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금오연] 원자력 안전 검증 국가가 맡아라

입력 2026-01-20 15:16:04 수정 2026-01-20 17: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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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연 전 경북대 교수

금오연 전 경북대 교수
금오연 전 경북대 교수

원자력 안전 검증의 구조는 전환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 판단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를 사실상 신청 기관의 전문성과 성실성에 맡겨 왔다. 이러한 방식은 안전 판단의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하지 못했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이제는 검증 기관이 스스로 분석하고 비교·확인해 판단의 근거를 형성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구조로 이동해야 한다. 이는 국가가 원자력 안전에 대한 최종 책임을 제도적으로 감당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성립하는 안전은 "문제없다"는 결론의 반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그 판단에 이르렀는지가 분명할 때에만 안전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대구경북은 다수의 원자력 시설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 지역 주민들의 안전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주민들이 던지는 질문 역시 안전성 판단이 어떤 근거와 과정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판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구체적인 확인 요구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안전성 검증 체계는 이러한 요구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해 왔다. 그 결과 판단의 근거와 과정, 불확실성이 어떻게 반영됐는지에 대한 핵심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자료가 공개되더라도 상호 검증이 결여된 공개는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으며, 설명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비교와 확인이 없는 설명은 신뢰로 이어지기 어렵다.

과거에는 전산 자원과 해석 기법의 제약으로 인해 신청 기관의 계산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방식이 불가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산 환경과 안전 해석 기법, 분석 도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대규모 계산과 다양한 조건을 동시에 검토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해졌다. 규제 기관 역시 필요하다면 동일한 조건에서 해석 결과를 재현·비교·검증하고, 서로 다른 가정과 모델이 결론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함으로써 판단의 근거를 직접 형성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는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구조를 방치하면 검증은 형식화되고, 책임과 분리된 권한 행사가 누적되면서 제도에 대한 신뢰는 점차 약화된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제도 설계에 있다.

상호 검증은 이미 실행 가능한 단계에 와 있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규제 기관이 권한이 아닌 분석과 비교를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그 책임을 분명히 지는 제도적 전환이다. 안전 판단의 무게 중심을 신청 기관에서 규제 기관으로 옮기고, 규제 권력이 아니라 검증 절차가 결론을 이끄는 구조를 확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반복되는 논쟁을 줄이고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실질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판단의 근거와 책임이 명확해질수록 안전 논의는 방어와 해명의 언어에서 벗어나 사실과 근거에 기반한 공적 토론으로 전환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구조는 규제 판단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같은 논쟁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는 효과도 갖는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안전하다는 결론의 반복이 아니라, 검증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국민이 일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