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정치권과 연예계를 꾸준히, 뜨겁게 달군 논란의 당사자를 한 명씩만 꼽자면 누구일까. 많은 이들이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방송인 박나래씨를 뽑을 테다. 두 사람의 논란은 너무 다른 내용임에도, 그 전개 양상은 묘하게 겹쳐 보이는 측면이 있다. 측근의 거듭된 폭로로 곤경에 빠진 두 사람은 비슷한 대응 전략을 취하다, 결국 더 크게 무너졌다. 도덕성의 흠결 정도를 따지던 논란은 이제 '형사사건 패키지'로 비화됐다.
◆험하게 다루던 도끼에 발등 찍혔나…측근 폭로가 '결정타'
두 논란 모두 속사정에 훤한 '내부자'의 폭로에서 촉발됐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이 단순한 의혹 제기를 넘어 날짜와 대화 내용, 지시사항 등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한 점이 대중으로 하여금 폭로를 더욱 신뢰토록 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서 논란에 대응해 나가야 했다. 다만 '도끼'가 발등을 찍은 이유가, 애초에 '험하게 다룬' 본인들에게 있다는 비판 여론도 만만찮았다.
박나래 관련 논란은 '갑질·임금 미지급 의혹'에서 출발했다. 박씨의 전 매니저들이 박씨에게 상해와 경제적 피해 등을 입었다며 법원에 박씨 소유 부동산 가압류를 신청한 사실이 먼저 알려졌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박씨가 술잔을 던져 상해를 입었다"거나 "24시간 대기시키며 사적 심부름을 강요했다"는 등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이후 박씨의 전 매니저들은 유튜브·언론 등을 통해 ▷대리처방 강요 ▷'주사이모' 의혹 ▷횡령 의혹 등을 순차적으로 폭로하면서, 지난달 초부터 중순까지 관련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 공개된 각종 메신저 기록과 진단서, 사진 등은 폭로의 신빙성을 높였다.
김 전 원내대표의 비위 논란 역시 전·현직 보좌진의 증언·제보에서 시작됐다. 김 전 원내대표와 가족이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앞세워 각종 특혜를 누렸다는 의혹이었다.
'쿠팡 고가 식사 대접'과 '대한항공 최고급 숙박권 이용' 의혹 등이 제기된 이후 ▷가족 공항 의전 요청 ▷지역 병원 진료 특혜 요청 ▷자녀 편입·취업 청탁 ▷아내 업무추진비 카드 유용 ▷구의원 금품수수 등 새로운 의혹이 하나씩 거론됐다.
당 안팎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의혹이 나온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의혹 보도 전면에는 전 보좌진들의 구체적인 증언이 있었다. 이들은 텔레그램 대화 내역 등을 직접 공개하면서 김 전 원내대표를 압박했다.
◆강하게 맞붙다 매일 '논란 추가'만…초반 오판에 '진흙탕' 속으로
논란이 터진 직후 박씨와 김 전 원내대표는 모두 '사과'보다는 '역공'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논란을 키웠다. 역공을 덮는 추가 폭로가 이어질수록 양측의 진실공방은 진흙탕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갑질' '비호감' 등 대중의 피로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도 꾸준히 강화됐다.
박나래는 논란 초기 '전 매니저들의 공갈미수'를 주장했다. 전 매니저들을 경찰에 맞고소하는 등 법적 대응도 예고했다. 정작 매니저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는 일부 부인하고,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는 전 매니저들의 추가 폭로로 이어졌다. 박씨 관련 논란의 핵심으로 거듭난 이른바 '주사이모' 등 불법 의료행위 상습 이용 의혹도 추가 폭로 과정에서 나왔다. 박나래가 전 남자친구와 가족 등 실질 업무를 하지 않는 주변인들을 직원으로 등록하고, 매월 수백만원의 임금을 지급했다는 의혹도 덧붙여 제기됐다.
갈수록 논란의 수위가 높아지고, 법적 쟁점이 더해지자 박씨 입장에서는 '활동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김 전 원내대표의 대응은 한층 더 과격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실체를 공개하겠다"며 전 보좌진들의 텔레그램 대화방을 먼저 폭로하고, 이들을 지난 2024년 12월 직권면직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들이 공익제보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등 직접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맞서 전 보좌진들은 김 전 원내대표가 공개한 텔레그램 대화방이 아내의 '계정 도용'에 따라 확보한 것이었다는 의혹을 추가 제기했다. 가족이 지역구 병원에 진료 특혜를 요구하거나 지역 현안에 개입했다는 폭로도 보도됐다. 김 전 원내대표가 한 가상화폐 거래소에 아들을 채용해주는 대가로 상임위에서 경쟁사의 문제를 지적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김 전 원내대표를 향한 고발이 빗발치자, 경찰은 관련 사건을 서울경찰청으로 모아 함께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일 오후 기준 경찰에 접수된 김 전 원내대표 관련 사건은 10건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을 탓하기 전에 본인 행실을 먼저 돌아보라"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여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오면서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BBS라디오에서 "김 (당시) 원내대표가 더 자숙해야 한다"며 "보좌진과의 갈등을 탓하기 전에 의원 본인이 어떤 처신을 했는지 반성의 계기를 국회의원 전체가 가지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인정' 빠진 뒤늦은 사과…여론은 '냉담'
두 사람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김 전 원내대표는 "모든 책임은 나의 부덕", 박씨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이미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였다.
두 사람의 '지연된 사과'에는 대가가 따랐다. 논란에 '강경대응'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놓아야 했다. 박나래는 논란이 세간에 알려진 지 약 열흘 만에 유튜브 한 채널에 사과 영상을 게시하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첫 의혹 제기 이후 여드레 만에 여당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끝까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섣불리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박씨는 지난달 16일 "더 이상 제작진과 동료들에게 혼란이나 부담이 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활동 중단이라는 선택을 했다"면서도 "추가적인 공개 발언이나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사안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돼야 할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 처신이 있었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제 부족함에 있다.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도 "하나의 의혹이 확대 증폭돼 사실처럼 소비되고 진실에 대한 관심보다 흥미와 공방의 소재로만 활용되는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며 제기된 의혹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진화 실패 논란, 주변인에게도 '불똥'
일파만파 커진 논란은 두 사람의 주변으로 확산했다.
박나래의 경우 '주사이모 논란'이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던 가수 키, 유튜버 입짧은햇님으로 번져나갔다. 이들도 박씨처럼 활동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과거 전파를 탄 장면이나 촬영된 사진 등이 회자된 탓에 정재형, 홍진영, 전현무 등도 관련 의혹과 무관하다는 해명에 나섰다.
김 전 원내대표의 경우 아내에 관한 의혹이 추가적으로 보도된 데 이어, 같은 당 정치인과의 합동 비위(?) 의혹이 입길에 올랐다. 강선우 무소속(지난 2일부로 제명) 의원이 지난 2022년 지방선거기간 자신의 보좌관이 김경 당시 서울시의원 후보자로부터 금품 1억 원을 전달받은 정황을 당시 공천관리위 간사였던 김 전 원내대표에게 토로한 녹취 파일이 지난달 말 공개된 것이다.
이후 김 시의원은 공관위 결정에 따라 단수공천을 받았다. 여기서 강 의원의 금품 수수 여부와는 별개로, 김 전 원내대표가 이 사실을 묵인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로 터져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사과와 함께 몸을 움츠리면서, 끝 모르고 이어지던 폭로전도 점차 잦아드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수사기관의 판단이 남아있다. '초토화'된 연예계와 여권 정치판 또한 '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