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입력 2026-01-01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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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대구동산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하루

[편집자주] 누군가의 삶 곁에서 하루를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의 시간을 따라가는 연재입니다. 기자는 그들과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시간을 나누며 복지가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을 기록합니다.

1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85병동에서 한영경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1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85병동에서 한영경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모두가 '더 나은 삶'을 노래할 때, 그들은 '더 나은 죽음'을 위해 손을 내민다.

자원봉사는 흔히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 믿어진다. 하지만 여기, 죽음을 향해 가는 이들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들이 있다.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이들에게 봉사는 '살리는 일'이 아닌 '품어주는 일'이었다. 대상이 삶에서 죽음으로 바뀌었을 뿐, 그 숭고함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 회의로 시작되는 아침, 30년 경력 노련함

오전 9시 30분, 병동 끝 자원봉사자실에서 아침 회의가 열린다. 의료진과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가 머리를 맞대는 이 시간은 호스피스 병동의 핵심이다. 환자가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보낼 수 있도록 신체적 관리부터 정서적 돌봄까지, 모든 직군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다.

"마사지할 때 부종 있는 분들 조심하시고, OO호 환자분은 다리에 전이가 있으니 더 주의해 주세요" 의료진의 공지에 봉사자들의 눈빛이 진지해진다. 환자의 상태와 병실별 특이사항을 공유하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봉사자들은 환자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노련함이 묻어나는 이곳의 봉사는 호흡이 길다. 대개 봉사라고 하면 짧은 기간 스쳐 지나가는 활동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다르다. 그중에서도 진은숙(72) 봉사자는 호스피스 병동의 역사를 함께한 산증인이다. 수십년 전, 환자로 병원을 찾았다가 봉사자들의 모습에 감동해 시작한 일이 평생의 소명이 됐다. 1987년 병원에 호스피스 병동이 문을 열자마자 교육을 받았고,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거쳐야 한다. 말기 환자와 가족을 대하는 대화법부터 임종 돌봄, 봉사자의 심리적 소진 예방까지 그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 봉사자는 가장 기억에 남는 교육으로 '유서 작성'과 '입관 체험'을 꼽았다. "내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먼저 처절하게 돌아봤던 시간이었어요. 환자를 대할 때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몸으로 배우는 귀한 과정이었죠"

1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85병동에서 신용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1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85병동에서 신용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마음 열릴 때 뿌듯" 봉사자 역할 어디까지

회의가 끝나자 자원봉사자는 3인 1조를 이뤄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트레이에는 아로마 오일과 마사지 크림, 깨끗한 수건이 올려졌다. 이들이 들어선 병실에는 의식이 흐릿한 환자부터 섬망 증상으로 혼잣말을 내뱉는 환자까지 저마다의 고통이 머물고 있다. 가벼운 인사조차 나누기 어려운 침묵의 순간이 더 많았다.

"이 발로 식구들 다 먹여 살리느라 참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수고한 다리예요" 한영경(64) 봉사자가 환자의 메마른 발에 크림을 바르며 말을 건넨다. 그러자 감겨 있던 환자의 눈이 천천히 떠진다. 한 봉사자를 가만히, 그리고 오래 응시하는 그 눈빛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유대와 고마움이 서려 있다.

"여기도 마사지 부탁합니다. 보호자분이 몇 번을 부탁하셨어요" 보조활동인력(간병인)의 요청에 한 봉사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유난히 요청이 몰린 고된 하루였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쓸모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처음 병동에 오셨을 땐 커튼을 굳게 치고 말도 못 붙이게 하셨는데, 이제는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 같아요."

마사지와 아로마, 원예 활동 등 교육 받은 역할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자원봉사자일의 전부는 아니다. "아까 OO호 어르신이 접어주신 꽃이에요. 색종이가 필요하다고 해서 구해다 드렸는데 이런 선물을 해주셨네요" 한 봉사자가 수줍게 내민 종이꽃에는 환자의 온기가 담겨 있다. 처음엔 "어차피 죽을 건데 내버려 두라"며 세상을 거칠게 밀어내던 환자들도, 진심 어린 발걸음 앞에서는 끝내 무너진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봉사자 곁에서 미소 짓는 환자의 얼굴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기적이다.

1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85병동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1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85병동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혹시 떠나셨을까봐…' 반복되는 이별 상실감

"다음 주 봉사할 때 안계실까 봐, 그게 제일 그래요…." 퇴근 시간이 다가오지만 신용자(68) 봉사자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괜히 말 한마디 더 건네고, 손을 한 번 더 잡다보니 퇴근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났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호스피스 병동의 특성상, 이곳에서 맺는 인연은 길지 않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환자의 몸과 숨결을 지켜볼 때마다 자원봉사자의 마음에도 작지 않은 상실감이 쌓인다. 신 봉사자 역시 반복되는 이별이 힘들어 한때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멈췄다. "교육 받고 몇 년 하다가,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의 하루는 길지 않다. 이들은 주 1회, 2~3시간가량 병동을 찾는다. 병원이 연 2회 자체 보수교육을 통해 봉사자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소통을 돕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자를 돌보는 이의 마음이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마지막 동행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별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다. 그럼에도 이들이 다시 병동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봉사자들은 말한다. "마지막에 손을 잡아줄 사람이 하나쯤 더 있으면 좋겠다 싶어 옵니다." 환자들은 답한다. "여기 있는 동안 행복했어요. 잘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1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85병동에서 한영경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1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85병동에서 한영경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