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더 파격(破格·격식을 깨트림)인가. 보수정당에서 내리 삼선을 한, 얼마 전까지 '윤 어게인'을 외치던 인사를 입각시키기로 한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일까. 아니면 하루가 멀다 하고 폭로되는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갑질 의혹' 녹취의 수위일까.
일견 보수진영을 헤집는 묘수 같았던 이 대통령의 도전이 차츰 자충수로 밝혀지는 모양새다. 배신감과 혼란도 잠시, 전열을 정비한 야권의 파상공세 속 더해지는 이 후보자의 '의혹 패키지'는 정권 전체의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청문회 전까지 지명 철회는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정적이었던 이 후보자를 이렇게까지 감싸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시밭길 걷기를 자처한 청와대의 속내를 짚어본다.
◆野 '자중지란'도 잠시…외려 범여권서 이견 분출
국민의힘 입장에서 이 후보자의 장관 발탁은 명백한 불의타(不意打)였다. "이 후보자를 낙점했다"는 청와대 브리핑을 듣고서야 이 후보자의 당협위원장·당원 지위를 박탈했으니 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8일 긴급최고위원회를 열어 이 후보자를 제명한 직후 "이 후보자는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고 일갈했다.
지난해 초까지 '윤어게인'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이 후보자가 "내란 동조 행위를 사과한다"며 고개 숙이자, 야권이 느낀 배신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본적으로 가장 최소한의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 예의는 지켜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렇게도 탐나더냐"고 원색적인 비난을 남겼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의 각종 논란·의혹 폭로에 집중하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尹 절연', '한동훈 당게 사태' 등을 두고 벌어진 계파갈등 난맥상마저 잠시나마 잦아들었다.
야권의 파상공세에 이 후보자는 이른바 '1일 1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만 해도 ▷보좌진 대상 폭언·갑질 의혹 ▷국회 인턴 특혜 등 자녀의 '부모 찬스' 의혹 ▷자녀의 주식 취득 증여서 대납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성비위 전력 인사 옹호 논란 ▷가족회사 'KSM'의 세무조사 유예 등 각종 특혜 의혹 등이 있다.
논란이 커지자 여권에서도 이 후보자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의견이 새어나왔다. 의문 부호가 가득한 상황 속에서도 "이 대통령을 믿어보자"던 당 지도부의 방침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이 후보자의 폭언을 들으니 내 가슴이 다 벌렁벌렁하다. 뉴스로 들은 국민들도 맞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라며 "사람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공직도 맡아서는 안 된다. 즉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당의 김상욱 의원 역시 9일 SBS라디오에서 이 후보자를 "과락"이라고 평가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이날 김 의원은 "(기획예산처 장관은) 나라의 돈을 다루는 자리라 돈에 있어서 만큼은 깨끗할 필요가 있는데, '부정 청약' 의혹이 있는 것은 후보자로서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도우미'를 자처하는 조국혁신당에서도 이견이 나왔다. 조국 대표는 이날 오마이뉴스 유튜브에서 "후보자도, 청와대도 이 점만큼은 아주 심각하게 봐야 한다"며 "이 분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 이 후보자가 결자해지 해야 할 사안이라 본다"고 말했다.
◆"청문회 보자"·"지명철회 없다" 버티는 靑, 복잡한 셈법
이 후보자와 청와대는 연이은 논란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쏟아지는 사퇴·지명철회 요구를 일축하며 "청문회까지 지켜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야권은 이 후보자를 넘어 청와대와 이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논란을 예상하고도 이 후보자를 지명한 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의 인사 검증을 맡은 청와대 모두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장동혁 당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이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도록 해선 안 된다. 즉각 지명을 철회하고 인사 참사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송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후보자 논란의 핵심은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실패"라며 "검증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예 검증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증을 왜 청와대가 하지 않고 국민이 해야 하나"며 "왜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나"라고 되물었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그럼에도 '이혜훈 카드'를 밀어붙이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청와대의 행보에서 이제와 기수를 돌리는 데 들어가는 '기회비용'의 부담감과, 내홍에 시달리는 야당 상황에 편승하면 공세를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함께 엿보인다는 것이다.
우선 청와대 입장에선 이 후보자의 낙마 자체가 정부 운영에 있어 큰 악재가 될 위험이 있다. 정부가 올해 역대 최고 규모의 728조원 예산을 편성한 만큼, 이를 맡을 적임자를 지체 없이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와 이 후보자가 낙마한다면 시간이 끌리는 것은 물론, 대체자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이 '송곳 검증'을 벼르는 상황에서 내세울 만한 깔끔한 인사를 단시간에 찾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이 후보자 지명에서 보여준 '탕평 인사' 기조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는 난도가 더욱 높아질 테다.
대통령이 이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할 경우, 이 후보자의 정치 생명이 그대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부담으로 꼽힌다. 3선 중진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손에 쥔 이 대통령 입장에서도 따라붙는 부채감이 상당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후보자는 정치 인생을 죄다 보수 진영에서 지낸 인사다. 이런 이 후보자가 국민의힘에서 제명 당했다 해서, 낙마 이후 진보 진영에 새 둥지를 틀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더군다나 이미 여권 내에서도 이 후보자에 대한 비토가 상당한 분위기다.
한편에서는 청와대가 내홍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국민의힘을 보며 공세 방어를 확신하는 듯하다는 풀이도 나온다.
국민의힘 내 계파갈등은 지난 7일 장 대표가 쇄신안을 발표한 뒤에도 쉬이 멎지 않고 있다. 친한계가 '당게 사태'의 후처리를 두고 강하게 반발하는 데다, 이달 중순부터 이어질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 선고의 결과에 따라 '尹 절연 여부'가 갈등의 진앙이 될 여지도 남아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당내 수습에 당력을 낭비하는 사이, 원내 다수당인 여권의 힘을 빌려 비교적 약화된 공세를 방어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野 파상공세·민심 압박 버텨낼까…다음 주가 '분수령'
여야는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오는 19일 하루, '마라톤' 방식으로 진행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이는 오는 12일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의결로 확정될 예정이다.
이 후보자와 청와대는 남은 아흐레 동안에도 방어와 유보, '무대응 전략'을 번갈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방식이 야권의 십자포화를 막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지라도, 민심 이반은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심이 이미 이 후보자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징후는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성인 1천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지명을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한 응답은 35%를 기록한 반면, '잘못한 결정'이라 본 응답은 42%로 나타났다.
해당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긍정평가(61%)가 부정평가(29%)를 두 배 이상 앞질렀음에도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휴대전화 가상번호 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8.2%.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민주당 내에서도 불편한 기색이 감지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후보자 지명 강행이 부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의원들은 지난 8일 열린 토론회에서 관련 입장을 밝혔다.
이날 박정 의원은 "본인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당연히 자진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이 후보자를 몰아붙였다.
진성준 의원은 "적절한 인사일까 싶긴 했다. 철저하게 검증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판단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며 비교적 유보적인 입장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