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원하는 건 '기름'이 아닌 '통제권'…베네수엘라 사태의 본질

입력 2026-01-05 14:48:22 수정 2026-01-05 19: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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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원유 확보 넘어 에너지 공급망 주도권 '정조준'
중국의 남미 자원 외교 차단하며 미·중 패권 경쟁 전선 확대

세계 1위 석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 영해에 설치된 석유 굴착장치. 연합뉴스
세계 1위 석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 영해에 설치된 석유 굴착장치.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국제 에너지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원유 확보 차원이 아닌 에너지 흐름을 조절하는 통제권을 쥐고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 트럼프 석유 증산 공언,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석유 기업의 투자를 통한 베네수엘라 석유 증산을 공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4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은 석유기업 입장에서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에 뛰어드는 것은 보상보다 위험이 더 크고,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는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가장 먼저 정정 불안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군에 체포되고,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정상 역할을 대행하게 됐지만 미국과 원만한 협력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클레이턴 세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프로그램의 선임연구원은 "베네수엘라의 미래 정치 상황에 대해 해답보다는 의문이 더 많아지게 됐다"며 "그곳에서 좋은 기회를 잡아보려는 기업과 산업 기획자라면 이를 맨 먼저 염두에 둘 것"이라고 짚었다.

공고히 자리를 지켜온 대형 기업이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미국 석유 기업은 셰브론이다. 베네수엘라 석유 가운데 4분의 1이 셰브론을 통해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신규 기업이나 한때 베네수엘라에서 사업을 했던 기업이 베네수엘라 시장에 들어와 셰브론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글 선임연구원은 "셰브론은 베네수엘라에서 말 그대로 100년간 사업해왔다"며 "셰브론은 모든 것을 지켜봤고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시종일관 그곳에 있었으며 오늘날 정말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분석했다.

마이클 클레어 미국 군축협회 선임 방문연구원도 "베네수엘라에 진입하는 어떤 기업이라도 그만큼의 역량을 내기 위해서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그냥 베네수엘라에 들어가서 원유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셰브론의 공정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며, 이 기술을 곧장 쓸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PDVSA의 엘 팔리토 정유소.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PDVSA의 엘 팔리토 정유소. 연합뉴스

◆ 미국 원유 무기로 중국 견제 나서나

이번 사태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미국이 세계 에너지 패권을 유지하는 한편 중남미에 일대일로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1위 원유 매장량 보유국으로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미국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카리브해 연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볼 수 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단순히 남미의 한 독재국가에서 발생한 정치적 소요나 일시적인 정권교체 시도로 치부해서 안 된다"면서 "이는 세계 에너지 패권과 남미의 안보지형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했다.

하 연구원은 "베네수엘라 사태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남미 경제에 '양날의 검'과 같다"며 "이곳에서의 정세 불안은 미국의 안보 전략과 직결되며 반대로 이곳의 안정화는 미국의 에너지 안보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도 "명분은 마약 테러 근절이지만 미국 석유기업들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공고히 하겠다는 메시지가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미국 정유사 설비가 베네수엘라에 주로 매장된 중질유 처리에 특화돼 있음을 감안하면, 베네수엘라에 대한 영향력 강화가 장기적으로 미국 에너지 안보에서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평했다.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 역시 기대해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중국은 원유담보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면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왔는데, 170억∼190억 달러로 추산되는 원유담보대출 잔여원금조차 회수가 불확실하게 됐다.

문홍철 DB증권 연구원은 "근본 원인은 남미에서의 중국 영향력 확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있고, 석유나 마약은 부수적 효과이거나 명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 제거에 성공한다면 다음은 태평양 전선에서 도련선을 매개로 지정학적 거부라인을 명확화해 나갈 것"이라면서 "세계적인 전시경제 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며 이는 경제와 자산시장에 지대한 테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