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법은 선(善)과 공정(公正)을 다루는 기술"

입력 2026-01-18 13: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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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법. 내란 특검을 비롯해 3특검에 이은 종합특검법, 표현의 자유를 옥죈다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일명 '허위조작정보근절법')... 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1500년 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의 법철학을 들춰 등불로 비춰본다.

산 비탈레 성당 내부 돔과 앺스(동쪽 제단부). 돔은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산 비탈레 성당 내부 돔과 앺스(동쪽 제단부). 돔은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라벤나 산비탈레 성당

이탈리아 반도 북동부 라벤나로 가보자. 476년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때 서로마 수도다. 호노리우스 황제 때 402년 게르만족 침략에 수도를 라벤나로 옮긴 덕에 기독교 로마 제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오롯이 간직한 보배 같은 도시다.

시내 중심가 산 비탈레(San Vitale)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526년 아리우스파 기독교 국가인 오스트로고트(동고트) 왕국 테오도릭 왕 때 라벤나 주교 에클레시우스 주도로 착공된 건물이다. 당시 금융사업가 율리아누스 아르겐타리우스가 돈을 댔다. 그런데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540년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에 수도를 둔 동로마 제국이 라벤나를 정복한다. 7년 뒤, 547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재위, 527년–565년) 때 낙성식을 가졌다.

볼로냐 마조레 광장. 1088년 서양 최초로 대학이 들어선 도시. 볼로냐 대학 법학부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부활시켜 지도했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훗날 1804년 나폴레옹 민법, 1896년 독일 민법, 1898년 일본 민법, 1958년 대한민국 민법으로 계승된다.
볼로냐 마조레 광장. 1088년 서양 최초로 대학이 들어선 도시. 볼로냐 대학 법학부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부활시켜 지도했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훗날 1804년 나폴레옹 민법, 1896년 독일 민법, 1898년 일본 민법, 1958년 대한민국 민법으로 계승된다.

◆동로마 교회 건축과 시각예술의 백미(白眉)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옛 로마 영토 회복을 기념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한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설계를 변경하며 화려한 모자이크 예술을 남겼다. 팔각형(octagon) 평면에 팔각형 돔 천장, 그리고 제단 뒤 반원형 공간인 앺스(Apse, 일명 제단부)로 구성되는 동로마 초기 특유의 중앙 집중식(Central Plan) 설계로 기독교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 앺스(Apse)에 설치한 젊은 황제 차림의 예수그리스도 현현(顯現, Theophany, 신의 출현) 모자이크는 초기 기독교 시각 예술의 백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신을 찬양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황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섭리 아래 제국 통치 권리를 가진다는 카이사로파피즘(Caisaropapism)을 선포하는 의미에서 자신과 황후의 신격화된 모자이크도 설치했다. 신정정치(神政政治)의 상징이자 동로마 제국 최대 정복 군주 유스티니아누스를 화려한 천연색 이미지로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각문화 유산이다.

성 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 거룩한 지혜). 532년 1월 니카 폭동을 겪은 뒤, 1달 뒤, 532년 공사에 들어가 537년 완공시켰다.
성 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 거룩한 지혜). 532년 1월 니카 폭동을 겪은 뒤, 1달 뒤, 532년 공사에 들어가 537년 완공시켰다.

◆532년 동로마 제국 '니카 폭동'의 현장 이스탄불 히포드롬

발걸음을 튀르키예 최대 역사 문화 관광 도시 이스탄불로 옮겨보자. 술탄 아흐메드 광장은 콘스탄티노플 히포드롬(전차경주장)터다. 광장 생김새가 길쭉하게 직사각형인 이유다. 라벤나에 기독교 건축 시각 예술의 금자탑 산비탈레 성당을 완공시킨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즉위 5년 만인 532년 1월 13일 히포드롬에서 1천년 동로마 역사 최대 규모의 시민 폭동이 일어났다. 농민 출신 근위대장으로 유스티니아누스 왕조를 세운 작은 아버지 유스티누스 1세(재위, 518년–527년)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은 뒤 최대의 정치적 위기였다.

히포드롬을 가득 메운 10만여 명의 시민이 "니카(Nica, 승리)"를 외치며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은 반란으로 번졌고, 새로운 황제가 옹립됐다. 도주를 모색하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황후 테오도라의 주장대로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동원해 3만여 명의 시민을 학살하며 반란을 잠재웠지만, 궁전 일부와 성당이 불탔다. 그때 파괴된 성당이 360년 콘스탄티우스 2세(재위, 337년-362년, 기독교 공인과 콘스탄티노플 천도의 주역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들)가 건축하고, 415년 테오도시우스 2세(재위, 402년-450년, 기독교 국교화으 주역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손자)가 증축한 성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튀르키예어 Ayasofya, 거룩한 지혜)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모자이크. 547년.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모자이크. 547년.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테오도라 모자이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황후. 547년.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테오도라 모자이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황후. 547년.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537년 성 소피아 성당 건축

히포드롬 맞은편 200여m 거리에 자리한 성 소피아 성당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거대한 원형 돔의 장엄한 성당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듯,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낸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반란 진압 1달 뒤, 532년 2월부터 재건에 들어가 537년 12월 크리스마스 이틀 뒤 27일 완공시켰으니, 1500여 성상(星霜) 그대로다.

감독 2명이 성 소피아 성당 건축을 맡았다. 기하학자로 건물 구조를 설계한 안테미오스, 돔 설계를 맡은 이시도로스다. 성 소피아 성당은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의 원(員)에 가까운 팔각형 평면의 중앙 집중식과 다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 교회 건축의 표준이 된 바실리카 양식의 직사각형 평면구조를 따랐다. 서쪽 나르텍스(Narthex, 주 출입구)에서 동쪽 끝인 앺스(Apse)까지 80m 바실리카 양식이다. 앱스(apse)를 동쪽에 두는 이유는 고대 태양 숭배 전통에 따라 해가 뜨는 동쪽을 선택한 까닭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솔로몬의 계승자" 선언

성 소피아 성당은 바실리카 양식을 따르면서도 본당(Nave) 중심 천장에 지름 32m, 높이 55m의 거대한 돔을 설치했다. 거대 돔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펜던티브(pendentive, 사각곡면대, 四角曲面臺)를 받치고, 그 아래 교각을 설치했다. 바실리카 양식 평면에 중앙 집중식의 한 형태인 펜던티브 돔을 얹어 돔 바실리카(Domed Basilica) 양식을 탄생시켰다. 현대 모습은 553년, 557년, 558년 3차례 지진을 겪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이시도로스의 조카 이시도로스가 레바논 발벡 신전의 코린트양식 기둥 가져다 562년 보수한 결과다.

성소피아 성당은 훗날 십자정사각형 동로마(비잔틴) 교회 건축의 전례가 된 것은 물론 르네상스나 바로크 돔 건축의 상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대한민국이나 미국 국회의사당의 거대한 돔을 비롯해 현대 국가 정부 청사, 국회, 법원 건물에도 잔영을 남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 역사가 프로코피오스는 『건축물에 관하여 (De Aedificiis)』에서 537년 헌당식 당시 유스티니아누스가 웅장한 성 소피아 성당을 구약의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며 감격에 겨워 자신이 솔로몬을 계승하는 진정한 신정정치 구현자라는 자부심을 표현한 것으로 적는다.

◆현대 법전 모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편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성 소피아 성단 건축을 통해 현대 건축사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가장 위대한 업적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Corpus Juris Civilis) 편찬이다. 역대 로마법을 정리 개편하는 동시에 기독교 국가 안에서 황제 정치, 황제 입법주의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①법전(Code, 529년 제정, 534년 개정, 라틴어), ② 학설집(Digest, 533년 편찬, 라틴어), ③ 강요(Institutes, 533년 제정, 라틴어), ④ 신법(Novellae, 534년, 그리스어)을 편찬하고, 1)사유재산 보호, 2)계약 자유를 비롯해 현대 민법의 기본 뼈대를 체계화시켰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법은 선(善)과 공정의 기술(ars)"

서양 최초의 대학으로 1088년 설립된 볼로냐 대학이 법학부를 통해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되살려 강의했고, 1804년 프랑스 민법(나폴레옹 법전), 1896년 독일 민법, 1898년 일본 민법에 이어 1958년 한국 민법의 근간으로 부활했다. 영미법(Common Law)이 아닌 대륙법(Civil Law)의 모태인 셈이다. 한국 법체계의 모델인 대륙법의 법철학은 법을 이성적으로 설계한 규범 체계로 간주하며 미리 정한 이 규범을 모든 시민의 준수를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법원의 판단, 판례가 우선시되는 영미법과 달리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한 대륙법의 특징이다. 지금 대한민국 입법부는 이성적인 법을 만들고 있나?

"Ius est ars boni et aequi, 법(ius)은 선(善)과 공정(公正)의 기술(ars)이다" 1500년전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명기된 이 놀라운 법의 정신을 되새기며 한국사회 입법이 선과 공정함으로 국민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