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덕진] 중대재해처벌법, 패러다임 전환해야

입력 2026-01-21 15:50:09 수정 2026-01-21 1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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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건설안전기술사·대한안전기술원 상임고문
김덕진 건설안전기술사·대한안전기술원 상임고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 산업재해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법과 제도는 분명 강화되었으나 정책이 기대했던 만큼의 예방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제도의 강도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정책의 초점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안전의 메커니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산업안전 정책은 '경영자의 관리 책임'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물론 경영 책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필자가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 활동과 일선 현장 안전 업무를 관리하면서 확인한 다수의 사고 조사 결과는 사고의 직접적 기점이 대부분 작업 과정에서의 불안전한 행동이었음을 보여준다.

정책이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통제하고 교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책임 구조만 강화한다면 현장에서 체감되는 안전 수준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행동 중심의 안전문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한 결과이다.

광주 대표도서관 신축 공사 붕괴 사고를 포함해 건설 현장에서 반복되는 중대 사고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공사 관계자의 불안전한 행동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이다. 콘크리트 집중 타설 기준 미준수 또는 접합부 용접 불량과 같이 설계와 시공관리 과정에서 작업자가 안전 기준을 이탈한 결과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이러한 문제 인식 아래 안전 정책의 무게중심을 '행동 관리'와 '책임 있는 안전문화'로 이동시켰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은 고의적인 안전 수칙 위반, 보호구 미착용, 음주·약물 상태의 작업 등에 대해 산재보상 감액이나 법적 책임을 명확히 규정한다.

반면 우리 제도는 현장 근로자의 명백한 중과실조차 구조적으로 경영자 책임에 귀속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책임의 방향성이 일방화되고 근로자 스스로의 안전 행동에 대한 경각심과 자기 규율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안전 수칙이 법적 의무가 아닌 '권장 사항'처럼 인식되는 한 정책이 의도하는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전은 자율과 교육만으로 정착되지 않는다. 일정 수준의 강제성 있는 조치를 병행할 때 문화적 변화가 현실이 된다. 이제는 산재보상 체계와 안전 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연계할 필요가 있다. 안전대 고리 미체결, 안전모 등 개인 보호구 미착용 등 중대한 안전 수칙 위반이 중경상 또는 사망 사고로 이어진 경우에는 산재보상 감액 원칙을 법령에 명확히 규정하고 적용 기준과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제도 개선이 처벌 강화를 넘어 현장의 안전 행동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책적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러한 제도 개선은 근로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책 설계는 반드시 조건 개선과 병행되어야 한다. 근로자가 안전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보호구 착용의 불편을 해소하며 무리한 공정 압박을 완화하는 구조적 조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안전은 법 조문이나 관리 문서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작업자의 판단과 행동이 반복되는 현장에서 축적된다. 결국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가는 현장에 어떤 안전문화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현장의 행동을 바꾸는 안전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중대재해는 줄어들 수 있다. 이제는 처벌 중심에서 벗어나, 자율과 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행동 기반 안전문화'로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