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부일영화상·영평상 등 전국 단위 성과
"영화 속 여름, 인물들 모두에게 실패의 계절
대구 연출진들이 사투리 대사 직접 녹음해 지도
관객에게 익숙한 극적 요소는 최소한으로만 표현
지역 영화 인적·장비 등 인프라, 타지보다 좋은 편
지원 늘어 '지역영화' 단어 무의미해지는 날 오길"
올해 지역 영화 지원사업 예산은 축소됐지만, 대구 창작자들의 영화가 좋은 성과를 내면서 지역 독립영화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중 장병기 감독의 '여름이 지나가면'은 올 하반기 부일영화상 2관왕을 비롯해 평론가협회상, 제작가협회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전국 개봉을 이어갔다. 소도시로 전학 온 초등학생 '기준'과 동네 형제 '영문'과 '영준'이 겪는 관계의 균열을 따라가며, 영화가 끝난 뒤에는 어른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다음은 본지와 나눈 서면 인터뷰 전문.
- 첫 장편 데뷔작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소감이 어떤가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물론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상상은 해봤다만, 아주 막연한 상상이라 현실에서는 당혹스럽고, 기쁘지만 무섭고, 자랑하고 싶지만 걱정이 많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몇 번의 수상을 한 뒤로는 실감이 나면서 조금은 덤덤해졌다. 지금은 수상 결과보다도 그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영화를 좋아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처음 영화가 공개된 자신없던 시기에, 우리 영화가 '필요했던 영화'라고 해준 관객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아직 영화를 안 본 사람들에게 어떤 말로 소개하고 싶은가
▶줄거리로 영화를 말하면 뻔할 것 같아 영화를 소개할 다른 말을 고민해봤다. 무고한 중산층이 이 영화를 많이 보면 좋겠다.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랐기에 나의 가족이, 그리고 내가 다른 환경의 사람을 어떻게 보고 판단하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우리는 왜 무고할 수 있는지도 조금 알고 있다. 나아가 무고한 우리는 무엇을 훔칠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영화를 무고한 중산층들이 보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꽤 자극적인 영화 소개이지 않나.
- 연출 과정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영화를 촬영하는 매 순간 완성될 영화를 생각하면서 어떤 한 장면도 우리가 익숙한 방식의 극적인 요소는 덜 쓰려고 노력했다. 이야기 속 인물과 유사한 환경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본다면, 연출자가 인물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한 부분은 최대한 담고, 그 너머의 상상과 판단에 의지한 부분은 최소한으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콘티를 그렸다.
- 제목처럼 여름이 지나가면, 아이들은 서로 다른 일상을 맞을 거라 생각된다. 작품 배경을 여름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여름이라는 계절에는 성장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누구에게나 오는 계절이라는 점이, '사춘기니까', '그때는 그런 시기니까'라고 말하며 성장통으로 포장하는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포장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영화 속 이번 여름은 인물들 모두에게 실패로 기억될 거다. 누군가는 다시 새로운 여름을 맞겠지만, 누군가는 이른 가을을 맞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 배우들의 사투리를 비롯한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기억에 남는 촬영 에피소드가 있다면
▶영화에 많은 미성년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한 배우만 제외하고 전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거나 살고 있다.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나와 연출부 스태프들이 대사를 녹음해서 전달하고, 배우들이 따라 녹음한 걸 보내주는 과정이 있었다. 많은 지도가 필요한 부분이었고 실제로 배우들이 가장 노력한 부분이기도 하다. 같은 경상도라고 해도 출신 지역에 따라 억양이 조금씩 달라서 재미있었다. 어떤 억양은 치열한 토론 끝에 결정하기도 했다. 치열하게 결정된 대사는 다른 대사들보다 좀 더 비장한 마음으로 녹음을 했다.
- 청소년 주연의 영화지만 영화 속 어른들은 모순적인 행동을 보인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른이란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알았다면 영화의 엔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의 어른들이 단순히 악인으로 보여지길 바라진 않았다. 각자에겐 최선이 구조적으로는 계층화를 강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상적인 어른상' 역시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환경의 삶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면 지금보다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번 작품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제작 지원작이기도 하다. 대구는 영화 작업을 하기에 어떤 도시인가
▶요즘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감독님들이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어서 '지역영화'라는 말이 꽤 많이 들리고 있다. 전국 단위의 성과를 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의 영화교육을 통한 인적 인프라도 많이 늘었고, 괜찮은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어 이곳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나또한 지역과 같이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창작자 뿐만 아니라 미디어센터, 협회, 오오극장 등 다 같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을 제외한 타지에 비하면 괜찮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원은 더 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지역과 수도권의 영화 제작 환경의 유불리가 느껴지지 않게 돼서 '지역영화'라는 말이 무의미해지는 상상을 해본다.
- 앞으로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재미없는 영화는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인가는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비단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표현을 하고 그것을 본다는 것은 살면서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지금의 사회에서 독립문화예술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재미있는 것들만 가려 볼 수 있는 시대이긴 하지만, 재미없는 영화를 보게 되더라도 왜 나에게 재미가 없었는지 생각하고 이야기해 볼 수 있게 영화를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 장병기 감독은
1986년 출생으로 대구 출신이자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2017년 단편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로 데뷔해 2019년 '할머니의 외출', 2021년 '미스터장'의 감독을 맡았으며 2024년 '여름이 지나가면'으로 첫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