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이종철] 보수와 진보

입력 2025-12-25 13: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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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보수는 유능하고 진보는 무능하다는 명제가 있었다. 보수는 부패하지만 유능하고 진보는 깨끗하지만 무능하다고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시대를 거쳐 오며 보수는 기득권 집단이고 진보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대변자처럼 여겨졌다. 진보는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독점했다. 세상이 투명해지고 민주주의가 심화하면서 보수는 더 이상 부패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반대로 진보가 부패하게 되었다. 진보도 이제 기득권 집단이 되었다. 더욱이 진보는 부패가 들통 나도 인정할 줄 모른다. 그 습성 때문이다.

보수에 맞서 싸워오는 동안 진보는 '타도의 대상'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자신들이기 때문에 정당화된다는 자의식이 자리 잡았다. '투쟁'을 위한 부정과 부인에 익숙했던지라 발뺌이나 반발이 습성이 되었다. 자신의 부패를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으로 덮는 데도 능숙하다. 그로 인해 이제 기득권이 된 진보는 쉽게 부패가 깊어 갔다.

결국 보수는 부패하다는 인식을 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고 진보는 과거와 달리 부패하다는 인식을 갈수록 심각하게 안기고 있다. 심지어 국민들 눈에 보수는 적어도 진보처럼 그렇게 발뺌을 하지는 않는데 진보는 반대로 이것이 너무나 심하다. 부패한 보수와 싸운다며 온갖 깨끗한 척을 다해 놓고는 이제 와서는 그에 정면으로 반하는 모습을 보이니 참 뻔뻔하다는 인상을 누적한다. 진보는 이제 부패하고 위선적인 집단이 되어 있다.

하지만 보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능하다는 인식을 진보에게 빼앗겨 버렸다. 이 역시 보수와 진보가 가지고 있는 습성과 시대 환경에 기인하다. 일을 잘한다는 유능함이란 변화한 시대 속에서는 '국민 공감'이라는 것을 매우 결정적으로 수반하는데, 보수는 여기서 실패하고 있고 진보는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는 대중을 선동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결국 본인들이 주도층이 된 집단이다. 보수는 대중을 선동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까 하는 실력과 전문성을 키워서 주도층의 역할을 해온 집단이다. 대중에 대한 인식과 체감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심화된 시대에 세상의 각종 사안들은 매우 복잡하거나 상충되게 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거나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는 것은 필수적인 사전, 사후 조건이자 매우 정교한 작업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진보는 특유의 본성에 맞게 항상 여론을 살피고 일의 선후에 있어 대중의 인식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을 잘한다. 그런데 보수는 여전히 그런 점이 서툴고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없는 채 그저 그전에 하던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보수는 국민들에게 '효능감'을 주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유능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진보는 보수의 이런 패착을 잘 파고든다. 이런 점을 극대화시켜서 보수가 무능한 집단이라는 선전선동을 매우 능숙하게 한다. 진보는 자신을 선전할 때도, 상대를 공격할 때도 이 점을 잘 활용해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보수가 유능함을 회복하려면 '공감 능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진보는 상당 기간 유능한 집단인 양 보이는 것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기 때문에, 게다가 그 위선이 드러날 때도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기 쉬울 것이다.

사실 진보가 '갈 데까지 간' 상황이었다. 이것을 뒤집어버린 것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된 셈이다. 부도덕한 집단의 국정 마비 사태를 국민들은 깊은 우려와 탄식으로 보고 있었다. 이대로 참고 견디기만 했어도 진보가 국민적 심판을 받고 몰락일로로 접어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는데 여기에 심장충격기를 갖다 대어 소생을 시켜준 것이 얼토당토않게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됐다는 개탄이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이 같은 시대정신과 시대과제를 실천하고 성공시켜야 했던 것이다. 보수, 진보의 부패를 모두 겨냥했던 윤석열 검사였기에 적임자라고 보았다. 국민들의 기대가 컸던 게다. 진보의 막장 드라마를 종영시킬 '찰라'가 윤석열 정부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완전한 반전이 되어 버렸고, 보수는 더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제를 잊은 듯, 길 잃은 보수와 기고만장한 진보가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