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창고형 약국 2곳…달서구·동구 등에 추가 개설 움직임
동네 약국 매출 직격탄…의료 격차 심화될 가능성
창고형 약국 등 약국의 대형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동네 약국들이 존립의 기로에 서고 있다.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 사실상 '건강 상담사' 역할을 해온 동네 약국이 무너질 경우, 지역 간 의료 격차가 한층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기준도 규제도 없는 '창고형 약국'
지난 5일 오전, 대구의 한 창고형 약국에는 카트를 끌며 의약품을 고르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매장에는 대형마트처럼 종류별로 분류된 의약품이 빼곡히 쌓여 있었고, 카트에 상비약과 영양제, 자양강장제 등을 가득 담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매장을 찾은 손님들은 "대체로 저렴한 것 같다", "카트를 끌고 약을 산다는 게 신기해서 와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른바 '창고형 약국'이라 불리는 대형 약국을 구분하는 법적 기준은 현재 없다. 통상적으로 100평(약 330㎡) 이상 규모에, 마트처럼 진열된 의약품을 소비자가 직접 골라 카트에 담는 형태를 창고형 약국으로 부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율 쇼핑 방식으로 운영되며, 원할 경우 약사 상담을 받을 수 있지만, 대규모 매장 구조상 많은 손님을 대상으로 1대1 복약 지도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고형 약국은 지난해 6월 경기도 성남에서 처음 문을 연 이후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대구에는 북구와 서구 등 2곳이 지난해 하반기 영업을 시작했으며, 달서구와 동구에서도 추가 개설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일부 약사들은 부동산 개발업자들로부터 창고형 약국 개설 컨설팅 제안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마트 내 초대형 약국도 등장하고 있다. 대구에는 아직 없지만, 울산과 부산의 일부 대형마트에는 이미 창고형 약국이 입점했고, 서울 금천구의 한 대형마트에는 600평 규모의 초대형 약국이 들어설 예정으로 알려졌다.
약국 대형화 추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대한약사회의 약사공론에 따르면, 2025년 인허가 약국의 평균 면적은 77.0㎡로, 2024년(59.9㎡), 2023년(61.6㎡)보다 크게 늘었다. 그동안 신규 약국 평균 면적은 60㎡ 안팎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약국 대형화가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약사 사회는 이 같은 흐름 뒤에 투기 자본 개입 가능성이 짙다고 보고 있다. 약국업계 한 관계자는 "부산의 한 대형마트 창고형 약국은 마트 측이 적극 개입해 기존 약국을 대형화한 사례로 알고 있다"며 "거대 자본이 약국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 동네 약국들은 순식간에 설 자리를 잃고 초토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동네 약국 무너지면 지방 의료도 함께 무너진다
지역 약국업계는 약국 대형화가 곧 동네 약국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특히 지방의 경우 그 충격은 수도권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도권 일부 창고형 약국은 관광객 수요를 겨냥한 측면도 있지만, 인구가 적고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에서 대형 약국이 난립할 경우 인근 동네 약국들은 직접적인 매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동네 약국이 단순 판매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고령사회에서 동네 약국은 만성질환 관리, 약물 중복 복용 점검, 건강 상담 등 1차 보건의료기관 역할을 사실상 떠맡아 왔다. 이들이 사라질 경우 지역 주민, 특히 고령층의 의약품 접근성과 건강 안전망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약사들의 공통된 우려다.
대구 북구의 A약사는 "손님의 대부분은 인근에 오래 거주한 어르신들로, 위장이나 혈관 질환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이라며 "약만 사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처럼 들러 건강 상담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약국 운영이 점점 버거워지는 게 느껴지다 보니, 오히려 손님들이 '약국 문 닫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마트식 자율 쇼핑 구조가 과도한 의약품 구매와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층과 만성질환자는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경우가 많아 세심한 상담과 복약 지도가 필수지만, 창고형 약국 구조에서는 소수 약사가 다수 고객을 충분히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약품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다. 대량 진열·대량 판매 방식은 재고 소진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실제 이날 찾은 대구의 한 창고형 약국에서는 '유통기한 임박' 의약품을 대폭 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약효 저하나 성분 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금병미 대구시약사회장은 "의약품을 마트처럼 자율 쇼핑하게 하면 불필요한 구매와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도 지역 의료 인프라 격차가 심각한데, 대형 약국이 확산되고 동네 약국이 무너지면 지방 의료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더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