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경 변호사
보수란 무엇인가. 흔히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로 오해되지만 보수의 본질은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 즉 자유민주주의와 권력분립, 법치주의를 지키는 것이 보수의 존재 이유다.
보수는 어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서도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대한민국의 존립 및 역사를 지키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특히 이 질문은 보수의 고향이라 불려온 TK(대구경북)와 영남 지역에서 더욱 무겁게 던져져야 한다. 이 지역은 단순한 특정 정당의 지지 기반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떠받쳐 온 중요한 한 축이었다. 보수의 힘은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그만큼 그 책임도 크다.
그 기준에서 볼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논란에 대하여는 분명한 평가가 필요하다. 비상권력은 헌법이 허용한 최후의 수단이지, 정치적 위기 관리의 선택지가 아니다. 헌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를 벗어난 권력 행사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12·3 비상계엄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 비상권한을 동원하려 했다는 점에서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 헌법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2·3 비상계엄이 계몽령이니 하면서 '윤 어게인'을 외치는 세력은 보수라 할 수 없고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이라 할 것이다.
오늘의 국민의힘 내부를 들여다보면 영남 민심이 기대해온 보수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장동혁 대표 체제 하에서 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이른바 '윤 동조세력'은 여전히 '윤 어게인'을 외치며 과거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권력 집중이라는 중대한 위협에 맞서기보다 당 내부의 다른 목소리를 척결하는 데 정치적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위헌적인 입법 시도에 대해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비판하지만 행동은 없다.
최근 민주당이 통일교 특검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야는 특검 후보 추천권과 수사 대상 범위를 놓고 의견이 달라 최종 합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국민의힘은 통일교 로비 의혹 뿐 아니라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의 금품 수수 의혹을 뭉갠 민중기 특검도 수사 대상에 넣자며 수사 범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대목은 민주당이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2차 종합 특검'이다. 내란·김건희·해병 특검 종료 시점에 맞춰 발의된 이 법안은 여권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준비 기간을 포함한 수사 기간은 최장 170일에 달한다. 일정상 내년 6월 지방선거와 정확히 겹친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과 지역 정치인들이 대거 수사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의 통일교 특검 수용은 지방선거를 앞둔 대규모 특검 정치에 대한 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한 선택이라는 해석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민주당의 행보만이 아니다. 위헌 논란이 짙은 내란재판부 설치 특별법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이른바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까지 속도전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의 대응은 지나치게 무기력하다. 국회에서 보여주는 것은 실효성 없는 필리버스터, 그것도 지지층을 향한 개인 홍보용 짧은 영상으로 소비되는 장면들 뿐이다. 이렇게 민주당의 위헌적 입법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보수의 본향인 TK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국회를 통과한 내란재판부 설치 특별법과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에 대하여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통일교 특검법도 국민의힘 요구대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TK지역 의원들은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이라도 하든지 의원직을 걸고 국회의원직 총사퇴까지 각오하겠다는 공동 성명이라도 내놓든지 최소한의 결기를 행동으로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보수의 위기는 곧 헌법의 위기다. 보수의 고향에서조차 헌법을 지키겠다는 목소리가 사라진다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지켜질 수 있겠는가. TK지역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침묵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보수는 역사 앞에서 다시 한 번 침묵의 공범으로 기록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