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벼랑 끝 지방 산업단지…"파격적 통합 지원 공약 시급"

입력 2026-02-03 18:12:24 수정 2026-02-03 19:37:56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구미 등 제조 거점 성장률 마이너스, 비수도권 경제 고사 위기 현실화
이재명 대통령 '남부권 벨트' 구상, 안착 기업 중심의 산업 생태계 복원이 관건
6월 지방선거 앞두고 전기요금·법인세 지방차등제 등 실질적 해법 요구 확산

지방 산업단지에서는 수도권 쏠림 속 비수도권 제조 거점의 생존을 건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매일신문DB
지방 산업단지에서는 수도권 쏠림 속 비수도권 제조 거점의 생존을 건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매일신문DB

대한민국 지방 경제가 벼랑 끝에 서 있다. 인구 급감과 산업 공동화로 비수도권 도시들이 빠르게 소멸 위기로 치닫는 가운데, 지역 산업단지를 지탱해온 지방 기업들마저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구미 등 주요 제조 거점의 성장률이 사실상 마이너스로 추락하면서 '지방 기업의 붕괴는 국가 안보의 붕괴'라는 경고음이 거세지고 있다.

◆ 사투 중인 지방 기업들

대한민국 제조의 성장을 견인해왔던 지방 도시들이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직면해 있다. 지난 19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비수도권 지자체의 77.0%가 인구 감소 및 지방소멸 위험이 '높다'고 진단했다.

특히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전국 시군구 단위 지역 89곳의 '인구감소지역' 중 85곳인 95.5%가 비수도권이라는 점은 이제 단순한 인구 통계를 넘어,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제조 인프라의 붕괴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영남과 호남의 주요 산단들은 과거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엔진이었으나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지역소득(잠정) 결과에 따르면 2024년 전국 지역내총생산(GRDP)의 전년 대비 성장률은 2.0%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도권이 2.4% 성장하며 국부를 견인하는 동안, 비수도권은 1.6%에 그치며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특히 구미산단 등이 위치한 경북은 0.8%라는 저성장에 머물렀고, 인접한 대구는 -0.8%로 역성장을 기록하며 남부권 제조 거점의 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수치로 증명했다.

서울(22.5%), 경기(25.4%), 인천(4.9%)을 합친 수도권의 GRDP 비중은 52.8%에 달해 역대 최고 수준의 쏠림 현상을 보였으며, 비수도권 비중은 47.2%까지 축소되며 지방 경제의 고사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역 경제계는 "현재는 청년 인력의 이탈과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수출 지표가 개선된다고 하지만 지방 현장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역행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의 한 제조업체가 가동이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조규덕기자
구미국가산업단지의 한 제조업체가 가동이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조규덕기자

◆ 지방 반등, '남부권 벨트'가 열쇠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 등을 통해 '남부권 첨단산업 벨트(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축과 '에너지 고속도로'를 통한 국가 균형발전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다극 체제로 전환하는 '5극 3특' 전략 하에 영남과 호남을 잇는 남부 경제권을 형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주도 성장으로 대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산업부 업무보고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메가권역별 첨단산업 육성 방안으로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축 계획을 제시했다.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산업 인프라를 비수도권으로 확산하기 위해 부산시와 경북 구미시, 광주광역시를 잇는 벨트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구미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단지, 부산은 전력반도체 거점, 광주는 패키징 기지로 육성하며 최선단 공장을 집중 배치해 수도권에 치우친 공급망을 비수도권으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정 철학이 현장에서 결실을 보려면, 새롭게 유치되는 기업뿐만 아니라 이미 구미 등 비수도권에 조 단위 투자를 완료하고 수천 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는 앵커 기업들을 생태계의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역 사회는 "대통령의 남부권 벨트 구상이 성공하려면, 지방 기업들을 규모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지방 소재' 그 자체를 지원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앵커 기업이 흔들리면 그와 연결된 수백 개의 중소 협력사와 지역 상권이 도미노식으로 무너지는 '생태계 파괴'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있는 SK실트론은 세계 3위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기업으로,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의 핵심 기업이다. 매일신문DB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있는 SK실트론은 세계 3위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기업으로,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의 핵심 기업이다. 매일신문DB

◆ '지방 기업 보편 지원' 절실

현재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정책은 대개 '중소기업'이나 '신규 이전 기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구미산단 등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대형 사업장들은 정작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 기업들은 미국과 일본의 파격적인 직접 보조금을 받는 해외 경쟁사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혹은 이미 투자가 완료되었다는 이유로 지방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이는 자국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자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행위다.

지역 경제 전문가는 "해외 경쟁국들은 자국 내 공급망 안착을 위해 기업 규모를 따지지 않고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며 "지방 경제의 핵심인 앵커 기업을 포함해 비수도권에 적을 둔 기업 전체가 정부 지원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기업이 성장하고 청년들이 지방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 6월 지방선거, 지방 살릴 해법 나올까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경권 유권자들과 경제계는 여야 정치권을 향해 단순히 도로를 닦는 토목 공약을 넘어, 기업의 운영 원가를 실질적으로 낮춰줄 수 있는 세 가지 핵심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첫째는 전기요금 지방차등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했듯 "전기요금은 생산지 인근이 싸고 멀수록 비싸야 한다"는 '에너지 정의'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 발전소가 밀집한 비수도권 기업은 송전 비용 절감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수도권과 같은 요금을 내고 있다.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도입하면 비수도권 기업의 원가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

둘째는 국민성장펀드의 지방 우선 지원이다. 펀드 재원을 비수도권 유망 기업과 전략 산업단지에 우선 배분해 자본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역 기업들이 고금리 속에서도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를 지속할 수 있도록 '마중물 자본'을 공급해야 청년 일자리도 늘어난다.

셋째는 법인세 지방차등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법인세율 격차를 크게 벌려 지방 기업이 성장 여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신규 투자뿐 아니라 이미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선제적 공약 채택만이 지방을 살리는 길"

구미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전국의 산단 관계자들은 "이미 대규모 인프라를 가동 중인 지방 기업들이 원가 경쟁력을 잃게 되면, 그 피해는 지역 내에서 그물망과 같이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고스란히 지역 소상공인과 가계로 돌아간다"고 경고한다.

윤재호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장은 "지방 소멸 위험을 극복하는 것은 국가의 지속 성장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며, "이번 6월 지방선거가 지방 안착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대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여야 정치권이 이 절박한 목소리를 수용해 '지방 기업 수호'를 위한 파격적인 통합 지원책을 공약으로 채택한다면, 대한민국 첨단 산업 경쟁력은 남부권 벨트를 따라 전국으로 힘차게 확산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