적으로 저지방 고단백 식품이어서 체력 보강하여 면역력을 높여준다. 생선 요리에 미나리와 쑥갓을 넣는 것은 비타민 C 보충과 해독 작용을 위함이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시동생이 급하게 달려왔다. 싱싱한 바다를 건져 올렸다며 살림통에서 펄떡이는 돔을 끄집어내었다. 시동생은 회를 치고, 동서는 돔 대가리와 뼈로 맑은 탕을 끓였다. 부재료로 무와 파만 넣었는데도 국물이 시원하고 깔끔했다. 쫄깃한 회와 따끈한 국물, 그 깊은 바다 맛이라니.

조선 성종 때 주민을 못살게 구는 오랑캐를 쫓아내고자 허종(許琮)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방 해주에 도착했다. 주민들은 환영하며 도미에 갖은 고명을 한 음식을 대접했다. 허종은 풍악을 울리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기녀와 술보다 도미 음식 맛이 더 낫다고 감탄했다. 기생과 음악을 능가하는 '승기악탕(勝妓樂湯)', 노래와 기생을 능가하는 '승가기탕(勝歌妓湯)', 기생을 능가하는 절묘한 맛의 '승가기탕(勝佳妓湯)'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 '규합총서' 음식편에 승기악탕이 나온다. 살찐 묵은 닭을 이용한 요리인데, '왜관(倭館) 음식으로 기생이나 음악보다 낫다'고 기록되었다. '왜관'은 일본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 우리의 전통과 이국적 문화가 섞인 음식이 많았다. 현재 왜관 지명을 찾을 수 있는 곳이 경북 칠곡군의 '왜관'이다. 다른 조리서에는 숭어를 사용하여 탕을 만들었다.

도미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경사스럽다'라는 뜻의 '메데타이(めでたい)'와 도미(たい)는 발음이 비슷하여 명절이나 축제에 빠지지 않는 생선이다. 도미를 통째로 넣은 솥밥과 도미 대가리를 졸여서 먹는다. 타이야키(たいやき)는 도미(たい) + 구이(焼き)로, 서민은 귀한 생선 대신 도미 모양의 빵을 만들어 먹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넘어온 붕어빵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도 도미는 '복(福)을 부르는 가길어(加吉魚)'라 하여 잔치나 축제 요리에 등장한다.

승기악탕은 생선을 포 떠서 전으로 부치고, 전골냄비 바닥에 소고기와 채소를 깐 후에 전과 각종 고명을 돌려 담아 맑은장국을 붓고 국수를 넣어 끓인 '도미면'이다. 궁중의 연회나 반가의 경사에 차려지는 최고급의 꽃과 같은 음식이라 전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타인의 정성을 내 몸 안으로 모시는 거다. 도미 맛은 1월을 최고로 친다고 하니 길한 음식으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좋으리라.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