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피라미드(Pyramid)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브랜드다. '최초'라는 말은 '최고(古)'일 뿐, '최고(高)'는 아니다. 그럼에도 '최초'는 오리지널(Original)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언제나 대중에게 특별한 가치로 보장받는다. '최초임'을 부각시키는 전략은 마케팅에서 시장의 인식을 선점하고 지배하는 힘을 갖는다. '최초'라는 말이 새롭다(New)이면서 동시에 가장 오래되었음(The oldest)을 뜻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피라미드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이자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브랜드라 할 수 있다.
◆피라미드는 시간을, 브랜드는 신뢰를
수많은 해석과 추측이 난무하는 피라미드를 마주하기 위해, 나는 병오년(丙午年) 새해 이집트 카이로(Cairo)로 향했다. 아잔(Adhan) 소리로 시작된 카이로의 1월 아침 공기는 좀처럼 맑아질 생각이 없었다. 나일강 위를 떠다니는 회색 먼지는 시간의 경계마저 흐려놓았고 도시는 흑백 필름과 같은 풍경을 이어갔다. 그때 빌딩들 사이로 드러난 삼각형의 윤곽이 시선을 붙잡았다. 건물과 도로, 일상의 틈 속에 끼어든 4600년 시간은 그 크기조차 가늠하지 못하게 했다.
기자(Giza)의 피라미드는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였다. 기원전부터 한자리에 머물러 온 존재만으로 전 세계가 추앙해 온 건축물이다. 이집트는 문명의 시작일 뿐 아니라 메시지를 설계하는 방법을 가장 먼저 체득한 곳이기도 하다. 왕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하나의 서사로 설득한 최초의 브랜딩이었다. 오늘날 마케팅이 감성과 스토리에 주목한다면, 우리가 브랜드라 부르는 것의 원형은 이미 이집트 문명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기자 평원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쿠푸(Khufu) 왕의 대피라미드가 시야를 압도했다. 태산처럼 솟아오른 그 모습 앞에서 시선은 자연스레 위로 끌려 올라갔다. 그 옆의 조금 더 높은 지대에 자리한 카프레(Khafre) 왕의 피라미드는 실제로는 쿠푸의 피라미드보다 작지만, 지형과 착시 효과로 인해 멀리서 보면 오히려 더 커 보였다. 꼭지점에 남아 있는 외장석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이 거대한 구조물이 한때 얼마나 눈부셨을지를 짐작하게 했다.
그 앞에는 스핑크스(Sphinx)가 있었다. 사자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는 동쪽, 곧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을 향해 수천 년 동안 묵묵히 서 있었다. 피라미드가 죽은 자의 시간을 품고 있다면 스핑크스는 살아 있는 세계와 그 시간을 잇는 수문장처럼 보였다. 여러 원인으로 훼손된 코와 달리 비교적 또렷이 남아 있는 귀는,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도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듯했다. 마케팅에서도 외침이 아니라 경청이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광고는 조용할수록 더 주목받는다. 큰 소리와 화려한 영상 대신, 여백과 낮은 톤이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잡는다. 침묵에 가까운 순간, 사람들은 오히려 더 귀를 기울인다. 현대광고의 거장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의 신형 롤스로이스(Rolls-Royce)의 광고, "달리는 차 안에서 가장 큰 소음은 시계 소리였다"를 시작으로, 대우자동차 레간자(Leganza) 광고 "쉿! 소리 없이 강하다", 나이키(Nike)의 차분한 내레이션(Narration), 애플(Apple)의 인간적인 사용자 목소리 역시 같은 맥락이다.
피라미드는 거대한 파라오(Pharaoh)의 무덤이기 전에, 계산된 사유의 결과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세계를 숫자와 비율로 이해했고, 정사각형의 기단과 동일한 경사의 면을 통해 그 질서를 형태로 옮겼다. 중력에 순응하며 하중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구조와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돌의 배열은, 공간을 감각이 아니라 힘과 균형의 문제로 인식했던 태도를 보여준다. 이처럼 피라미드는 수학과 물리의 산물이었지만, 그 계산은 현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이동이었다. 태양신 라(Ra)가 밤의 세계를 지나 다시 떠오르듯, 파라오 역시 육신을 벗고 다른 차원의 질서로 옮겨간다고 여겼다. 피라미드의 방향과 각도, 내부 구조는 모두 이 믿음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북쪽 하늘에 있는 불멸의 별들을 향한 통로와 태양의 상승과 하강을 반영한 배치는 신앙을 공간으로 구현한 장치였다. 사람 키만 한 돌 하나하나는 신에게 바치는 문장이었고, 그 거대한 구조 전체는 계산으로 세운 기도였다.
기원전의 피라미드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이 모든 돌덩이가 노예의 땀으로 쌓았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그러나 기록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피라미드는 숙련된 노동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나일강이 매년 범람하던 시기,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빵과 맥주를 지급하며 공사에 참여하게 했다. 피라미드는 신앙의 산물이자, 동시에 고대 이집트의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였다. 거대한 석재를 옮기기 위해 범람으로 젖은 모래의 마찰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냈고, 이는 외계인의 도움이 아니라 자연을 관찰하고 반복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였다.
가까이서 본 피라미드는 누렇다 못해 검은빛에 가까웠다. 수천 년 동안 사막의 태양과 바람을 견뎌왔으니, 그 빛바램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세 개의 피라미드가 한눈에 들어오는 기자 파노라마(Panoramic Point)에 섰을 때, 조금 전까지 검게 보이던 돌덩이들이 하얀색으로 변해있었다. 거리와 정오의 태양 각도가 만들어낸 착시였지만, 그 순간은 반짝이는 피라미드를 올려다보았을 고대인들의 시간과 겹쳐졌다.
낮의 빛이 사라지면 피라미드는 어둠 속으로 잠기지만 오늘의 인류는 밤에도 이 구조물을 놓아두지 않는다. 레이저 빔이라는 인공의 빛으로 태산 같은 구조물을 다시 불러내며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기원전의 태양을 현대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렇게 낮에는 태양으로 밤에는 기술로 다시 빛나며 피라미드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아낸다.
◆세계 박물관의 판도를 바꾼 GEM
2025년 11월 정식 개관한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은 고대 피라미드의 시간을 현재로 이어 붙인 또 하나의 구조물이다. 외벽에서부터 내부 공간에 이르기까지 삼각형 모티프가 반복되는 디자인은 피라미드 형상을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기 전,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람세스(Ramesses) 2세의 '공중에 매달린 오벨리스크(Hanging Obelisk)'였다. 전통적으로 오벨리스크는 땅에 묻히거나 받침대에 가려져 있어 고대에도 현대에도 밑면은 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GEM(Grand Egyptian Museum)은 고대 권력의 상징을 현대 건축 언어로 재해석하여 관람객이 람세스 2세의 히에로글리프(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상형 문자)를 올려다볼 수 있게 의도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오벨리스크의 밑면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박물관 건립에는 약 1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다. 그 비용에 일정 부분 기여한 국가들의 이름이 각 나라의 언어로 박물관 외벽에 새겨져 있는데, 한글 '이집트'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고대의 유산이 세계의 손길 위에서 지켜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내부로 들어서면, 이곳이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라는 사실보다 디자인이 눈을 사로잡는다. 유리와 석재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공간 속에서 피라미드의 각을 반복적으로 구현하고 있었으며, 고대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동선 또한 삼각형 구도를 활용하고 있었다. 중앙홀을 차지한 람세스 2세의 거상 아래 펼쳐진 바닥 공간은 나일강을 형상화했다. 문명의 시작이자 왕권의 근원이었던 나일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거대한 파라오의 반영을 물에 띄운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는 헤로도토스(Herodotus)의 말이 이곳에서 실감 나게 되살아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오르면,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기자의 피라미드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옆 전시 공간에는 피라미드 건축의 기틀을 완성한 파라오 스네프루(Sneferu)의 석상이 놓여 있다. 제4왕조의 첫 파라오였던 그는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굴절 피라미드를 거쳐, 마침내 최초의 완전한 붉은 피라미드를 완성했다. 그의 집요한 실험과 축적된 기술은 다음 파라오 쿠푸에게 이어져 대피라미드로 완성되었다. 피라미드를 등지고 서 있는 스네프루의 모습은, 이 거대한 건축 문명이 한 왕의 끈질긴 시행착오에서 시작되었음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의 중심에는 투탕카멘(Tutankhamun) 전시관이 있다. 이곳에 모인 오천여 점의 부장품은 한 파라오의 짧고 연약했던 생애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수십 개의 지팡이와 특별한 모양의 샌들은 찬란한 통치보다 버텨야 했던 일상이 더 많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전시된 한 줌의 머리카락은 그의 할머니 티예(Tiye) 왕비의 것으로 죽음 이후에도 가족의 보호를 받고자 했던 소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황금관과 여러 겹의 관들은 현재 각각 분리되어 전시되어 있지만, 설명과 이미지를 통해 러시아 인형처럼 겹겹이 포개졌던 구조였음을 설명한다. 그것은 육신과 영혼을 단계적으로 지키려는 믿음의 결과였다. 1922년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이 훼손되지 않은 채로 발굴되면서 짧은 생애와 미미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투탕카멘은 인류 역사의 창이 되어 가장 유명한 파라오로 남게 되었다.
◆4600년을 지속한 브랜드,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고대에서 머물지 않았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Pyramide du Louvre)를 떠올려 보자. 왕의 권력과 신성을 상징하던 피라미드는 예술과 지식을 상징하는 언어로 벤치마킹(Benchmarking) 되었다. 루브르의 소장품을 모두 알지 못해도 사람들은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설득된다. 또한 파리의 에펠탑(Eiffel Tower)은 기술과 진보를 과시하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압축했다. 그리고 현대의 미국 애플 본사(Apple Park Visitor Center)는 완벽한 원형으로 브랜드 철학과 완결성을 은밀하게 전달한다. 시대와 기술은 달라도 이러한 구조물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신뢰와 경험을 심는다는 마케팅의 본질을 보여준다. 피라미드는 영원을, 에펠탑은 경험을, 애플 본사는 완결성을 쌓았다면 지금 우리가 만드는 브랜드 전략은 과연 수천 년 뒤에도 피라미드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될 수 있을까?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