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야외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는 극단 현장의 마당극 〈수무바다 흰고무래〉(진주성 야외공연장, 작 김인경, 연출 고능석)의 '수무바다'는 남강 백사장을 뜻하고, '고무래'는 논이나 밭의 흙을 평평하게 고르거나 씨를 뿌린 뒤 흙을 덮거나 곡식을 모으거나 펴는 데 사용하는 전통적인 농기구다. 여기에 남강의 백사장을 상징(진주정신)하는 '흰(白)'과 '고무래(丁)'를 더해 극중 인물의 이름을 붙였다. 억압과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흰고무래' 이야기에, 실제 진주의 '형평운동'을 이끌었던 백촌 강상호 선생을 마당극 형식으로 전환한 극이다. '형평운동'은 당시 천대받던 백정들이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주도한 인권운동이었다. 1923년 4월 25일, 진주 청년회관(현 진주시 인사동 일대)에서 조선 최초의 인권운동 단체 '형평사(衡平社)'가 창립되었고,<수무바다 흰고무래〉무대 배경이 된다. 배경막은 옛 진주성 일대를 떠올리게 하는 산수화로 된 '산'이며, 산맥의 머리는 소 잡는 데 능숙한 백정 흰고무래를 따르던 우직한 소머리를 형상화했다.
그 옆 공간은 사물과 전통 악기로 마당극의 리듬을 만드는 악사들의 자리다. 야외 무대 객석은 200여 석 규모로, 스마트폰을 켜고 촬영도 자유로운 마당극 축제 분위기다. 이 틈으로 형평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이 시작되면서, 프롤로그부터 극단 현장 배우들은 마당극이 체질인 듯 흩어지고 모이며 추임새를 넣는다. 민요의 창극적 선율로 집단적 형평운동과 백정의 삶을 노래하며, 저항의 공동체 정신을 표현하는 멜로디와 앙상블, 에너지로 백정들의 공동체 정신을 살리고 있는 작품이다. '소'는 나무 소쿠리로 형상화하고, 백정의 자식이 들어갈 수 없는 학교 장면은 전통놀이 분위기로 극중 장면을 살린다. 흰고무래 아버지의 죽음 장면에서는 소쿠리에 빨간 천을 덮어 죽음과 망자의 길을 표현하고, 대대손손 백정으로 살아간 영혼의 길을 위로하는 배우들의 구음은 진혼굿의 의식이 되어 관객도 엄숙해진다. 그래도 마당극이니, 죽음도 차별의 아픔도, 그 시절 만만치 않았던 형평운동의 시간들도 해학정신으로 일으켜 세운다.
흰고무래의 마지막은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형평운동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사회적 계급은 사라졌지만, 직업·성별·지역·장애·이주노동자 등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극단 현장의 마당극 〈수무바다 흰고무래〉가 레퍼토리로 공연되는 이유다. '진주'를 배경으로 하니 배우들의 진주 지역 말도 살아나고, 마당극의 해학정신도 생생히 살아 있다. 마당극 형식을 써온 김인경 작가의 작품들을 극단 현장에서 여러 차례 올렸다. 극단도 연출도 배우도 마당극이 체질이 되었다. 이것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고능석 연출은 '진주의 어른'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를 꺼내며 "100년 전 신분의 평등한 세상은 백촌이 주도했지만, 지금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삶의 평등함의 위로를 주는 김장하 선생님이 백촌 같은 진주의 어른이시다"라고 말했다. 고능석 연출은 마당극부터 다양한 장르의 연극을 무대로 형상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배우들이 단원으로 있으니, 공연이 매번 시대의 '현장'이 되는 듯하다. 극단 현장의 〈수무바다 흰고무래〉 이야기다.
◇ <수무바다 흰고무래〉의 마당성
<수무바다 흰고무래〉의 눈여겨볼 장면은'집단 의식'을 소환하는 장면이다. 악사들이 장단을 만들 때 배우들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극의 판은 열리고, 관객은 극의 일부로 진행된다. 〈수무바다 흰고무래〉 프롤로그는 극적 사건을 여는 시작보다는 극적 조건을 형성한다. 마당판의 시작은 열린 구조이다. 고능석 연출은 관객에게 놀이의 마당으로 극에 참여를 요구한다. 제1마당<눌질덕이> 장면은 "1887년 여름, 진주 백정촌. 눌질덕이의 삶이 역할놀이로 재현된다. 고씨는 자연스럽게 눌질덕이가 되어 망치를 들고 나온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쿠리를 들고 소를 흉내 내는 군무는 민중극 특유의 상징적 조형미를 보여주는데, 장면의 핵심은 '대체(imitation)'가 아니라 '전유(possession)'에 있다. 배우들은 소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소의 리듬과 호흡으로 극을 '전유'한다. 이러한 리듬의 전유가 있기 때문에, 소의 형태는 백정의 몸, 인간과 짐승의 몸으로 뒤섞인다. 백정을 인간보다 낮게 취급했던 사회 인식 구조가 무대 위에서 몸으로 재현되는 듯하다. 소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아닌 사람의 자리'를 상징하는 기호로 환치된다.
백정이 생계를 위해 죽여야 했던 소는 사회가 백정을 본 방식과 닮아 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라 취급되는 존재.' 이 중첩된 의미가 소쿠리라는 단순한 오브제로 표현된다. 1마당의 도입에 작가는 "꼭두쇠는 소가 되어 들어온다. 초복이는 정화수그릇과 나뭇가지, 중복이는 나무망치, 말복이는 붉은 보자기를 가지고 나온다. 눌질덕이는 소의 등에 붉은 보자기를 씌운다. 그 후 소의 눈을 가리고, 곳곳에 정화수를 뿌린다. 모든 행위가 춤처럼 이어진다. 눌질덕이가 망치를 들면 풍물연주가 서서히 격렬해진다. 망치를 내리치려는 순간 풍물연주가 뚝 끊긴다. 덜렁이는 벙거지를 쓰고 나와 큰소리로 눌질덕이를 찾는다."라고 지문화하고 있다. 한 인간이 소로 형상화되는 것은 인간에서 짐승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노동·제물·희생·부의 순환을 의미하고 있다. 꼭두쇠가 소로 '되어 들어온다'는 것은, 꼭두쇠의 몸은 연희의 매개체이면서도 제의의 대상이며, 신분 제도로 인한 희생의 제물로서 표상한다. 1마당은 제의(祭儀)성이 강하면서도 마당극적 요소로 연희(演戱)적 마당(판)이 열리는 극적 구조로는 인간→짐승, 일상→의례, 개별→집단, 현실→상징으로 전환하는 의식의 행위로 볼 수 있다. 눌질덕이가 소의 등에 붉은 보자기를 씌우는 행위는 제의와 연극 모두에서 매우 강한 상징으로 보여진다. 붉은색은 피(血), 생명, 제물, 악귀로서의 복합적인 기호로 작용된다.
이러한 의미로 꼭두쇠가 소의 형태화 하는 것은 인간이 시대의 제물로 희생(犧牲)의 몸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꼭두쇠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제의의 대상인 소(백정, 하층민)로 표상되는 것이다. 또한 초복이가 정화수를 뿌리는 행위는 진주성 내에 마련된 야외 무대 전체를 '의례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행위이다. 한국 굿에서는 정화수를 뿌리는 순간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변주되는 이생의 세계가 되는 것으로, 일상성에서 이탈해 제의적 시간(ritual time)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1마당의 행위는 비극적이지 않다. 마당극적 특성으로 놀이화하고, 출생의 계급화로 살아가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극중 인물들은 연희적 놀이로 당시의 삶을 흥, 신명 등으로 인간의 삶을 표상하는 연희성을 보여준다. 그런 만큼 〈수무바다 흰고무래〉의 마당극은 언어와 행위로 극을 전환하는 것이 아닌 연희와 풍자로 재현되는 것이다. "눌질덕이가 망치를 들면 풍물연주가 서서히 격렬해진다."의 지문에서 망치는 삶의 액운을 내리치는 도구로 상징화해 앞으로 점층적인 마당으로 이어진 극의 서사성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면서도 꼭두쇠(소)의 희생, 소멸, 파괴, 구원, 희망 등 앞으로 전개될 흰고무래의 인생사를 집결적으로 압축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제2마당<출생> 장면은 삶의 희망과 풍자와 조롱이 섞인 양가적 장면이다. 흰고무래가 태어나는 순간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마당극적 앙상블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축복은 그 시대에 신분 제도로 구속되어진 시대상의 조롱과 차별로 이어진다. 장면의 구조는 신분 제도로 인한 한 인간의 신분을 하층화하는 출생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붙이는 낙인은 대체로 출생 순간부터 부착된다. 이름을 비틀어 희화화하는 장면은 '신분 폭력'의 대표적 사례다. 사람의 이름은 존재의 표상이다. 그 이름이 시대의 계급으로 조롱화되면서 흰고무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분 제도의 억압적 사회상을 반영한다. 이 장면의 뛰어난 점은 '태어남'과 '모욕'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가성은 백정의 삶의 구조를 보여주는 마당으로 신분차별, 불평등의 사회적 구조에서 아프면서도 견디는 민중의 정서가 장면 구조 속 녹아 있다. 2마당에서 아이의 탄생과 이름짓기는 백정(白丁)이라는 신분의 비극과 그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세대로 전환(형평운동 사상)의 전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기원(起源)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지모산이의 "응애응애응애응애!"라는 천둥 같은 울음소리가 마당에 터져 나오는 순간, 도살장 같은 현실 속에도 새 생명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축원의 소리가 겹쳐진다. 사또가 울음을 듣고 비로소 생명을 살려주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서도 사회 신분제라는 질서에서만 가능하다는 그 시대의 현실을 2마당에서 그려진다. "비록 백정의 자식이라캐도…"라는 사또의 말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백정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규정하는 언어적 폭력이다. 사또는 "백정의 이름에 인(仁)·의(義)·효(孝)·충(忠)을 넣을 수 없다"고 말하며 붓을 휘갈겨 아이의 인생을 규격화한다. 양반 사또의 비웃음으로 태어난 이름 "흰 백(白)·고무래 정(丁)", 즉 '흰고무래'는 오히려 이 아이의 운명을 암시하는 극의 방향성을 전달하는 핵심적인 장면이다. 고무래는 땅을 평평하게 만드는 농기구이자 공동체의 흙을 일구는 도구이며, "수무바다처럼 모래 같은 생을 흰빛으로 견뎌내라"고 말하는 민요적 상징이다. 무대에서는 이러한 출생과 맞물려 노래, 풍물과 연희로 무대가 전환되는 장면은 흰고무래의 운명, 삶의 축복과 태어남의 비극성으로 의례(儀禮) 행위로, 무대는 마당극의 연희성으로 감각하게 한다. 흰고무래가 "소눈을 가리는 건 귀신감투, 칼 씻는 건 깃발 날리다, 다 끝난 거는 꺼졌다"라는 대사는 흰고무래 몸 안에 백정 세계의 기억이 고스란히 각인돼 있음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매와 지모산이가 "그래야 뭐하노, 백정 자슥이…"라는 대사는 여전히 신분의 벽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낸다. 이때 만우 스님이 던지는 말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아무리 감춰도 뾰족해 튀어나온다"는 백정이라는 굴레를 씌운다고 해도, 어떤 인간은 결국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믿음, 혹은 필연적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다. 이 대사는 훗날 흰고무래가 보여줄 결단과 비극을 모두 떠안는 운명성을 드러낸다. 무대에서 2마당이 후반부로 넘어갈 때, 아버지 눌질덕이가 흰고무래에게 인생을 서술하고 가르치는 장면은, 차별의 시대를 살아온 1세대가 흰고무래(미래) 세대에게 말하는 생존의 지혜이자 신분의 벽을 넘어설 수 없는 체념의 언어이다. "사람 많은 데는 가지 마라, 듣기 싫은 말은 외면해라, 사람을 도와주지도 마라"는 시대적 증언으로도 들린다. 흰고무래가 "사람이 죽게 생겼으마 도와주는 게 도리 아입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눌질덕이의 체념과 흰고무래의 삶의 윤리가 변화되는 지점이다. 이 짧은 대사는 세상을 바꾸려는 형평운동(衡平運動)의 정서적 토대가 형성되는 서사적 씨앗이기도 하다. 장면은 진주시장으로 이동하며 커다란 서사적 공간을 확장한다. 남강을 지나, 백정의 울타리를 넘어, 진주 오일장이라는 시간의 장면으로 변주되는 순간, 흰고무래는 더 이상 백정의 하층민 자식이 아니라 불평등한 세상과 대면하는 인간이 된다. 자진모리 가락 위로 시장의 왁자지껄한 소리, 약초더미, 남해안 해산물의 생명력이 마당극의 연희로 표현되고 이러한 구조적 장면은 양반과 백정이 공존하는 사회이면서도 여전히 그 차별의 모욕으로 살아가는 '사회'로서 구조화된다.
제3마당 백촌 강상호와의 만남은 흰고무래 인생 서사가 '변환점'을 맞는 장면이다. 강상호의 등장은 단순한 인물의 등장이라기보다 이 공연에 '이념적 형평 사상'을 세우는 장면이다. 강상호는 개인적 캐릭터라기보다 '진주의 양심'이자 '평등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특권을 가진 양반 출신이지만 그 특권을 거부함으로써 차별 구조로부터 벗어나려는 인물로 설정된다. 백촌(白村) 강상호(姜相鎬)의 생애를 직시하면, 그는 지역의 지도자가 아니라 시대의 균열지점에 가장 먼저 들어가 상처를 떠안았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백촌 강상호를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백촌은 권력과 거리를 둔 채 지역민의 삶을 기반으로 살았다. 백촌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해방 직후의 진주(晋州) 정치지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지역의 백정·농민·하층 계층의 실질적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스스로도 그 사회적 통증을 이해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일제의 폭력성, 지방 권력층의 폐쇄성, 해방 후 나타난 정치적 양극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유일한 지역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여러 차례 체포·조사·감시 대상이 되었던 이유도 그의 사상이 과격해서가 아니라, 지역 권력이 통제하려 했던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 백촌의 시대정신
강상호는 '백촌'이라는 호(號)에 걸맞게 지역사회 문제를 평생 실천한 사상가다. 활동은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귀속되지 않았고, 어떤 체제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강상호는 당시 진주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봉건적 잔재인 토호 세력, 관변 조직, 신분제 잔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이 구조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 판단했고, 실제로 그의 예측이 맞았다. 이러한 구조적 분석에 기반한 그의 발언들은 지역권력에게는 위협이었고, 일반 민중에게는 희귀한 '정치적 통찰'로 받아들여졌다. 강상호의 삶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공적 책임감(公共責任)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을 과시하지 않았고, 이득을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역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환원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는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며,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지역 시민사회 인권운동의 초기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강상호의 캐릭터를 극중인물화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몸으로 견디는 실천자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삶은 매우 드라마적인 평전 서사를 보이고 있는데, 그의 삶이 서정적 영웅 서사보다는, 흰고무래가 백촌의 도움으로 한 인간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런 인물 대립의 구조와 형평운동을 전개한 진주정신에 부합되는 인물 강상호의 실제적인 인물 캐릭터와 가상의 흰고무래를 관계화하면서 〈수무바다 흰고무래〉의 서사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백촌 강상호의 삶은 지역 정치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방 유지' 들과는 다른 정반대의 삶을 실천한사상을 가지고 있다. 권력에 의존하지 않았고, 권력을 위한 타협을 거부했던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당대의 정치권, 지역 토호, 식민 권력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약자의 편에서 지역사회의 구조적 문제의식을 실천한 사상가였다. 지역사회 내부의 불평등, 신분 잔재, 권력의 독점을 흰고무래처럼 삶의 바닥을 평평하게 펴고, 평등화하고자 했던 그의 인간을 대하는 사상이 형평운동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3마당 '만남' 장면은 국채보상운동이다.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자는 비녀와 가락지를 내어 국채를 갚자"는 나무판이 등장한다. 장면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진주(晋州)판 실천적 재현으로 감각된다. 백촌은 국채 1,300만 원이라는 수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담배 3개월 금연이라는 구체적 실천안을 제시한다. 상인들은 "까짓거 끊을끼다"라는 대사는 당시 민중의 자발적 참여 방식을 장면으로 간접화한다. 국채보상운동은 단순한 배경으로 기능하기보다 백촌의 정치적 신념·실천방식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어서는 흰고무래가 등장한다. 그는 시대적 폭력 상황에서 힘을 쓰는 인물이 아니라 "사람이 죽게 생겼으마 도와주는 게 도리 아입미꺼?"라는 대사를 통해 흰고무래라는 인물은 단순한 백정이 아니라 윤리적 주체로 전환된다. 그러나 백촌의 동료들이 드러내는 차별은 노골적이다. "니는 아무 나라 백성도 아이다. 사람이 아이라꼬." 이 대사는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뒤에도, 민중 내부에 남아 있던 잔존 신분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통감부보다 무서운 건 일본이 아니라, 동시대의 차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백촌은 "사람이마 다 같은 사람이지요"라는 말을 통해 형평운동의 뿌리가 되는 그의 정치적인 신념을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백촌은 민중주의자로서 흰고무래를 차별의 벽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하면서도 백촌을 통해 평등한 인간의 주체로 성장해가는 계기를 마련한다. 마지막에 고능석 연출은 두 인물이 나란히 걷는 장면을 보여준다. 백촌은 나란히 걷자고 하지만, 흰고무래는 버릇처럼 뒤로 선다. 이 장면은 계급도, 신분도 인간을 보다 우선될 수 없다는 백촌의 사상을 기점으로 하는 평등한 연대적 인간으로의 치환을 보여준다.
◇ 차별없는세상, 진주의 정신
제4마당 〈백정은 차별 구조가 가장 노골적으로 폭발하는 장면이다. 흰고무래 비극의 직접적 기점(起點)을 형성하는 마당이다. 3마당이 '만남'의 서사적 기반을 마련했다면, 4마당은 그 만남이 사회적 차별의 폭력으로 어떻게 되돌아오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흰고무래는 "이제 평등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눌질덕이는 두루마기를 입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법적으로는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민중의식은 여전히 조선 후기 신분질서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흰고무래가 아버지에게 두루마기를 억지로 입히는 행위는 신분 규범에 저항하는 행위이지만, 마을의 봉건적 질서와 충돌하는 대립적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씨름판 장면은 핵심 구조다. 병삼이 반칙으로 승리한 뒤, 지모산이를 위협하고, 흰고무래가 이를 막아서면서 무대는 씨름판이 아니라 차별과 폭력의 무대로 변주된다. 흰고무래는 "힘은 약한 자에게 쓰는 게 아니다"라며 병삼을 나무라지만, 이 대사가 '백정 주제에 감히 사람에게 훈계한다'는 분노의 대상이 된다. 이 말을 통해 흰고무래가 차별에 저항하는 대립이 확장되는데, 이 장면의 긴장 구조는 "백정은 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가?"라는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저항적 태도를 극대화한다. 병삼과 군중이 흰고무래를 몰아붙이는 순간, 극중 인물은 이러한 차별성을 감정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나라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말로 폭행을 정당화한다. 장면에서 발화되는 차별의 혐오는 제도화된 차별의 언어이면서도 "국가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된 국가적 정책의 집단적 폭력성을 드러낸다.
백정 차별이 도덕이나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주의적 규범으로 포획된 폭력이라는 점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폭력 뒤에 이어지는 '휘모리 노래'다. "호패 안 돼, 기와집 안 돼, 갓 안 돼, 상복도 안 돼"라는 민초들의 노랫말 후렴구는 백정 금기적 '규범의 합창'처럼 집단화하면서 백정(신분) 차별이 시대와 인간의 개인의 편견이 아니라 세대를 관통해 체화된 금기 체계임을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결정적 장면은 눌질덕이의 죽음이다. 사람들이 눌질덕이의 시신을 널빤지에 올려 소에 매달고 끌고 돌리는 장면은, 연극적 과장이 아닌 민속적 장례·제사·희생 의식을 표현한 장면이다. 인간의 시신이 소에 매달려 끌려간다는 시각적 폭력은 백정의 삶 전체가 '짐승화' 되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구음(口音)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흰고무래의 절규는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역사적 신분 폭력의 총체적 폭로로 울분이다. 마지막 합창은 "그때 만나지만 않았어도…", "씨름판에만 안 갔어도…" 하는데, 이는 가해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폭력 구조를 은폐하는 국가적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다. 제4마당은 '백정'이라는 제목 그대로, 백정이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의 구조·규범·폭력·문화적 합의가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극중 장면이다.
제5마당<재회〉는 작가의 지문 "고씨와 만우는 백촌의 친구들이 된다. 지모산이와 홍매는 일하는 아낙이 된다. 꼭두쇠는 스스로 목줄을 매고 붙잡혀온 개가 되어 시끄럽게 짖는다."로 전개된다. 제5마당은 백정 차별적 구조가 다시 한 번 반복되는 장면이다. 백촌과 흰고무래의 관계가 평등의, 연대적 관계로 재정의되는 마당이다. 4마당에서 눌질덕이의 죽음이 공동체 폭력의 집단적 파국이었다면, 5마당은 이 폭력의 구조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반복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장면의 시작은 개 한 마리를 잡기 위한 준비이다. 개에 대한 행위는 백정에게 부과된 노동·신분·도덕적 의무로 전환된다. 백촌의 친구들은 백정이 "사람도 아닌 존재"라는 전제를 깔고 말을 주고받는다. 백정은 시대의 논쟁조차 필요치 않는 정해진 사회적 합의로 취급된다. 이 대사는 당시 신분차별이 얼마나 견고한 '문화 규범'이었는지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흰고무래의 태도다. 그는 개를 잡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다. "지는 개를 잡는 백정이 아입미더." 이 장면은 백정의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지정된 숙명'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백촌의 친구들은 흰고무래를 설득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한다. '독립운동가를 위해 개장국을 끓인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의 이름도 신분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인데,수무바다 흰고무래〉의 핵심적인 서사이다. 이때 백촌이 등장한다. 백촌은 폭력을 말리는 인물이 아니라, 이 장면에서 윤리성을 강조하면서도 형평운동의 본질적인 장면으로 전환시킨다. "개 안 잡는다꼬 사람을 잡는다 이기가?" 백촌의 대사는 독립운동의 본질은 '사람'을 살리는 데 있으며, 신분 차별은 독립의 조건과 모순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로 백촌은 차별의 구조를 깨는 유일한 인물로 드러난다. 백촌의 대사가 중요한 것은 그가 추구하는 형평사상이 추상적 인권이 아니라, 구체적 인물(흰고무래, 백정, 하층민)의 계급구조를 평등화하겠다는 백촌의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백촌은 백정이 '사람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며, 독립의 명분보다 먼저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요구한다. 이러한 장면 구조는 백정이라는 신분이 운명이 아니라는 인식을 전환하게 하는 전환구조이다. 마당의 마지막 부분에 사람들이 "흰고무래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 캐릭터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 충돌하며 신분제, 평등의 인식이 변화되는 지점으로 6마당은 "독립이냐, 신분이냐"라는 질문이 아니라, "인간의 평등 사상"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흰고무래는 처음으로 자신을 '사람'으로 대하는 백촌을 만나고, 그 만남이 이후 인생의 궤도를 바꿔놓는다. 이는 작품 전체에서 극적 전환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기능한다.
◇ 백촌과 어른, 김장하
6마당은 '교육'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어떻게 신분차별을 공식화하는가를 보여주는 결정적 마당이다. 이전까지의 차별이 비공식적 폭력이었다면, 학교라는 제도가 백정의 가능성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차별하는지 드러낸다. 이 장면은 흰고무래가 평생 노력해 모은 꿈이 '구조적 폭력과 차별과 억압'으로 무너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흰고무래의 변화다. 흰고무래는 소만 잡는 '노동의 백정'이 아니라, 시장과 사람을 상대하고, 경제적 능력을 축적하고, 다른 백정들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지을라꼬 돈 번다"는 흰고무래의 내면은 단지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정 신분 전체를 평등화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그러나 학교 장면부터 한 인간이 '제도와 규제'로부터 무너지는지 보여준다. 흰고무래의 학교는 서사적으로 '희망'이 아니라 신분 질서의 벽으로 전환된다. 교장은 "기부금과 부역은 돌려주겠다"는 말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학부형들은 백정의 자녀가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그 학교의 '순혈성'이 파괴된다는 식의 말을 서슴없이 뱉는다. 이러한 대사들은 개인적 차별이 아니라 교육기관이 신분질서를 복원하는 정치적 기구로 작동함을 정확히 드러낸다.
이러한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교장의 태도다. 백정이 지은 학교를 백정의 자식이 다닐 수 없다는 말은, 백정의 노동은 이용하지만, 그 노동이 생산한 가치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백정의 노동은 인정하되, 백정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흰고무래가 현판을 뜯어던지는 장면은 이 구조적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비 마음까지 이래 이용하나?"라는 절규는 백정 차별이 더 이상 '천함'의 문제가 아니라 아비로서의 존엄까지 붕괴시키는 폭력임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흰고무래는 단순한 신분 차별의 피해자가 아니라, 자식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아비로, 신분 문제는 '아버지의 권리'와 '인간 존엄' 문제로 전환된다. 덕이가 울며 아버지를 말리는 마지막 신은 비극적이다. 아이의 꿈과 아버지의 열망이 사회의 벽 앞에서 좌절되면서 교육은 평등의 환경과 구조, 교육의 장이 아니라 백정의 자손을 영원히 배제하는 공식화된 구별 시스템으로 드러난다. 흰고무래의 좌절은 조선 사회 전체의 구조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마당이다.
제7마당 '백정과 백촌'은 신분제가 폐지되었다는 근대 조선의 표면적 사실과 달리, 실제 공동체의 일상에서는 여전히 신분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가장 극단적 방식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백촌이 덕이를 학교에 들이기 위해 스스로 양부를 자처하는 장면은 얼핏 보면 개인적 희생처럼 보이나, 이를 비평적으로 들여다보면 제도가 변하지 않은 사회에서 '한 개인의 윤리'가 구조적 폭력에 희생(헌신)하는 장면에 가깝다. 학교라는 공간이 평등한 지식의 장이 아니라 '근대적 신분의 관문'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장벽이 지역 공동체의 합의와 '학부형의 눈치'라는 이름으로 유지된다는 점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신분 잔재의 끈질긴 생명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촌은 탄원서의 의미를 "억울한 사람의 문서 제출"이 아니라 "억울함을 참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화"로 규정한다. 이는 백정 문제를 계몽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백정 스스로가 공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형평사상의 선언이다.
즉, 이 장면에서 백정은 희생자가 아니라 시민으로 전환되는 지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 대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민중은 백촌에게 '백정'이라는 낙인을 씌우고 돌을 던진다. 신분제가 법적으로 폐지되었음에도 '백정과 함께하는 인간도 하층화되는 메커니즘'은, 구조가 사라져도 의식 깊숙이 박힌 구조적 차별성은 그대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의 핵심은 '백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공동체가 훨씬 더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즉, 차별의 본질은 정체성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기득권의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할 수 있는 저항성의 공포라는 점이다. 자식을 학교에 들이고, 양반(백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체의 중심으로 들어오려는 백정은 당시 시대상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백정 문제를 단순한 신분 차별의 문제로 소비하지 않고, 계급 이동을 차단하려는 공동체의 무의식적 폭력까지 포착한다. 그런 점에서 흰고무래의 "백정하고 어울리면 백정 된다 안했소. 내사마 양반하고 어울렸으이 양반아이요."라는 대사는 신분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급진적인 대사이다. '누구와 어울리는가'에 따라 민중이 신분을 재분류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백정이 양반을 업고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고능석 연출은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는데 신분이라는 질서 자체가 사회적 모순이였음을 드러내는 정치적 이미지로 감각된다. 흰고무래의 마지막 대사는 작품 전체의 윤리성을 응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태어난 건 바꿀 수 없어도 사는 건 바꿔야 한다."는 말은 희망의 구호가 아니라, 고착된 신분주의와 조선 사회의 관성적 차별 구조를 정면 비판하며, 민중 스스로 새 질서를 만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백촌을 업고 등장한 흰고무래의 모습은 결국 민중이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된다는 상징적 장면이며, 신분제의 폭력과 공동체의 차별을 뚫고 나오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보여주는 형평운동의 근본적 철학을 시각화하고 있는 것으로, 민중 스스로 새 세상을 세워야 한다는 근대적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뒷풀이<저울처럼 공평하게〉는 '수무바다 흰고무래'의 주제성이 압축되어 있는 장면이다. 저울처럼 공평한 세상, 남강처럼 도도한 흐름이라는 이 단순한 구호는 민요적 리듬과 자진모리의 장단으로 세상을 향한 형평사상의 메시지를 발화한다. 구조적으로 보면 마지막 합창과 '공연의 축제적 결말'이 아니라, 백정·양반·상민을 가르던 오래된 질서가 무너지고 새 질서를 공동체가 스스로 몸으로 만들어내는 의례적 장면으로 해석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대사는 형평운동의 정신을 단순한 교과서적 설명이 아니라 자유로운 율동과 가락으로 승화되어 우리의 장단으로 리듬화되는, 백정의 신분을 벗겨내고 새로운 인간을 선언하는 연희로 변주된다. 뒷풀이에서 관객에게 "이제 당신들이 이어가라"는 메시지를 넘겨주는 대사 구조는 형평사의 평등정신이 남강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리듬 속에서 저울처럼 흔들림 없는 공평함을 배우들이 마당의 연희로 표현하는 순간, 이 작품의 마지막은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공평한가? 우리는 서로에게 평등하고 공평한 저울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수무바다 흰고무래〉의 마당극 형식은 장단과 군무, 오브제와 방언, 배우의 몸과 관객이 하나의 거대한 리듬(공동체)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이러한 리듬은 한국 마당극이 가진 고유한 정서적 구조를 보여준다. 공연은 마당극의 원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역극의 현대적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진주라는 공간, 형평운동이라는 역사, 마당극이라는 형식이 정교하게 맞물려 무대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전통적인 마당극 형식은 한때 '과거의 유산'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마당극이 박제된 양식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가능한, 우리 시민들에게 가장 적합한 형식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 <수무바다 흰고무래>이다. "남강처럼 도도하게 저울처럼 공평하게 모든 사람 마음속에 저울 하나 들여 놓자"를 외치며 야외 무대를 활보한 배우들의 역할도 크다.
흰고무래/김영균, 강상호/김헌근, 꼭두쇠/최동석, 초복이/박진희. 중복이/임규섭, 말복이/강규안, 지모산이/황윤희, 덜렁이/김주열, 홍매/오세아. 고씨/ 이재선, 만우/송광일은 극단 현장의 놀이성과 마당극에 체질화된 배우들이다. 이들의 판과 마당이 있어 수무바다 남강은 도도해 졌고, 평등은 저울처럼 단단해 졌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