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팍 '이승엽 벽화' 그린 작가
한복 입은 흑인 여성 작품으로
그래피티 본고장 미국에서 유명세
20년 그래피티 인생과 꿈 담은 전시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심찬양이 대구 수성구 범어동 021갤러리(구관)에서 24일 첫 개인전을 선보인다.
경북 김천 출신의 그는 미국 시카고의 한 건물 외벽에 한복을 입은 미셸 오바마를 그려 주목을 받았고, LA 레이커스와 현대자동차, 애플 포르쉐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며 그래피티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해왔다.
2018년에는 청와대 초청으로 사랑채 앞마당에 대형 벽화를 그린 바 있고, 그에 앞서 2017년 삼성라이온즈파크에 이승엽 선수 벽화를 남긴 작가도 바로 심찬양이다.
그래피티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인정 받은 그가 처음 그래피티에 대한 꿈을 품은 것은 20년 전이다.
중학생 때부터 힙합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힙합' 만화책에서 본 그래피티에 반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그래피티 문화가 생소했던 때. 자신과는 거리가 먼, 단순히 동경하는 문화로만 여겼다.
김천예고에 진학해 만화를 전공하던 2006년 어느 날 수업을 듣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그래피티라는 단어가 운명처럼 여러 번 들려왔다. 그는 다시 설렘을 느끼고 그날 일기장에 적었다. "나는 오늘부터 그래피티 하는 사람이야."
이후 학교 벽과 농구장, 터널, 심지어 경찰서 벽에도 그림을 그리다 혼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 여러 일을 거치며 현실에 발을 붙이려 노력했지만, 그래피티를 향한 꿈이 항상 마음 속에 끓었다.
결국 2016년 그래피티의 본고장, 미국 가는 티켓을 끊었다. 맨하탄에 사는 후배의 단칸방에 얹혀살며 그래피티를 그리다보니 "한국에서 온 친구가 그림을 꽤 잘 그린다"는 소문이 났다. 소문이 퍼지고 퍼져, LA의 복합문화공간 '더 컨테이너야드'에서 그를 초청해 가장 눈에 띄는 외벽을 그에게 내줬다.
이곳에 그는 한복을 입은 흑인 여성을 그렸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이 교차한 오묘한 분위기의 작품 '꽃이 피었습니다'로, 그는 미국에 간 지 고작 4개월 만에 일약 스타가 됐다. 다른 곳에서도 초청을 받아 한복을 입은 흑인 여성 시리즈를 연달아 세 개 남겼고, 이것이 한국에도 알려지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는 "아무 소득도 없던 무명 작가의 인생이 정말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후 10년 간 공공 공간과 상업적 플랫폼을 넘나들며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고, 올해는 그가 그래피티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지 딱 20년이 되는 해. 전시 제목이 '데케이즈(Decades)'인 이유다.
그에게 이번 전시는 새로운 도전이자 전환점이다. 항상 건물 외벽이나 담장에만 그림을 그려온 그가 갤러리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기 때문.
전시장에 들어서면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림에 감탄이 먼저 나온다. 높이 3.4m, 가로 1.5m의 거대한 캔버스 9개마다 한복을 입은 다양한 나이, 인종의 여성을 그린 리얼리티 그래피티다.
그림을 보면 자연히 궁금증이 생긴다. 10년 전 그 때, 왜 한복을 입은 흑인 여성의 그림으로 시작했던 걸까.
"그게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미국의 문화를 좋아하고 동경해왔습니다. 항상 그들을 닮아가고 따라가려 했는데, 오히려 그들에게는 한국인인 제가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지더라고요. 그래서 나만의 것을 만들자고 생각했죠. 흑인 문화를 동경하지만 정체성은 한국인인 나의 모습인 셈입니다."
단순히 예쁜 이미지의 조합을 그리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본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시카고에서 만난 한 갤러리 관장은 흑인 여성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전했다. 작가는 "오래전 미국의 일부 한국인 점주들이 흑인 점원들에게 상처를 줘서, 한국인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했다고 한다"며 "그들에게 내 그림이 그런 아픔을 치유하고 화해의 메시지처럼 다가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들이 쌓이다보니, 주 관람객인 외국인들에게 보여지는 한복도 제대로 그리고 싶었다.
"우리나라 대표 한복 디자이너인 박술녀 선생님께 직접 연락드리니 예쁘게 봐주시고 한복을 빌려주셨어요. 그걸 입은 모델을 촬영하고, 그림으로 옮겼죠. 그러다보니 전통 한복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도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사실 박술녀 선생님은 약간 웅크렸을 때 생기는 한복 주름이 예쁜거라고 강조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반대로 여성들이 반대로 당당하게, 작품을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죠. 선생님 말 안들어서 죄송하지만, 일부러 모델들에게 어깨 펴고 고개 들라고 해서 찍었어요.(웃음)"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가보면, 캔버스 작품 맞은 편의 검은 벽이 눈에 띈다. 벽 위에는 캔버스 천을 고정시키는 나무 판넬만이 검게 그을린 채 남았다. 이미 그림을 한 번 그렸다가 지우고, 캔버스도 태우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그는 다시 전시 기간, 이 벽을 채워갈 예정이다.
전시장 안쪽 공간은 아예 캔버스 자체가 없다. 한복 입은 여성과는 또 다른 느낌의, 자신의 경험과 주변 인물 등 개인적인 소재들을 벽에 스프레이로 그렸다.
보통 '화이트 큐브'를 유지하려는 갤러리가 벽을 내어주는 것은 흔치 않은 일. 마침 지난해 갤러리가 동구 율하동으로 이전한 뒤 범어동 구관이 비어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소영 021갤러리 대표는 "10년 전 처음 갤러리 문을 열 당시, 공사 전 빈 콘크리트 벽을 바라보며 언젠가 이 공간에 심찬양 작가의 그래피티를 남기고자 했다"며 "그 구상이 마침내 실현돼 마음이 벅차다"고 말했다.
작가는 "전시장 입구 오른쪽의 검은 벽은 무명이었던 10년을, 왼쪽의 하얀 캔버스는 주목 받았던 10년을 의미하며, 안쪽의 벽은 앞으로의 10년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지난해까지 주변의 평가나 얘기에 신경도 쓰이고 많이 지쳐있었는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아예 미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12시간씩 3주 내내 그리는 데도 지치지 않았어요. 올해부터는 영국이나 독일로 진출해서 새로운 관객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데케이드(decade)의 페이지를 유럽에서 열어보이려고요."
전시는 2월 28일까지. 일, 월요일 휴관. 053-743-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