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대통령이 촉발한 『환단고기』 논란,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진서인가

입력 2026-01-05 14:00:00 수정 2026-01-05 18:01:23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치우치지 않는 열린 자세로 역사를 바로보자

환단고기
환단고기

◆역사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

한국은 지금 미, 중의 대립에서 양자택일의 압박을 받는 것과 함께 또 하나의 국가적 민족적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전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은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한국사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야욕을 노골화했다. 시진핑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망언을 함으로써 동북공정 이론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데 앞장섰고 최근에는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내용을 대학교재에 실어 가르치는 파렴치한 짓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저들이 동북공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택동이 중국 한족의 시조 황제(黃帝)에게 올린 제문(祭文)에서 삼한을 통일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 내용이 나온다. 한국의 중국 귀속이 중국 공산당이 노리는 최종 목표 아니겠는가.

거기다가 일본의 독도야욕, 극우파의 역사 교과서 왜곡 또한 만만치 않다. 북쪽에서는 중국, 남쪽에서는 일본이 호시탐탐 한국의 침탈을 향한 총성 없는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응은 어떤가. 중국의 동북공정도 일본의 독도야욕도 제대로 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들어주는 꼴이 되고 있다. 너무나 한심한 지경이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광복 후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식민지유산을 계승한 반도사학이 제도권을 장악하여 지금까지 80년을 이어온 것이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다.

◆이 대통령이 촉발한 『환단고기』 논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범한 국가 기관이 동북아역사재단이다. 하지만 식민 반도사학이 재단 연구인력의 주체가 되어 설립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국민의 혈세만 낭비한다는 국민적 비판이 있어 왔다.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는 뉴라이트 계열의 영국사 전공자가 이사장에 임명됨으로써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환단고기』 이야기를 불쑥 꺼냈고 『환단고기』 진위 논쟁이 사회적으로 크게 쟁점화되었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망언을 하고 고구려사가 중국 역사라고 중국의 대학교재에 실어 가르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해도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입 닫고 있던 자들이, 우리민족을 중국 한족의 아류가 아닌 대륙의 주인공으로 기록한 『환단고기』를 한국 대통령이 입에 올리자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비난의 집중포화를 퍼붓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환단고기』 논란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국혼은 땅에 떨어지고 자학사관이 판을 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박지향 이사장에게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 라고 질문하는 장면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박지향 이사장에게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 라고 질문하는 장면

◆이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거론한 숨은 의도

이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환단고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한국 대통령이 위서 논란이 있는 『환단고기』를 공식 석상에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박지향 이사장을 향해 환빠 논쟁을 거론하며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환단고기』가 위서 논란이 있는 책이란 것을 대통령이 몰랐을 턱이 없다. 그런데 왜 뻔히 알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 역사왜곡 대응의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는 동북아재단이 역사연구에 있어 친일 강단사학 일변도로 가지 말고 열린 자세로 민족사학과 재야사학의 자료도 폭넓게 연구해야 된다는 소신이 담긴 발언이었다고 본다.

박 이사장이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인 데다가 중국사에 조예가 없는 영국사 전공자라는 점도 이 대통령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박지향 이사장이 대통령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박지향 이사장이 대통령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박 이사장의 잘못된 답변

한국의 역사학계는 강단사학, 민족사학으로 양분되어 있다. 강단사학은 이병도 신석호로 대표되고 이기백, 이기동, 노태돈, 송호정 등으로 계승된다. 민족사학은 신채호, 정인보로 대표되고 윤내현, 이덕일, 복기대, 심백강 등으로 이어진다.

강단사학이나 민족사학이 다 같은 전문연구자들이다. 민족사학을 재야사학으로 호칭하며 평가 절하하지만 사실은 이들 민족사학도 대학에서 강단사학과 동일하게 역사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단지 한국사 범주를 한반도에 한정하지 않고 대륙을 포함시킨다는 점이 반도사학과 다를 뿐이다.

『환단고기』에 대해 강단사학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위서로 낙인 찍어 부정하는 반면 민족사학은 이를 위서라고 배척한 일이 없다. 『환단고기』가 지닌 사료적 가치를 나름대로 인정한다.

그런데 박 이사장은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질문에 대해 "재야사학자들 이야기인 것 같은데 그분들보다는 전문연구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그분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라고 답했다. 또 "모든 역사서가 다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하여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보는 강단사학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박 이사장은 전문연구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 강단사학 전문연구자들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추종하고 민족사학 전문연구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박 이사장은 『환단고기』는 전문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위서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재단에서는 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했는데 민족사학의 전문연구자들은 『환단고기』를 위서로 판정한 일이 없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위증인 것이다.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진서인가

『환단고기』는 삼성기 상권, 하권,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5권을 묶어 한 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이유립을 통해서 1979년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를 한반도를 넘어 대륙의 주인공으로 다룬 『환단고기』는 등장과 함께 한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민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진서인가. 일부 인용한 자료나 내용상에서 후인의 가필이나 조작이 명백해 보이는 내용이 발견된다. 따라서 진서라고 속단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 내용 전체가 허황된 가짜인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

현재 『환단고기』를 일방적으로 맹신하는 환빠도 옳지 않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위서로 매도하는 식빠도 옳지 않다고 본다. 여러 고대 사료를 인용하여 쓴 『환단고기』는 사료적 가치가 있지만 검증을 요하는 책이다.

청나라 때 건륭황제가 8만권으로 편찬한 사고전서 영인본의 일부
청나라 때 건륭황제가 8만권으로 편찬한 사고전서 영인본의 일부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청나라 건륭황제 때 동양 사료를 집대성한 자료의 보고로서(8만권) 여기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없는 한국고대사 관련 귀중한 자료가 산적해 있다. 세계가 공인하는 『사고전서』와 같은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내용의 교차검증을 통해 『환단고기』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동북아역사재단이 할 일이다.

이런 일을 하라고 국민 세금을 출연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 동북아역사재단인데 할 일은 안 하고 식빠를 맹종하면서 세금만 낭비하기 때문에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이다

◆고대사서의 절반은 위서다

명나라 사람 호응린(胡應麟)은 『소실산방필총(少室山房筆叢)』(1589) 사부정와(四部正訛)에서 "내가 진, 한시대 고서를 읽으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위서가 거의 10분지 7은 된다.(余讀秦漢古書 核其僞幾十七矣)"라고 하였다. 청나라 사람 장지동(張之洞)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진서와 위서를 구분하기로 하면 고서의 절반은 내버려야 한다.(一分眞僞 而古書去其半)"

사마천의 『사기』나 왕충의 『논형』에 위서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이는 위서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미 2,000년 전부터 있어 왔음을 말해준다.

고서에서 '위서'가 절반이 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전쟁이나 또는 어떤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 원본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서황이 천하의 서적을 모아서 불태운 이후 그것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위서가 출현했다. 지금 전해 오는 사서삼경 중의 『서경』은 한(漢) 나라 때 나이 90 된 노인 복승(伏勝)이 암기하여 당시의 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서경』은 4,500년 전 요순의 기록이 담긴 책인데 그것을 2,000년 전에 90세 된 노인이 외워서 전했으니 복승의 기억력이 아무리 탁월하다 하더라도 그중에 어찌 오류가 없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누구도 『서경』을 위서로 치부하여 쓰레기통에 집어넣지 않는다.

둘째는 저자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또는 저서의 지명도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유명인사의 저서를 가탁(假託)하는 경우이다. 예컨대 『신농본초경』이나 『황제내경』이 그런 종류에 속한다.

신농이나 황제는 신석기 시대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때는 문자도 없었는데 그들이 무슨 책을 직접 집필했겠는가. 그러므로 『신농본초경』, 『황제내경』은 후인이 신농과 황제가 쓴 것으로 가장한 위서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 두 책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한의학의 경전으로 널리 애독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서뿐만 아니라 위서는 위서대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왔음을 말한다. 『환단고기』를 이유립이 쓴 위서라고 매도하면서 그 내용 전부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부정하는 한국 강단사학의 편협한 주장과는 크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 논쟁, 역사학 혁명 계기 돼야 한다

대통령실은 김남준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발언 이후 논란이 커지자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이렇게 물러서면 대통령이 역사상의 난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긁어서 부스럼만 만들어 놓은 꼴이 된다.

광복 후 80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정치권도 여에서 야로 다시 야에서 여로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보수가 장기집권을 하며 독재를 하고 있는 곳이 역사학계이다.

저들은 일제가 주장한 식민 반도사학의 논리를 80년 동안 변함없이 고수하면서 대륙사관을 주장하는 민족사학을 사이비 사학으로 내몬다. 상고사 연구에 사료 부족을 절감하면서도 100년 전 일본이 식민지배를 장기화하기 위해 날조 왜곡한 자료만을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만리장성 밖에서 홍산문화 유적이 발굴되어도 나 몰라라 하고 『사고전서』에서 조선하, 조선성이 북경 부근에 있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카르텔을 형성하여 철옹성을 쌓아놓고 동북공정 대응이나 독도야욕 저지는 안중에 없다. 이번에 『환단고기』 논란은 저들의 철옹성이 얼마나 견고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저들의 철옹성을 부수고 장기독재를 끝내고 바른역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의 혁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산업을 혁명하고 정치를 혁명하여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다. 이제는 역사학 혁명을 통한 동북공정 대응, 식민사관 청산, 바른역사 정립이 시대적 과제이다.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 논란의 촉발로 끝날 것이 아니라 매듭을 지어야 한다. 이번에 내친김에 청와대에 바른역사정립특위를 설치하여 역사학 혁명을 완수함으로써 경제 대통령, 민주화 대통령에 이은 이 나라 역사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