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인사에 담긴 '위기 대응' 신호...조직 안정과 미래차 방점

입력 2025-12-28 12:08:58 수정 2025-12-28 1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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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 불확실성 속 승진 최소화
중국 전기차 저가 공세 확산에 유럽도 흔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정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정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연말 임원 인사를 통해 조직 체질 개선과 미래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승진 폭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소 수준으로 줄이고 40대 비중을 높인 이번 인사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위기 대응 성격이 짙다. 중국 전기차의 저가 공세로 유럽과 미국 시장 질서가 흔들리고 국내에도 중국 브랜드의 진출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연구개발과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위기 대응 인사

현대차그룹은 연말 임원 인사를 지난 18일 발표했다. 사장 4명, 부사장 14명, 전무 25명, 상무 176명 등 총 219명의 승진자가 포함됐다. 지난해보다 승진자 규모는 20명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기감이 컸던 2020년 이후 승진 폭이 가장 작다. 40대 비율을 높인 이번 인사의 키워드는 조직 체질 개선과 인적 쇄신이다. 상무 신규 선임 대상자 중 40대 비율은 49%로 높아졌다. 진은숙 부사장이 ICT 담당 사장으로 임명되며 현대차 첫 여성 사장도 등장했다.

조직 구성 면에서는 R&D본부(내연차)와 AVP본부(미래차)의 유기적 결합에 중점을 뒀다. 글로벌 자동차 환경에서 조직 안정을 꾀하면서도 미래차로의 전환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담은 인사라는 평가다.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책임지는 현대차 연구개발(R&D)본부장에는 만프레드 하러 R&D본부 차량개발담당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임명됐다. 하러 사장은 포르쉐와 애플 등을 거쳐 지난해 현대차그룹에 합류했다. 현대차그룹의 양대 연구개발 조직으로 꼽히는 첨단차(AVP)본부장은 공석으로 남았다. 현대차그룹만의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숙고가 길어지는 모습이다.

이번 현대차그룹의 인사에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저가 공세 속에 업계 전반이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공장 가동을 완전히 멈췄다. 해당 공장은 지난 2002년 준공됐고 주로 소형 전기차를 생산해왔다. 폭스바겐이 독일에 있는 공장 문을 닫은 것은 1937년 설립 이후 88년 역사상 처음이다.

유럽 자동차 시장은 중국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 속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전기차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뚜렷한 경쟁력을 보이지 못한 채 손실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전기차는 유럽 전기차의 반값에 불과한 가격을 내세워 유럽 내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중국 전기차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6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그룹이 18일 사장단을 포함한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만프레드 하러 현대차·기아 제조부문장 사장(왼쪽부터), 정준철 현대차·기아 제조부문장, 윤승규 기아 북미권역본부장 겸 기아미국 법인장 사장, 이보룡 현대제철 대표이사 내정자.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18일 사장단을 포함한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만프레드 하러 현대차·기아 제조부문장 사장(왼쪽부터), 정준철 현대차·기아 제조부문장, 윤승규 기아 북미권역본부장 겸 기아미국 법인장 사장, 이보룡 현대제철 대표이사 내정자. 연합뉴스

◆중국산 전기차의 물량 공세

중국 내수 시장이 빠르게 자국 중심으로 재편된 것도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변화를 이끌었다. 매출의 30~40%를 차지해온 중국에서의 부진이 전체 매출 하락으로 직결된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 자동차 시장은 중국 브랜드가 전체 시장의 65.2%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9.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중국 시장의 나라별 점유율은 ▷중국(65.2%) ▷독일(13%) ▷일본(9.6%) ▷미국(4.8%) ▷한국(0.9%) 순으로 나타났다. 상위 15개 완성차 기업 중 테슬라(11위, 시장 점유율 2.3%)가 유일한 외국 브랜드였다.

중국차의 공세 속에 유럽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전면 중단하겠다는 정책을 철회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전기차 산업으로 재편될 경우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몰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조치다. 미국은 전기차를 살 때 주던 최대 7천500달러(약 1천100만원) 보조금을 10월부터 없앴다.

국내 시장에서도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 한국 시장에 진출한 비야디(BYD)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중국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의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지리자동차 산하 전기차 브랜드 지커(Zeekr)는 내년 1분기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시장을 구축하고 국내 전기차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샤오펑(Xpeng) 역시 올해 6월 한국 법인을 설립하며 국내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는 국산 자동차 내수 방어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 종료 예정이던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내년 6월 30일까지 6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내수 판매 둔화 속에서 국산차 수요를 유지하기 위한 대응책이다. 당초 5%였던 자동차 개별소비세율은 한시적으로 3.5%까지 낮아지며, 여기에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를 포함하면 차량 한 대당 최대 143만원의 세금 인하 효과가 발생한다.

중국 장쑤성 쑤저우항에서 선적을 위해 대기 중인 비야디(BYD) 전기차의 모습. 연합뉴스
중국 장쑤성 쑤저우항에서 선적을 위해 대기 중인 비야디(BYD) 전기차의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