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호 경상북도RISE센터 선임연구원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역사적 이면을 살펴보면 지방소멸 위기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우리는 부족한 자원과 기술력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도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을 펼쳐왔다. 그 결과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속한 성장을 이뤘지만, 그 이면에는 수도권 집중화, 대·중·소 기업 간 양극화, 그리고 지방소멸위기가 자라났다.
지금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지방소멸의 위기다. 행정안전부의 전국 인구감소지역 지정 공시를 보면 전국 시·군·구 226개 중 89개 지역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1/3이 소멸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수도권과 광역도시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일자리와 공공의료, 교육 등 국민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최근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고자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이 시행됐다. 특별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주도적이면서 자율적인 정책을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수립돼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지방도시의 활성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출산율 장려를 위해 만들어진 각종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법과 정책적 지원만으로는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위기를 극복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히 재정적 지원이 기반이 되는 정책에는 더욱 한계가 따른다.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자생적 혁신성장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혁신성장의 요소라고 한다면 환경과 혁신가 그리고 전략이 있다.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의 기회를 주는 환경과 언제나 새로움에 도전하는 혁신가, 그리고 혁신을 실천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아니라 바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자체가 만들어가야 한다. 그동안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중앙계획에 의존한 지방정책의 결과가 지방소멸로 나타나고 있듯이 이제는 지역 스스로가 성장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32년 만에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기존의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 국정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지역을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에 발맞춰 교육부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를 추진해 각 지역의 대학이 지역 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지역 주도의 대학지원 체계를 구축해 지방의 한계를 대학과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라이즈는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적인 전략이다. R단순한 대학 재정지원 정책을 넘어 지역이 직면한 인구·산업·일자리 문제를 대학의 교육·연구·산학협력 역량과 결합해 해결하고자 하는 지역 주도의 혁신 플랫폼이자 모멘텀(Momentum)이다. 특히 대학을 지역혁신의 보조적 참여자가 아닌 핵심 주체로 삼고, 지자체가 지역 특성과 전략에 따라 대학의 재정지원 방향을 설계·운영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기존 중앙집권적 대학지원 정책과는 차별화된다.
이는 대학이 지역 산업과 인재 양성, 기술 혁신의 거점으로 기능함으로써 청년이 머무르고 산업이 성장하는 지역 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라이즈는 지방의 한계를 대학과 함께 극복하고, 지역 스스로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국가균형발전의 실험이자, 지방소멸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라이즈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다. 새로운 시도인 만큼, 초기 단계에서 시행착오와 제도적 한계가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변화와 혁신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전환기의 불확실성과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 단위에서 정책을 종합적으로 조정하고 실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핵심 주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전국 17개 시도의 라이즈센터는 대학·지자체·산업계 간 역할과 기능을 종합적으로 조정·연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지역 라이즈 정책의 기획부터 집행, 성과관리와 환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는 거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기보다는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되는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지역 주도의 혁신 메커니즘을 점진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50여 년간의 경제발전 이면에서 누적돼 온 지방소멸의 위기를 불과 2~3년 만에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데 걸렸던 시간보다 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지 모른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새롭게 추진되는 라이즈를 통해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굴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성과로 구현해 나간다면 지역은 자생적 혁신성장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