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쓰지도 못할 마케팅용 쿠폰 아니겠어?"
지난달 말,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대책으로 '전 고객 5만 원 상당의 보상안'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5만 원'이라는 숫자는 자극적이었지만, 기업들이 위기 때마다 내놓는 그저 그런 생색내기용 면피책일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5일 오전 10시, 뚜껑이 열린 쿠팡의 보상안은 세간의 차가운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앱을 켜고 장바구니에 생수 한 팩과 라면 5봉지를 담았다. 결제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찍힌 숫자는 선명한 '0원'. 복잡한 조건도, 눈속임 같은 최소 결제 금액 제한도 없었다. 쿠팡이 약속한 것은 화려한 수사여구가 아닌, 당장 오늘 저녁 식탁에 오를 라면과 물을 조건 없이 건네는 '실질적인 위로'였다.
숫자로 보면 이 결정의 무게감은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이번 보상에 투입되는 예산은 약 1조 7천억 원. 쿠팡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달성한 지난 3분기 누적 순이익의 4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기업 입장에서 한 해 농사를 짓고 거둔 수익의 몇 배를 한 번에 쏟아붓는 것은, 단순한 계산기를 두드려서는 나올 수 없는 결정이다. 이는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고객의 신뢰만큼은 잃지 않겠다"는 사활을 건 의지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보통 기업들은 멤버십 회원에게만 혜택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쿠팡은 일반 회원은 물론, 이미 마음이 상해 떠나버린 '탈퇴 회원'에게까지 손을 내밀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피해를 입은 고객이라면 응당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태도다. 여기서 '마케팅'이 아닌 '책임'을 읽은 것은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유통업은 신뢰를 먹고 산다.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쿠팡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물론 개인정보 유출은 뼈아픈 실책이다. 하지만 실수 이후의 대처가 그 기업의 '격(格)'을 결정한다. 핑계를 대거나 시간을 끄는 대신, 곳간을 털어 고객의 장바구니부터 채워준 쿠팡의 이번 행보는 위기 관리의 새로운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오늘 고객들이 받아든 '0원 영수증'. 그것은 공짜 상품 내역서가 아니라, 다시 한번 잘해보겠다는 쿠팡의 묵직한 반성문이자 진심 어린 편지였다. 이제 그 진심에 고객들이 응답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