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 우산 속의 고독, 혹은 차가운 자유의 초상

입력 2026-01-15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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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1877)

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1877).캔버스에 유화물감, 212.2 x 276.2cm, Art Institute of Chicago
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1877).캔버스에 유화물감, 212.2 x 276.2cm, Art Institute of Chicago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걸작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는 파리 더블린 광장 인근의 교차로를 무대로, 근대 도시 파리의 한 순간을 포착한다. 젖은 보도블록 위로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빛 공기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무심한 행인들의 발걸음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근대 파리라는 도시가 어떤 질서와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있다.

화면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단서는 인물들의 손에 들린 검은 우산이다. 우산은 오랜 역사를 지닌 물건이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금속 골조와 방수 직물, 그리고 대량 생산 기술이 결합되면서 도시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림 속 거의 모든 인물이 비슷한 형태와 색깔의 우산을 들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표준화된 공산품이 도시인의 일상을 어떻게 규격화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우산은 비를 피하기 위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산업화된 도시가 개인의 신체와 동작을 일정한 틀 안으로 조직하는 방식을 암시한다.

우산이라는 '작은 지붕' 아래에서 개인은 비로부터 보호를 받지만, 그 대가로 타인으로부터 미묘하게 분리된다. 우산은 군중 속에서 타인과의 우연한 접촉을 차단하고 최소한의 사적 영역을 확보해 주는 이동식 경계이다. 우산과 우산 사이에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간격은, 근대 도시인들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익힌 하나의 태도, 혹은 '차가운 예의'의 형식처럼 보인다.

도시의 암묵적 질서 위에서 인간관계 또한 독특한 방식으로 재편된다. 인물들은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서로 얽히지 않은 채 허공을 스치거나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흘러갈 뿐이다. 이러한 모습은 보들레르가 포착했던 '플라뇌르'(Flâneur), 도시를 거닐되 그 속에 완전히 섞이지는 않는 근대적 '관찰자'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화면 전면에 등장하는 커플에게서조차 정서적 친밀감보다는 세련된 복장을 드러내는 사회적 제스처가 먼저 읽힌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거리를 오가는 군중은 늘어났지만, 공동체는 오히려 옅어진 곳, 이것이 카유보트가 그려낸 도시의 한 단면이다.

이 차분하고 냉정한 무대를 완성하는 것은 배경이 된 거리 그 자체다. 시야를 깊숙이 관통하는 대로와 뚜렷한 소실점, 자로 잰 듯 정렬된 건물의 입면은 오스만 남작의 파리 대개조가 낳은 결과물이다. 카유보트는 이 공간을 인상주의 특유의 흐릿한 붓질 대신, 건축 도면을 그리듯 치밀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묘사한다. 굽이진 중세의 골목길을 밀어내고 들어선 직선의 거리들은, 도시가 점점 감성보다는 이동과 가시성, 효율과 질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카유보트의 화면 위에는 서로 다른 세 차원의 근대성이 중첩되어 있다. 우산으로 대표되는 기술적·물질적 근대성, 스쳐 지나가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근대성, 그리고 오스만식 대로로 상징되는 공간적 근대성이 그것이다. 카유보트는 비 오는 파리의 낭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근대라는 새로운 질서가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 순간을 포착한 셈이다.

19세기의 도시 풍경을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유비를 떠올리게 된다. 우산 대신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본 채 서로를 외면하는 지하철의 풍경은, 카유보트의 그림과 그리 멀지 않다. 이는 해석의 확장일지 모르지만, 도시가 자유를 약속하는 동시에 새로운 고독과 거리감을 생산해 왔다는 사실만은 19세기와 21세기 사이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함께 있지만, 각자의 우산 아래 고립된 존재들이다.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