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신 아역에서 한국 영화의 거목으로
한국의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혈액암 투병 중이던 고인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뒀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려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지 6일 만이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5세 때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1957)로 데뷔했다. 영화 제작자였던 아버지 안화영 씨의 권유로 시작한 연기 인생은 아역 시절에만 70여 편의 기록을 남겼다. 특히 7세 때는 '10대의 반항'(1959)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대구가 낳은 이 천재 아역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얄개전' 등 수많은 작품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학업과 군 복무를 위해 잠시 현장을 떠났던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복무했다. 20대 중반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4년의 무명 시절을 견딘 끝에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로 성인 연기자로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말더듬이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거머쥔 순간은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한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 영화사는 고인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임권택, 배창호 등 당대 거장들의 페르소나로 활약하며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투캅스', '실미도' 등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소화하지 못한 배역이 없던 그는 '캐릭터의 만물상'으로 불리며 한국 영화 부흥기를 이끌었다.
고인은 투철한 직업의식과 자기 절제로도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배우가 존중받는 직업이 되길 바란다"며 작품 선택에 신중했고, 자극적인 베드신을 지양하는 등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했다. 사생활에서도 잡음 없는 겸손한 삶을 살았던 그는 배우라는 직업의 사회적 인식을 격상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과 시네마테크 건립 등 영화계의 굵직한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며 '영화계의 영원한 어른' 역할을 자처했다.
2019년 혈액암 진단 후 완치와 재발을 반복하는 투병 중에도 연기 혼은 꺾이지 않았다. 최근작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3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현장을 지키는 투혼을 발휘했다. 고인은 늘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자 숙제"라고 말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대중과의 약속을 지키려 애썼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의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후배 배우 이정재, 정우성 등이 운구를 맡아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소영 씨와 아들 다빈, 필립 씨가 있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