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 전남 해남 땅끝마을 여행

입력 2025-12-24 15:02:08 수정 2025-12-24 18: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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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의 장엄한 풍경 바라보며 새해를 상상하다

해남 달마산 도솔암 전경.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솔암은
해남 달마산 도솔암 전경.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솔암은 '해남 제1경'으로 꼽힌다. 김도훈 기자

끝은 늘 시작과 맞물리는 법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새해를 여는 1월과 붙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끝자락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땅끝마을'이란 이름을 얻은 전남 해남은 자연과 역사를 두루 품은 풍요로운 여행지다. 한해의 끝자락 12월. 육지와 바다가 맞닿은 땅끝의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할 새로운 한해를 상상한다.

◆달마산에서 만난 '해남 제1경' 도솔암

대구에서 4시간여를 달려 길이 땅끝으로 치달을 즈음, 험난한 산줄기 하나가 불쑥 등장한다. 달마산이다. 높이는 489m에 불과하지만 산세는 설악산의 한 부분을 떼어놓은 듯 삐죽삐죽한 바위 능선이 이어진다.

이곳엔 '달마고도'란 이름을 지닌 걷기 길이 있다. 중국·티베트·인도를 잇는 차마고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름지어진 달마고도는 총길이 17.74㎞, 4개 구간으로 나뉘어 달마산 주능선을 에두르는 길이다.

하지만 달마산의 백미를 꼽자면 단연 도솔암이다. 달마산 주능선 아슬아슬한 바위틈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암자의 절묘한 풍경은 '해남 제1경'이란 수식어를 누구나 인정하게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솔암이 내려다보이는 남쪽 바위봉우리에 서면 왼편으로 진도와 다도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도솔암에 이르는 길은 선택지가 많다. 미황사에서 달마고도 4코스를 거슬러 오르거나 송촌마을에서 시작하는 종주 코스를 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꼭 산행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임도가 끝나는 곳에 있는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800m정도만 걸어가면 도솔암을 만날 수 있다.

땅끝탑 전망대에서 만난 장엄한 노을. 김도훈 기자
땅끝탑 전망대에서 만난 장엄한 노을. 김도훈 기자

◆국토의 끝 '땅끝탑'에 서다

땅끝마을에 다다랐다. 해안가 인근에 있는 갈두산 사자봉 정상(해발 156m)엔 횃불 모양의 땅끝전망대가 있다.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희망, 민족의 통일 의지, 그리고 국토 최남단의 상징적 의미를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맨 위층 전망대에 서면 푸른 바다 위 총총히 흩뿌려진 섬과 그 섬을 오가는 배가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해질 무렵, 전망대 아래 '땅끝 꿈길랜드'로 향했다. 놀이공원 같은 이름과 달리 주차료도 무료고, 입장료도 없다. 해안선을 따라 데크로 이어진 900m 길이의 산책길이다. 대략 15~20분의 짧은 거리지만 햇살과 바람, 파도, 멀리 펼쳐진 다도해의 섬들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든다.

땅끝탑 가는 길 중간엔 바닥 전체가 유리로 된 스카이워크가 있다. 김도훈 기자
땅끝탑 가는 길 중간엔 바닥 전체가 유리로 된 스카이워크가 있다. 김도훈 기자

땅끝탑으로 가는 길 중간엔 스카이워크가 있다. 높이 18m 해수면 위로 드리운 투명유리의 길이는 41m나 된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아찔함에 더해 포토존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다.

이 길이 끝나는 곳엔 땅끝탑이 있다. 북위 34도 17분. 그야말로 한반도 최남단의 아이콘이다. 땅끝탑 앞으론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 섰을 무렵 구름 뒤에 숨은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 같은 장면이다. 기념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우와"하는 감탄과 함께 "멀지만 오길 잘했다"고 이야기 나누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동안 땅끝에서 본 노을을 되새기며, 새로운 시간을 살아낼 자신감이 차올랐다.

보물 제1807호 대흥사 천불전 전경. 김도훈 기자
보물 제1807호 대흥사 천불전 전경. 김도훈 기자

◆유네스코가 인정한 산사 '대흥사'

땅끝을 목표로 해남을 찾았더라도 두륜산 자락 대흥사는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해남을 대표하는 사찰이자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대흥사의 창건 시점은 백제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위상은 조선 후기에 절정을 이룬다. 당시 승려들은 불교 의례를 넘어 학문과 예술, 차 문화를 꽃피웠기 때문이다. 특히 '다성(茶聖)'으로 불렸던 초의대사(1786~1866)는 이곳 일지암에 머물며 차의 새로운 종자를 개발했다. 그의 차 정신은 기호의 단계를 넘어 수행과 학문, 예술이 맞닿은 영역이었다. 그래서 다례인들은 대흥사를 차의 성지로 꼽는다.

대흥사는 가람 배치가 남다른 사찰로도 유명하다. 경내 당우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들도 정조, 김정희 등 당대 명필들이 쓴 것으로 눈여겨 볼만하다. 생소한 가람 배치를 살펴보고 북원과 남원, 별원까지 둘러보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고산 윤선도 박물관 전경. 김도훈 기자
고산 윤선도 박물관 전경. 김도훈 기자

◆호남 최고 명당 '고산 윤선도 유적지'

대흥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엔 '고산 윤선도 유적지'가 있다. 공식 명칭은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이지만, 지도 앱과 포털에선 '고산 윤선도 유적지'로 검색된다.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조선시대 정치가이자 대표적인 시조 시인이다. 녹우당은 고산이 효종에게 하사받은 사랑채로 수원에 있던 것을 현종 9년(1668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녹우당을 포함한 해남윤씨 종택은 고산의 증손자인 윤두서가 완성했다. 조선 중기 사대부 가문의 삶과 문화가 집약된 공간이자 문학과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명소로 꼽힌다.

해남윤씨 종택을 둘러보기에 앞서 '고산 윤선도 박물관'을 들러보길 권한다. 고산이 지은 '어부사시사'와 '산중신곡', '공재 윤두서 자화상' 등을 먼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둘러보는 동안 탐방객은 '지정14년 노비문서' '고산양자입양문서' 등의 고문서와 서책을 통해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가문의 삶과 역사, 더 나아가 조선 시대 당시의 사회상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된다.

해남윤씨 종택은 현재 가문의 종손이 거주하고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 하지만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기품 서린 자태를 감상하는 건 한걸음 밖에서도 충분하다. 특히 고택의 담벼락을 지나 비자나무 숲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은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5분 거리엔 '땅끝순례문학관'이 있다. 해남의 문학적 전통을 조명하는 공간이다. 김남주, 이동주, 박성룡, 고정희 등 해남 출신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북카페 등이 있다.

울돌목 스카이워크 전경. 울돌목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물살이 빠른 해협으로 물때를 잘 맞춰 가면 이곳에서 소용돌이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김도훈 기자
울돌목 스카이워크 전경. 울돌목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물살이 빠른 해협으로 물때를 잘 맞춰 가면 이곳에서 소용돌이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김도훈 기자

◆울돌목에서 만나는 이순신 장군

해남에서 가볼만한 곳은 이뿐만이 아니다. 울돌목(명량해협)에선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느껴볼 수 있다. 1597년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 배 133척을 13척의 배로 무찌른 명량대첩의 현장이다. 해남 쪽은 우수영 관광지, 맞은편 진도는 녹진 관광지다. 두 관광지 사이를 명량해상케이블카가 오간다. 길이는 약 1㎞. 거친 울돌목을 하늘에서 가로지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울돌목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물살이 빠른 해협이다. 썰물 때 특히 빠른데 속도가 시속 20㎞에 달한다고 한다. 모터보트가 물 위를 질주할 때의 속도와 비슷하다. 워낙 급류다 보니 일본 세토내해 국립공원의 나루토 해협처럼 소용돌이도 생긴다. 이게 볼거리다. 이곳 관계자에 따르면 밀물과 썰물을 기준으로 1~2시간 내외에 소용돌이가 자주 생기는데, 소용돌이를 보기 위해선 물때를 확인해야 한다.

산이정원 내 하늘마루에 있는 대형 조형물
산이정원 내 하늘마루에 있는 대형 조형물 '브리지 오브 휴먼'(유영호 작)은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증샷 명소다. 김도훈 기자

해남군 북쪽 영암과 맞닿은 곳에 들어선 산이정원도 들러볼 만하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아직은 성글지 않은 정원이지만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여행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조각 작품과 수목이 한데 어우러진 예쁜 정원으로 꾸민 덕분이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맞이정원' 꽃길과 자연 호수를 배경으로 한 '물이정원', 어린이의 자유를 상징하는 '노리정원', 덩굴식물로 가득한 채플이 있는 '서약의 정원' 등 다양한 테마 정원이 이어진다.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드넓은 잔디밭으로 이뤄진 '하늘마루'다. 이곳에 있는 대형 조형물 '브리지 오브 휴먼'(유영호 작)은 인증샷 명소다. 비행기 날개처럼 팔을 양쪽으로 활짝 펴 스스로 다리가 된 거인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산이정원'이 추구하는 철학인 맥을 같이 하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