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김우석]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부끄럽다

입력 2026-01-08 09:00:00 수정 2026-01-08 18: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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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정형외과의원에 다녀왔다. 어깨가 아파서다.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나란히'를 시켰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위에서 양팔을 지그시 눌렀다. 그런데 아픈 팔만 힘없이 내려갔다. "뭐지 이게?"

이후 선생님은 '바르게 앉는 법'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셨다. 어깨가 아픈데, '기본 자세'에 대해 한참 설명하신다.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으면 어깨 통증도 상당히 완화될 것이라고. 결국 '코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의사도 아니고 정형외과 의사가 몸 전체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장광설이다. 나오면서 나 나름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문제는 현상의 배후가 되는 본질에서부터 풀어가야 하는구나.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직립보행'에 연유한다. 대부분 영장류는 앞뒤 네 개의 손을 가지고 산다. 인간은 그중 두 개의 손을 포기하고 발을 선택했다. 손의 발견과 활용으로 인간이 된 것이 아니고, 손을 포기하고 발을 선택해 비로소 인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 진화에서 '발의 발견', 특히 엄지발가락의 진화가 핵심 요소로 강조된다.

나무 위 안락함을 포기하고 위험한 대지로 내려온 결단이 인류 문명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는 무엇인가 포기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행정 조직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안락한 기득권이나 과거 규제 방식을 과감히 포기해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정부 조직 중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가 특히 그렇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영역에서 과거에 매여 있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 변화 자체보다 더 본질적인 숙제가 있다. '존재 이유'라는 '코어'의 문제다. 아무리 쇄신하고 개혁해도 존재 이유를 잃고 본 방향에서 벗어나면 모든 변화는 개악일 뿐이다.

'방통위' 때부터 "왜 그런 정부 조직이 필요하냐"는 의문이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공론장을 관리하는 '방송통신영역'의 특수성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런 의문들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유는 조직의 본질에서 벗어난 법률 개악이 거듭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에 눈에 띄는 개악은 바뀐 기구명이다. 〈방미통위〉라니 어이가 없는 작명이다. 상식적·학문적으로 '방송' '통신'은 모두 '미디어'의 한 부분이다. 굳이 구분하여 매체를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경우, '방송미디어' '통신 미디어'라고 부른다. 실제 시행되는 정책 행위도 결국 주된 대상은 '미디어'다.

이렇게 조목조목 따지는 것도 부끄럽다. 요즘 정치권은 상식적으로 마땅한 '부끄러움'을 '미덕'으로 역전시킨다. '염치'는 사라지고 '힘자랑'만 미덕이 되었다. 국정 전반에서 너무 자주 등장해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다. 그래도 한 나라의 중앙부처명이 이 모양이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국 '국방부'가 '전쟁부'로 이름을 바꿨다. 듣기 불편하지만, '세계의 경찰'을 포기하겠다는 철학은 분명하다. 리더의 성향과 지향을 보여주는 개명이다. 그런데 우리의 복잡한 개명엔 그런 방향성도 정체성 고려도 없다. 단지 정치적 계산만 있는, '장사꾼 마인드'로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모양새다. 말 그대로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다. 외국 사람이 고개를 갸웃할 때, 우리 국민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필자의 견해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다른 이름으로는 '미디어위원회'가 가장 적합하다. '미디어'는 방송과 통신뿐 아니라 신문, 출판도 포함한다는 점과 '방·통 융합' 맥락에서 '온라인 미디어위원회'도 가능하나 '레거시 미디어' 소외 인상을 줄 수도 있어 간명하게 '미디어위원회'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단, 법조문의 '정의' 부분에 업무 범위를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이름은 그 인격을 규정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게다가 '미디어위원회'는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경제적 역할과 함께 민주주의와 국민 통합의 요체인 '공론장'을 건강하게 보존하는 민주적 책무를 진다. 이름의 혼란이 정책의 혼란으로, 결국 공론장의 오염으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소위 방미특위가 이제 본격적인 출범을 앞두고 있다. 'AI혁명'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대장정(大長征)을 앞두고 코어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