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빵을 찾아 순례자처럼 여행 오는 '빵지순례'의 도시, 대구
'우즈'(WOOZ), '남산제빵소', 팔공산 '헤이마', 최정산 '오퐁드푸아', 고성동 '빌리웍스' 등 즐비
이제 대구는 별별 빵을 찾아 순례자처럼 여행 오는 '빵지순례'의 도시다. 명예의 전당 그 반열에 오른 '커피명가' 같은 전국구 로컬커피를 중심으로 전국 최강 인프라를 가진 바리스타, 그리고 로스터, 거기에 베이커리카페 붐을 주도한 '우즈'(WOOZ), '남산제빵소', 팔공산 '헤이마', 최정산 '오퐁드푸아', 고성동 '빌리웍스' 등과 같은 핫플 '창베카'(창고형 베이커리카페)가 대구를 프랑스 못지않은 '빵시티'로 발효시켰다.
단팥빵~고로케~마약빵~레몬빵 스템프를 찍기 위해 대구를 찾는 관광객을 100여명의 제빵 기능장들이 커버한다. 그들은 골목골목을 연결하며 한때 전국 최강이었다가 추락했고 다시 새로운 빵의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는 대구 빵의 또 다른 100년을 향해 대장정 중이다. 이를 위해 대구시가 2019년부터 매년 '대구 명품빵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전문가와 시민 평가단의 평가로 선정된 최고빵을 '올해의 대구 명품빵 : 대빵'으로 선정 발표하고 있다.
제1회는 '애플모카빵', 제2회는 '애플파이', 제3회는 '팔공사과빵'이 발굴됐다. 특히 전국발 공룡빵 때문에 폐업의 기로에 놓였던 각 구별 골목빵들도 새로운 도전장을 냈다. 2010년 손노익, 이장열, 정노열, 김철호, 김항수, 우인호 등 6명의 서구의 빵집 주인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서구대표 골목빵'을 출시하면서 '서구맛빵·해오름빵·삼구빵'을 특허출원하기도 했다. iM뱅크 등 대표적 향토기업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구입해가기도 했다.
◆오복빵
북구 침산동 3공단에 자리 잡은 '오복빵'은 오복건빵과 함께 70년대 대구의 구멍가게 빵 시장을 주름잡았던 인기브랜드다. 당시 군소 빵 공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혼·분식 장려 운동 때문에 크게 성장한다. 그때 서울 을지로에서 태어난 삼립도 70년쯤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북구 칠성동 1가에 대구센터를 설립한다. 국내의 빵 공급 루트는 크게 제과점(윈도우베이커리)과 빵공장(양산업체) 두 곳으로 집약된다. 국내 양산업계 빵 시장은 <주>샤니가 앞선 가운데, 그 뒤를 크라운 베이커리, 뚜레쥬르(CJ 계열), 삼립, 기린, 서울식품 등이 추격하는 구도였다. 하지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오복빵이 선두권이었지만 결국 부산에서 생겨난 <주>기린에 79년쯤 잡아먹힌다.
◆기린의 등장
부산 반여동에 본사가 있는 '기린'의 원래 브랜드는 '삼립'이었다. 69년 삼립빵 영남권 총판 자격권을 갖고 등장한 뒤 81년 법인명을 기린으로 바꾸면서 대구·경북지역 공략에 나선다. 한양대 공대 출신인 김정운 회장, 그는 시장분석 결과 기린의 생존에 반드시 대구와 경북시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대구로 진입하면서 기린은 제과점 사업을 특화한다. 1982년 기린 산하에 다크호스로 불렸던 '밀탑사업부'가 생긴다. 하지만 지역 제과업계는 밀탑이 자신의 숨통을 죌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한다.
밀탑의 마케팅은 고품격이었다. 전국에선 처음으로 셀프서비스란 걸 도입한다. 그 전만 해도 직원이 빵을 골라줬는데 밀탑은 손님이 직접 고르도록 했다. 또한 자동제빵시스템과 생크림(요즘 동물성생크림보다 저급인 식물성크림) 버전을 개발한다. 밀탑은 일본 오사카와 도쿄의 제빵 기술자를 국내로 데려와 기술을 배웠다. 빵 나오는 시각을 입구에 공개할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경영을 했다.
대구침공이 쉬웠던 이유는 뭘까? 뉴욕·런던·뉴델이 세무조사 등으로 동반 폐업하자 지역 제빵기술이 점차 동반하락하게 된 것이다. 무주공산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난 셈이다. 하지만 1992년 복병을 만난다. 외부의 적이 아니고 내부의 적이었다. 1989년 상장기업이 된 기린은 경영 합리화를 단행한다. 밀탑사업부는 2002년 대구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어쩜 밀탑보다 막강한 파워를 가진 파리바게뜨가 이미 대구에 상륙했고 섬유경기 하강으로 빵 사업의 미래가 그렇게 밝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파리바게뜨의 대구 침공
지역 빵장수들은 파리바게뜨 얘기만 나오면 다들 한숨을 내 쉰다. 80년대 밀탑에 혼이 난지 얼마 안 돼 재차 파리바게뜨 '대구대공습'을 허용한 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파리바게뜨는 삼립을 모태로 성장해 한때 4개 계열 18개 브랜드, 연매출액 1조원을 기록한 SPC그룹 회장 허영인의 작품. 80년대초 삼립에서 독립해 세운 <주>샤니를 기반으로 베스킨라빈스와 던킨 도너츠 사업까지 성공시켰다. 파리크라상은 법인명, 파리바게뜨는 브랜드명이다. 파리바게뜨는 쉽게 파리크라상의 가맹점 브랜드이다. 86년 10월 17일 샤니 계열사인 파리크라상이 설립되고 그해 서울 반포에 크라상 1호점, 88년 바게뜨 1호점이 광화문에 등장한다. 이때 시장조사팀은 한강 이남에서 어느 지역부터 치고 들어갈 것인가를 놓고 고심했다. 대구가 가장 고급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앞세우고 대구부터 공략한다. 89년 10월 수성구, 90년 6월29일 중구 동성로에 직영점을 연다.
◆스텔라베이커리
1980~90년대 초 대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중구 공평동 중앙초등학교 옆 '스텔라 베이커리'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광복 직후 형성된 일본식 제과 제빵 문화를 대구 정서에 맞게 발전시킨 제과점 중 하나였다. 김호상 사장은 아직도 대구 제빵인들에겐 입지전적 인물로 추앙받는다. 그는 빵밖에 몰랐다. 훗날 대한제과협회장 김영모도 그의 밑에서 기술을 배워 훗날 상경해 국내 최고의 제빵인으로 성공한다.
그는 60년대 대신동에서 삼송 빵집을 잠시 경영하다가 곧이어 대구백화점 앞으로 이전해 4년간 실력을 발휘했지만 돈은 안됐다. 재차 한일극장 동편 밀밭제과 근처로 자릴 옮겨 2년간 버텼지만 역시 고전한다. 그때 김 사장 앞에 새로운 점포가 나타났다. 지금은 2·28기념중앙공원에 편입돼 사라진 스텔라 본점 건물이었다. 거기서 대운이 터졌고 88서울 올림픽 직후부터 스텔라는 대박행진을 한다. 그는 손님이 원하는 빵을 고를 수 있는 지역 첫 셀프시스템을 도입한다. 그의 기술은 대구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돈을 조금 벌면 재빨리 최첨단 제빵기기를 구입했다. 신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현지로도 날아갔다. 호사다마랄까, 그의 사업은 '희극'이었지만 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90년대 말 어느 날 밤, 김 사장 내외가 자신의 아파트에 침입한 괴한에게 피살된 것이다. 제빵인들에게는 너무 큰 슬픔이었다.
◆다크호스 제과기능장
2017년은 위축을 받고 있던 대구빵이 신지평을 여는 해였다. '르배베이커리'의 배재현, '빵장수쉐프' 단팥빵의 박기태, '데일리호스브라운'의 배재호. 이 셋은 대구 제빵사를 새로운 구도로 진화시킨 주인공들이다. 셋은 삼국지 영웅처럼 의기투합해 설탕으로 만든 미니어처 같은 꿈의 작품 '다크 나이트'를 만들어 2017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월드페이스트리컵'에서 주목을 받는다. 다크 나이트는 세계 유명 영화 속 캐릭터를 소재로 한 것인데 배재호는 초콜릿 공예, 박기태는 설탕 공예, 배재호는 아이스카빙 공예를 분업해 빛나는 결정체를 연출한 것이다.
더불어 달서구 대구수목원 앞 '행운의 시간들'의 이동우 대표와 빵장수쉐프 박기태 대표는 달구벌명인에 선정된다. 이 대표는 26세 때 대구 시내 동성로 풍차베이커리 권영오 사장 밑에서 기술을 익힌다. 동촌 강촌마을 코른베르그를 거쳐 2012년 대구수목원 초입에서 천연발효종빵 전문 베이커리를 오픈한다.
배재호 대표는 줄서서 먹는 바게트 샌드위치로 SNS에서 유명해졌고 대구음식관광박람회에서 '애플모카빵'으로 수상했다. 2013년 8월 중구 동인동에서 '빵장수쉐프'를 시작해 7차례 실패 후 생크림 같은 팥소 단팥빵으로 제기한 박기태 대표는 대구 단팥빵 신드롬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도처에 고수들 포진
상인동 '오월의 아침'은 천연발효종 시골빵과 '은행나무빵'으로 주목을 받았다. 북구 '라운드라운드' 대표 최무경은 천연 프랑스 버터를 넣은 크루아상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2008년 탈도심, 팔공산 자락에 '초이스엠'이란 전원베이커리를 오픈한 최원도 대표는 지역의 첫 제과기능장이다. 천연효모종을 이용한 단팥빵과 몽블랑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수성구 범어동에서 2015년 문을 연 '우니카트'('단 하나밖에 없는'이란 뜻의 독일어) 대표 김명준은 토목건축의 길 대신 제빵인의 길을 선택했다. 효모의 냄새가 그대로 전해지는 사우어도(Sour dough) 브런치를 전문적으로 판다.
북성로에 가면 공구를 모티프로 한 관광용 시그니처 빵을 볼 수 있다. 공구 박물관 '모루' 근처에 자릴 잡은 '팩토리 09'에서 파는 '공구빵'이다. 계명대 패션마케팅학과를 나와 공예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최원석 대표는 지역을 대표하는 선물용 빵으로 공구빵을 개발했다.
현재 동대구점, 칠곡점, 수성아리아나호텔점 등으로 확산된 '레이지모닝'은 대구시청 근처에서 처음 생긴 지역 첫 크루아상 전문점이다. 서울 홍대 앞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던 홍사광, 대한항공 케이터링 관련 베이커리 파트에 있었던 배현진이 대구로 내려와 일을 냈다.
그리고 아는 사람만 아는 달성공원 앞 '적두병'(赤豆餠)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적두병은 '대구식 황남빵' 같다. 2006년부터 장사를 시작한 이학철 사장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린다. 속이 뻥 비어있어 부숴 먹는 재미가 있는 '공갈빵'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