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인간과의 공존은 5천~6천년 전 유라시아 초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식량자원으로 길러진 가축과는 달리 말은 물건을 옮기며, 농경과 교역을 위한 핵심 이동 수단으로의 역할이 컸다. 인류 사회가 거대해질 수록 말의 역할은 더 커졌으며, 심지어 현대 전쟁에서는 첨단 전투기에 해당하는 핵심 전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개는 반려화되기까지 2만여 년, 고양이는 7천여 년의 반려화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의 가축화 또는 반려화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잛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식동물인 말이 인류의 동반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배경은 무엇일까.
◆유전학적으로의 친밀함
야생의 말이 인간과 단기간에 친밀해진 유전학적 배경이 있다고 한다.
말은 초식동물이면서도 의외로 서열과 리더십에 많은 영향을 받는 동물이다. 말은 피식자 동물로서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주변의 미세한 변화를 살피며 위험에서 회피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이러한 말의 특성을 선택적으로 개량하기도 하며 더 발달시키기도 했다. 먹이와 리더십을 발휘하며 점차 인간에게 순응 잘하는 개체들을 번식시켰다. 인간에게 순응하는 개량 과정 속에서도 인간의 심박과 몸짓, 심지어 감정 마저도 직관적으로 감지하는 능력과 역동적으로 달리는 능력은 더 발달시켰다.
역동적으로 달리는 능력이 인간과의 섬세한 교감과 융화되며 말은 명마라는 찬사를 얻게되었다. 사람을 구하고, 나라는 구하는 전설들이 넘쳐나며, 기마, 경주마, 승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말은 사람의 표정(분노·평온)을 구분한다고 한다. 긴장한 사람 옆에서는 자신도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반 대로 차분한 인간과 함께 있을 때는 심박수도 감소하고 안정적인 행동이 증가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훈련에 의해 습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 또는 공명(resonance)에 가깝다고 한다.
◆현생 인류와 감정을 공감
인간과 친척간인 '오랑우탄' 인간과 가장 닮았으며 지능도 높다. 하지만 의외로 폭력적이다. 인간이 함께 지내기 가장 위험한 야생동물 군에 해당한다.
인간과 대화하는 '앵무새' 지능이 높으며 수명도 사람만큼 길다. 평생을 함께 사는 사례도 있지만, 인간이 앵무새의 습성을 헌신적으로 챙겨야 가능하다.
'고양이' 바쁜 현대인의 생활 패턴과 잘 어울린다. 원룸 처럼 작은 공간에서도 잘 지내는 편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독립적 성향이 강하며, 주인보다는 거주 공간에 대한 애착이 더 깊다. 고양이 키우는 반려인들을 자신들을 '고양이 집사'라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과 함께 지내는 자체를 행복으로 인지하는 동물이 있다. 바로 개와 말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한 주인에게 애착을 보이며 심지어는 상실감에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말의 해를 맞이하여, 여느 가축이나 동물과는 달리 개와 말이 왜 이토록 인간과 교감하고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개의 고고학적 진화 배경을 살펴보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인간과 늑대. 공존의 시작
개의 선조는 고대 회색늑대였다. 그런데 해부학적으로 개로 진화하기 시작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2만~ 3만 년 전으로 확인된다.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영구 동토에서 발견된 개의 두개골 화석과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늑대와 개의 두개골 화석이 그 증거다.
프랑스 남부 지방의 쇼베 동굴(Chauvet Cave)에서는 인간과 늑대와의 공생을 암시하는 2만6천 년 전 발자국 흔적이 화석으로 남아있다. 10세령 으로 추정되는 어린이 발자국을 따라 같은 방향으로 함께 이동한 늑대의 발자국이 45m 길이로 이어져 있다. 나지막한 동굴 천정에는 횃불에 그을린 흔적도 확인되었다. 깊은 동굴 속을 아이가 횃불을 들고 걸어가는 동안 나란히 늑대가 동반한 흔적으로 고고학자들은 추론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간과 늑대가 공존한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증거로 소개되고 있다.
2만6천 년 전의 지구의 환경은 마지막 빙하기의 절정기 직전으로 매우 추웠다. 후기 구석기 인류가 석기를 이용해 맘모스, 순록, 들소를 사냥하며, 열매나 뿌리를 채집하며 살아가던 시대였다.
◆천적에서 공존으로
2만~3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의 절정기 혹독한 환경을 인류와 회색늑대는 동시에 맞이했다. 당시 인류와 회색늑대는 집단으로 사냥하는 공통점을 가졌으며, 동일한 사냥감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인간에게 호전적인 회색늑대는 천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은 회색 늑대에게 더 불리했다. 사냥감이 줄자 집단이 와해되고 새끼들은 인간 주변에서 먹을거리를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다. 인류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 한, 동굴 주변에서 배회하는 늑대가 더 위험한 포식자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상황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늑대와 인류와의 공존이 시작된 배경으로 추정한다.
◆인간에 의해 진화된 개
Robert L. Cieri가 이끄는 연구진 (.Current Anthropology. 2014)에 따르면 현생 인류는 고대 인류에 비해 눈두덩이가 낮아지며 점차 여성화(Feminization)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호전적인 본능은 줄어들고 사회적 협력에 부합하는 인류의 '자가 길들이기'(self-domestic action) 과정으로 설명한다.
고대 개의 두개골 화석을 회색늑대의 두개골 화석과 비교하면 인류의 두개골 변화 패턴과 유사하다고 한다. 특히 개와 인간의 공존이 시작되는 2-3만년 전 부터 고대 개의 두개골의 여성화(Feminization)가 두드러 진다고 한다.
마지막 빙하기의 극한의 환경에서 인간 주변을 배회하며 연명해야 했던 늑대들 중에서도 보다 순하고 인간에게 유리한 개체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길들이기'(domestic action) 과정의 결과 일 것으로 추정한다. 바로 개의 기원설이다.
◆인간을 닮아가는 개
현대에서도 개의 진화는 진행 중이다, 주인 닮은 개, 주인의 행동을 따라하는 개, 사람처럼 행동하는 천재견들이 늘고 있다.
하루종일 주인의 살피며 주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개는 점 점 더 똑똑해진다. 사람보다 1만 배 이상 발달한 후각능력은 주인에게서 발산되는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으며, 뛰어난 청력과 주인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순간적으로 감지해 내는 동체 시력을 통해서 주인의 기분을 알아챈다.
주인이 무엇을 필요한지 가르치지 않았는 데도 그 상황에 적합한 물건을 가져오거나, 힘들어하는 주인을 위로하는 개, 익살스럽게 미소지어 주는 개, 함께 노래하는 개 처럼 다양한 재주를 가진 천재견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개행동전문가들은 천재견의 등장을 주인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주인을 의지하고 주인과 함께 동거동락 하는 자체가 행복한 개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높다고 한다.
말의 해. 말을 돌보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반려견을 돌보는 가족들은 1천500만 명에 달한다. 반려견이 인간과 친해지기까지 이러한 고고학적 동반 관계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한번 되새기고, 국민 모두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다지는 새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수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