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명함 속 이름 앞에 붙는 직함은 닥터다. 홈케어닥터. 모든 것을 구독으로 소비하는 요즘 사람들은 침대 매트리스도 구독한다. 나는 4개월에 한번씩 매트리스 전용 청소기ㅡ무려 NASA에서 만들었다는 컬비 청소기ㅡ와 자외선 살균기등을 짊어 지고 가정집에 방문해서 매트리스의 진드기와 먼지를 청소한다. 오전 케어를 끝내고 오후 스케줄의 첫 집으로 가는 길, 유명한 기사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이 집을 갈 때면 항상 들르는 코스다.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과 동선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딱히 사람과 부대끼지 않아도 되고 여러모로 나같은 인간에게 딱인 직업이다. 자차만 있으면 된다는 민철이의 얘기를 듣고 얼떨결에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지금 가는 집은 내가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부터 담당했던 집으로 서울 외각에 있는 연식이 있는 빌라다. 많은 집을 다니는 데도 이 집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엘레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무거운 장비를 이고 지고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5층에 다다른다. 그렇게 벨을 누르고 들어가 적당한 온도로 인사를 하고 신속하게 발토시를 신으며 침대방으로 들어가서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눈을 최대한 덜 마주치며 안방으로 들어 왔다. 평소처럼 매트리스의 한쪽면을 잡고 들어 막 세우려는 순간 매트리스 아래 침대 프레임에 누워있던 여자가 다급하게 손사레를 치며 내 입을 막았다. 큰 눈이 동그랗게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눈 주위 얼굴의 모든 근육과 실핏줄이 긴장으로 경직된 채, 왼쪽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쉿' 하는 입모양을 짓고 있었다. 이제껏 케어 서비스를 하면서 매트리스를 들었을 때 바퀴벌레나 돈벌레를 만난 적은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몸이 빳빳하게 굳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내 머리만 뽑아서 엄청 추운 겨울 새벽 산 정상에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멍하고 얼얼했다. 뭐지? 누구지? 왜지? 어쩌지? 체감으로는 한 시간 같았던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여자의 길게 편 검지손가락이 '쉿'에서 '한 번만'으로 의미를 바꿨다. 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리듬을 만들고 있었고 순간 거실에서 부인의 멜로디가 얹어 졌다. "뭐 음료수라도 좀 드릴까요?" 재빠르게 여자를 밀어 넣고 매트리스를 덮었다. "네? 네! 네!! 주시면 감사하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주스를 마시면서 어떻할지 생각했다. "사모님 놀라지 마세요..." 하고 입을 떼는 순간 지금 이 모든 게 깨지겠지? 빌라 거실에 따듯하게 들어오는 햇살마저 산산조각날 것만 같은 불안감의 엄습. 이제 주스는 한 모금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오렌지 주스의 색깔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아무 말 없이 노오란 주스색으로 탈색하고 나타났던 K가 떠올랐다. 윗니로 아랫 입술을 씹으며 미소짓던 칭찬을 요구하는 얼굴. 추앙을 갈구했던 눈. "제가 오늘 살균 서비스를 해드린다는 걸 차에 장비를 두고 왔네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급하게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다시금 팀장님한테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차라리 경찰에 신고를 할까? 역시 그냥 부인께 말을 하는 것이 역시 맞는 거 같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손으로는 차에 있는 매트리스 덮개를 챙기고 있었다. 170cm 이하에 평균 몸무게 정도의 여자라면 충분히 들어가고도 넉넉할 사이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민철이와 고3 야자때 몰래 도망가던 일이 생각났다. 갈비뼈 사이사이가 간질간질하던 그 이상한 스릴 때문에 딱히 갈데도 없는 데도 그렇게 담을 넘었던 것 같다. 그때의 그 긴장감이 오랜만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소리가 좀 클 거 같아서 문을 잠시 닫겠습니다." 말을 하고 컬비 청소기를 가장 센 모드로 돌렸다. 청소기의 큰 소리로 외벽을 세우고 매트리스를 일으켜 세워 혹시 모를 부인의 침입 상황에 대비해 내벽을 쳤다.그 여자는 내가 가져온 매트리스 커버에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고맙다는 입모양을 지어 보였다. 기계를 잘못 가져왔다며 바꿔 오겠다는 다소 작위적인 변명을 하며 여자가 든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서는데 다행히 부인은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핸드폰을 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그 여자는 그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나는 손짓으로 내 차를 알려주고 매트리스 커버를 그 위에 두고 가라고 알린 뒤,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 빠르게 청소를 마무리했다. "청소 다 끝났습니다." 그제야 숨이 좀 쉬어지는 것 같았다. 청소기 필터를 지퍼백에 담아 현미경으로 필터에 있던 고양이 털과 진드기 사채들을 보여 드렸다. 케어 확인을 받으러 거실로 나가 보니 이제껏 한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TV 진열장에 놓여 있는 결혼 사진들과 주방 식탁 의자에 걸려 있는 어린이 태권도 가방, 벽에 붙어 있는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엄마,아빠와 사랑해요가 아파트 CF에 나오는 장면마냥 세팅되어 있었다.결혼 사진 속 남자 얼굴을 보며 이 새끼는 뭘까? 어떤 놈이길래 침대 위 아래에 여자를 각각 배치해 두고 사는 걸까 싶었다. BEREX 모디 매트리스 CMQ-SE02H를 패티삼아 두 여자가 햄버거 빵마냥 밤새 있는 동안 저 남자는 잠이 왔을까? 부인의 사인을 받고 인사하며 진드기 패치를 서비스로 3개나 더 챙겨드렸다. 탈출을 도왔다는 죄책감이 내 손을 움직였던 것 같다.평소처럼 했었어야 했는데 내가 얼마나 미숙한지 현관문을 닫자마자 후회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내 다리가 이렇게 얇았었나 싶을 정도로 힘이 쭉 빠져서 난간을 붙잡고 한칸 한칸을 두걸음에 나눠 내려왔다. K와 연애할 때 방탈출을 처음 하고 나왔을 때가 생각났다. 20대였던 K는 유행하는 데이트를 하고 싶어 했고 그 분위기를 맞추느라 여간 힘들었던 몇몇 데이트 중 방탈출은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내 취향과는 멀었다. 대체 왜 내 돈 주고 방에 갇히는 건지 30대의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문화와 재미였다. 문득 K도 이제 30대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익숙하게 운전석 문을 열었을 때 조수석의 그 여자를 보고 너무 깜짝 놀라서 그대로 운적석 문을 닫아 버렸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앉아 일단은 차를 끌고 나왔다.범인과 함께 있는 걸 들키면 안될 것 같아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범인의 탈출에 동행자가 되어 버렸다. 이 여자는 범인일까? 무슨 죄가 있는 건가? 간통법도 폐지 됐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럼 죄는 없는 게 아닌가? 이 여자를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데 여자는 내 혼란을 간파한 듯 내가 묻기도 전에 말을 쏟아 냈다. 자신의 옷과 가방이 그 집 현관 펜트리에 들어 있다고. 핸드폰이며 지갑이 다 거기 있어서 집에 갈 수가 없어 내 차가 열려 있길래 앉아 있었다고 한다. 핸드폰을 빌려줘 봤지만 여자는 외우고 있는 번호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번호를 왜 외우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냐며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또 다시 K다. "늙은이...귀요오" 너의 전화번호와 주민번호를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외워 둬야지라고 말하는 나에게 베시시 웃으면 놀리던 모습. 그리고 끝까지 내 번호는 절대 외우지 않았던 K. 일단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지금 이 꼴로 어떻게 집에 들어가라는 거냐며 다시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 본다. 집에 가족이 있는 걸까? 어떤 구성원일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더 많은 정보가 들어올 용량이 없는 뇌였다. 바퀴가 닿는 대로 그냥 차를 몰고 있는데 이렇게 해가 밝았었나 생경하게 느껴졌다. 햇살이 따스한 게 아니고 수술실 하얀 불빛처럼 그 어떤 실수나 잘못도 다 잡아내겠다는 장악력으로 나를 비추고 있었다. 아주 날카롭고 무자비하게 하얘서 내 모든 행동, 숨소리 하나까지 다 들키고 소독시켜 버릴것만 같은 햇빛이었다. 이런 대낮에 얇은 연보라색 레이스 슬립을 입고 있는 여자가 내 조수석에 타고 있는 이 상황을 얘기하면 누가 믿어 줄까? 민철이 홈케어닥터 일을 시작하고 동네마다 다른 집의 풍경을 묘사하며 영웅담마냥 이야기 하던 게 떠올랐다.이 얘길 해주면 안 믿겠지 우회전 차선에서 직진을 기다리면서 혹시 뒤에 차가 있나 싶어 백미러를 보는데 그 옆에 블랙박스가 눈에 들어 왔다. 나중에 민철이 한테 저걸 보여 주며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여자가 내게 제안했다. "제가 아침에 거실에서 통화하는 얘길 들었는데 조금있으면 아이 어린이집 픽업간다고 했거든요. 사실 아저씨만 안 왔으면 그때까지 버티다가 그 틈에 나갈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매트리스를 들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암튼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좀 같이 기다려 주시면 제가 집 비밀번호는 알거든요. 그때 올라가서 제 옷이랑 핸드폰 다 갖고 나올게요. 그때까지만 같이 기다려 주시면 안돼요? 제가 사례는 할게요. 아,그리고 저 빼내주신 거 그거는 정말 감사했어요. 무슨 첩보영화 찍는 줄 알았잖아요.하하하하" 해맑게 웃는 여자를 보면서 이 상황에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웃을 수 있는지 문득 저 여자의 MBTI가 궁금해 졌다. K의 MBTI가 뭐였더라? 아마 같은 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오늘 오전에 다음 케어 스케쥴 예약자분이 다른날로 일정을 옮겨서 시간도 있었고 일정이 있었다해도 헐 벗은 여자를 밖에 둘 정도의 성격은 못 되었기에 이 이상한 잠복을 함께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또 다시 그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놨다. 다시금 K와 같은 MBTI일 것이라 확신했다. 블라인드나 네이트판에서 보던 스토리였다.분명 댓글에는 주작이라고 도배가 될 법한 이야기였다.
여자의 이야기
을지로의 유명한 국밥집 00옥 아세요?그 옆에 작은 까페가 있거든요. 국밥집 점심 손님들이 할인된 가격에 커피 마시러 오는 게 주 수입원인 아주 작은 까페에요. 그 까페에서 주 3일 낮 파트타임 알바를 하게 된 건 그저 다니던 대학교에서 가까워서 였어요.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용돈이 없어서 생활비가 막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숙사에서 하루 종일 있고 싶지도 않았고 돈도 벌고 싶고 해서 알바를 했어요. 그 카페는 아주 후미진 골목에 있어서 국밥집을 찾아 온 손님이 아니면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점심 시간 아주 잠깐만 바쁘고 나머지 시간에는 과제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꿀알바였죠. 3개월정도 알바를 했던 어느 여름 날 온 몸이 하얀 코숏 한 마리가 자주 카페에 왔어요. 처음에는 문 앞에서 기웃거리기에 밥과 물을 가게 앞에 놔줬는데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가게 안으로 들어 오더라구요. 똥을 유난히도 길게 싸서 사장님이 '길똥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어요. 그렇게 길똥이가 카페의 마스코트가 되어 가던 어느 늦가을 길똥이의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있었어요. 처음에는 간식을 너무 많이 줘서 뚱냥이가 되었구나 생각했는데 집사인 카페 손님들이 모두 임신이라고 진단을 하시더라구요. 유튜브에 있는 고양이가 새끼 낳는 영상은 거진 다 찾아 봤어요. 사장님랑 길똥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구석진 편안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가게 CCTV를 옮겨뒀죠.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기다혔어요. 그 해의 수능날 새벽, 사장님의 전화를 받자마자 기숙사에서 카페로 뛰어 갔어요. 왜 수능날은 그렇게 추운 걸까요? 핫팩을 방석 밑에 넣어 주고 까페 히터를 켰어요. 물도 끓이고 조용히 길똥이의 신음을 옆에서 지켜봤어요. 끙끙대는 길똥이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막 나는데 울 엄마도 날 저렇게 나았겠지 싶은 거에요. 길똥이는 조그마한 새끼를 두 마리 낳았어요. 한마리는 하얀색이 더 많았고 다른 한 마리는 까만색이 더 많았어요. 바둑돌같다고 사장님이 흰돌,먹돌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죠. 그 후로 두달동안은 수업도 과제도 다 던져놓고 흰돌이랑 먹돌이 육아와 길똥이 산후조리만 했어요. 사장님이 시간외 근무 수당없다고 나오지 말라는 데도 상관없었어요. 고양이 전용 분유를 사서 흰돌이랑 먹돌이를 먹이고 단백질과 칼슘, 수분 보충이 필요한 길똥이에게는 닭을 푹 고아서 육수를 먹였어요. 새끼 고양이 본 적 있어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제 중지 손가락만 했던 아기들이 손바닥만 해졌을 때 즈음 길똥이와 흰돌이가 차 사고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요. 길똥이가 흰돌이를 입에 문 채로 길을 건너다 사고가 난 것 같았어요. 먹돌이를 안고 한 4일은 내내 울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까페와 길을 오가는 생활이 위험한데 먹돌이만 혼자 거기에 계속 둘 수는 없잖아요. 사장님은 집에 큰 개도 두 마리나 키우고 자녀분들도 어려서 여력이 안되셨고 저는 뭐 기숙사에서 애들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수 없이 고양이 분양 공고를 여기 저기에 올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애들이 분유 먹는 시절을 지나 사료를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즈음 그 남자가 카페에 왔어요. 제가 먹돌이를 안은 채로 돌아도 보고 들어도 보고, 그 남자는 먹돌이와 절 이리저리 살피더니 "Mon chat라고 불러야 겠다" 라고 했어요. 나의 고양이라는 뜻의 불어래요. 무슨 샹송이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먹돌이는 몽샤가 됐어요. 그 후로 그 남자는 자연스럽게 까페에 자주 찾아 오고 고양이의 소식을 전해줬어요. 저도 먹돌이가 보고 싶어서 카톡으로 사진도 주고 받고 하다보니 친해졌죠. 그 남자가 출장을 가야하는 때에는 잠시 그 남자의 역삼동 오피스텔에 들러서 고양이를 봐 줄만큼 친분이 쌓였어요.그러던 어느 날 먹돌이를 돌보러 갔다가 그 남자의 침대 밑에서 깜박 잠이 들었어요.마치 어제처럼요. 어제도 사실 그 부인이 갑자기 들이 닥쳐서 침대밑에 숨었는데 거기서 기다리면서 부인이 잠들면 몰래 나갈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어느새 제가 잠이 들어버렸어요. 그 남자도 잠이 든 건지 아니면 내가 잠이 들어서 깨우질 못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렇게 그 남자랑 연인이 되었고 평범한 연인들처럼 연애하고 헤어졌어요. 헤어질 때 그 남자를 못 보는 것 보다 이제 먹돌이를 못 본다는 생각에 너무 서러웠어요. 그렇게 시간이 몇년 흐른 어느 날 갑자기 그 남자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자기가 결혼할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대여. 혹시 몽샤를 맡아줄 수 없겠냐고. 남자는 사료와 모래값에 돌봐주는 감사료를 얹어 매달 30만원씩을 주겠다는 거에요. 그 날 그 전화를 받던 날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세요? 대학 입학 확인 전화보다도 입사 시험 최종 면접 통과 통보보다도 좋았어요. 마침 혼자 독립해서 살고 있었기에 전화를 끊자마자 캣타워를 사고 밥그릇에 침대에 먹돌이 맞이를 시작했죠. 그렇게 먹돌이가 다시 제 품에 왔어요. 먹돌이는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집에 잘 적응해 주었어요. 조그만 원룸이지만 우리 둘한테는 충분했어요. 몽샤가 다시 먹돌이가 되던 날 그 남자는 몽샤와 마지막 인사를 한다고 제 원룸에 잠시 머물렀어요. 조그만 7평 원룸이다 보니 앉을 데가 없어서 그는 침대위에 앉아 원룸을 둘러 봤어요.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인데도 고개를 크게 한바퀴 돌려가며 천천히 눈에 넣었어요. 그렇게 그 남자와 저는 입장이 바뀌었고 그 후론 그 남자가 몽샤가 보고 싶다며 제가 없는 그 원룸에 와서 먹돌일를보고 나오곤 했죠. 와이프는 연애할 때 고양이가 있는 걸 봤을텐데 이상하게 생각안 하냐고 물어 보니 남자는 고양이를 남자 후배에게 줬다고 했데요. 부인 입장에서는 자신 때문에 오래 키웠던 고양이와 떨어지는 거라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먹돌이와 몽샤를 이유로 왔다갔다 하던 어느 겨울 남자는 그 원룸 침대위에 누워 있었어요. 그렇게 그 날도 누워서 한눈에 들어오는 원룸을 천천히 고개를 돌려가며 눈에 넣었죠. 저는 그 남자에게 딱히 뭔가를 바라는 건 없어요. 그의 가정을 깨고 싶다거나 그 사람과 결혼하는 그런 건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혹시 평행 세계물 좋아하세요? 저는 우리가 각자의 세계에서 잘 살고 있다고 믿어요.똑같은 두 세계에서 다른 두 개의 삶이 진행 중인 거에요. 먹돌이가 몽샤이면서 몽샤가 먹돌이로 사는 세상이 있는 거처럼. 그렇게 서로의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살다가 가끔 레빗홀이 열리는 거에요.아무런 기대도 안하고 책임도 부담도 없이 진짜 있는 그대로의 서로의 세계만 존재하는 관계.
이 모든 일이 눈이 녹으니까 당연하게 새순이 돋고 그게 자라 자연스럽게 꽃을 피운거처럼 우주의 큰 흐름을 읽고 있는 것 마냥 당연시 말해서 듣고 있는 내내 아무런 판단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누구든 저 상황이라면 저랬을 거라고 고양이가 가여워서 였다고 잠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냐고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듯이 말하는 이해할 수 없는 빈약한 핑계들을 쌓아 서 불륜이나 상간녀와 같은 단어들을 꾹꾹 저 지구 가장 안쪽 내핵까지 밀어 넣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뇌정지가 온 듯 했다. 나에게는 그저 이 여자의 고양이는 어떤 이름을 더 마음에 들어 할까하는 궁금증만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문득 매트리스 청소후 지퍼백에 담은 청소기 필터에서 고양이 털이 나왔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그 순간 빌라 입구에서 부인이 아이의 학원 가방을 들고 나왔다. "어? 나왔다!!" 내 대답이 입술을 나오기도 전에 그 여자는 차문을 열고 빌라고 달려 갔다. 그 뒷모습이 어릴적 봤던 동화 속에 토끼를 쫓아가던 그 소녀와 닮아 있었다. 이 경우엔 고양이겠지만.
그 여자가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한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숨을 내 쉬자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온 몸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음을 빈 조수석을 보고서야 느낄 수 있었다.방금 전까지 슬립차림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힘이 쭉 빠지면서 무거워진 머리를 핸들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으려는 데 불현듯 조수석에 앉아 있던 K가 떠올랐다.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었던 공연을 마치고 역시 별 다를 것이 없던 뒷풀이 후 운전석에 오르는데 K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아까 뒷풀이 초반에 집에 간 줄 알았는데, 얼마나 오래 여기서 기다렸는지를 K의 치마 주름이 말해주고 있었다. "악기 넣으라고 문 안 잠그시잖아요 헤헤헤" 마치 여기서 보기로 약속이라도 했던 사람처럼 당연하게 웃고 있는 K를 보며 당황스럽다 못해 살짝 공포스러웠다. 나는 홍대 인디씬에서는 이름을 알만한 5년차 4인조 밴드의 베이시스트였고 K는 50명 남짓되는 우리 밴드의 팬 중 하나였다.우리 밴드는 도어스와 핑크 플로이드같은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가사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나 수프얀 스티븐스마냥 시어를 파편적으로 나열해 놓는 그러니까 뭔가 있어 보이는 음악을 추구했고 우리 4명 모두 사실 뭔가 없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K는 홍대를 목표로 미술 학원과 수능 입시 학원을 다니러 진주에서 올라온 재수생이었다. 바쁜 수험생 스케줄에도 K는 매번 맨 앞자리를 사수했고 뒷풀이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K는 내 베이스가 잘 들리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들리지도 않는데 좋은 걸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진짜 좋은 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럴싸한 답을 내 놓으며 우리 밴드의 성공을 믿었다. 그 믿음이 의심이 되는 데에는 2년반의 시간이 걸렸다.드럼은 취직을 했고 건반은 학원을 차렸다. 그렇게 민철이와 둘이서 새로운 멤버들을 구하던 중 민철의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이 들려왔고 10개월의 시간동안 깊은 양수 속을 헤매던 민철은 아이의 울음 소리와 함께 음악을 접었다. 연신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기를 보며 체스터 베닝턴같은 보컬이 될 것 같다고 말하는 민철의 눈이 유달리 퀭해 보였던 건 새벽 수유로 인한 수면 부족때문일 것이다. 어쨋든 그렇게 밴드는 끝이 났다. 그 사이 K는 홍대 시각디자인과 여대생이 되었고 졸업반이 되며 취직을 알아보고 있었다. 나는 계속 홍대를 떠돌아 다녔고 다른 팀 베이스 땜빵을 하거나 가끔 레슨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K의 세계와 나의 세계의 연결이 끊어지고 있었다. 두 세계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져서 이제는 평행할 수 없는 그 순간 K는 저 조수석에서 눈이 녹으니까 당연하게 새순이 돋고 그게 자라 자연스럽게 꽃을 피운거처럼 그렇게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 딱 그 정도의 이별을 고하고 떠나갔다. K생각에 침잠되던 그 때에 저 멀리서 그 부인과 아이가 손을 잡고 빌라로 걸어 오고 있었다. 아니 이 여자는 대체 저 위에서 뭐 밥이라도 차려 먹고 있는 거야 뭐야 생각해보니 이미 집에 들어간지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대체 뭘하고 있는 거야 초조함에 내가 올라가서 문이라도 두드려야하나 또 다시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이가 집앞 편의점을 가르키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부인은 못 이기는 척 둘은 함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두 계단을 한번에 껑충껑충 뛰어 올라 현관문을 두드렸다. 집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제껏 성공적으로 미션을 완료해 왔는데 마지막 관문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할 것 같은 아쉬움때문이었는지 그 여자와 잠깐 있었던 그 시간에 정이 였는지 나는 필사적으로 그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느새 아이의 말소리와 발자국이 들리지 나는 위층 계단으로 올라가 숨었다. 난감에 눈만 살짝 걸쳐서 두 모녀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숨을 죽여가며 혹시나 집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는지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쫑알거림이 얼마간 있다가 TV만화 영화 속 성우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옥상 계단에 앉아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이 상황을 어찌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올때 남자를 만나서 얘기할까? 하지만 결혼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본 게 다이기에 혹시나 다른 사람을 고르면 오히려 더 큰 사건이 일어 날 수 있다. 너무 위험하다. 분명 그 여잔 지금 저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이번에도 구해줄 거라 믿고 기대 하며 어딘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내가 무슨 수로? 어떻게? 아니 그보다 먼저 대체 내가 왜? 굳이? 근데 혹시 만에 하나 저 여자가 들켰을 때 내 얘길한다면? 만약 그러면 그것도 복잡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 난 이미 이 여자와 한배를 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여자를 다시 꺼내와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다시 깊게 마시고 천천히 내뱉기를 반복한 후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네, 저 오전에 방문드렸던 매트리스 홈케어닥터입니다. 사모님." 문이 열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새 집의 평수를 넓혔는지 현관까지 오는 부인의 발걸음 수가 늘어난 것 같았다. 철컥, 딸랑! 현관문에 걸어둔 액막이 명태 종소리가 명쾌했다. 명쾌함을 넘어 날이 선 금속의 음이 무언가를 날카롭게 베어 내는 감각. 언젠가 공연 중에 이런 느낌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드럼 심벌이 사람이 만들어 낸 것 같지 않은 아주 날카롭고 명쾌한 음을 던졌던 적이 있었다. 그 순간 그 곳의 공기를 그 음이 베고 나아가는 느낌 그 느낌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지갑을 떨어트리고 간 것 같아서요 잠시만 찾아 봐도 될까요?" 역시나 오전처럼 친절하게 방문을 열어 주고는 음료를 준비하러 가는 부인. 천천히 신발을 벗으면서 나는 이 집에 그 여자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설명되지 않는 감각이 찢긴 공간속에서 시간의 냄새만 이 부유하는 듯 했다. 얼마간 머무르다 가져온 지갑을 꺼내 보이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이는 부인의 지시에 따라 나에게 배꼽인사를 하며 눈은 TV에 머물러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운전대를 잡고 앉아 한 동안 멍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석양이 예쁘게 자리를 잡을 즈음 차를 몰고 거리로 나왔다. 무작정 차를 몰고 홍대로 갔다. 어둡고 지저분한 라이브 클럽에 조끼만 벗고 홈케어 복장을 그대로 입고 들어갔다. 매케한 연기와 냄새 속에서 가만히 내 좌표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감각을 온전히 인지시키고만 있었다.
4개월 후 다시 그 집의 홈케어를 하러 가는 날 그 어느때보다도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재개를 하고 손발톱을 깨끗이 깍았다.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모른 채 들뜬 마음으로 그 집에 현관에 섰을 때. 집은 전혀 바뀐 것이 없어 보였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것 처럼 너무도 똑같은 그 곳에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매트리스 청소를 시작했다. 부인은 살림을 잘하시는 분이다. 매트리스 청소를 해보면 평소 이불 빨래나 바닥 청소의 대략적인 상태를 느낄 수 있다. 이 집은 깨끗하다. 아주 말끔하다. 청소기를 다 돌리고 자외선 살균 소독기를 설치하려는 데 뒤에서 '딸랑'하는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 종소리보다 훨씬 작고 포근한 '딸랑' 왠지 모르게 올라오는 감정을 차갑게 누르며 뒤를 돌아본 곳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천천히 다가와서 내 다리에 머리르 비벼댔다. 얼굴가까이 손을 갖다대자 냄새를 맡았다. 케어를 끝내고 차로 내려와 앉자 마자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았다.
한참을 넋을 놓고 보다가 웃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