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하다 하이닉스까지 … "바보들의 경고" 소리 듣는 투경, 그게 뭔가요[매일뭐니머니]

입력 2025-12-12 10: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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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주들이 잇따라 투자경고 종목 지정 논란 확산
주가조작 막으려던 제도가 우량주 발목 잡아 …개미 혼란 가중
"제도 개선 시급" 불만에 거래소 제도 개선 검토 나서

제미나이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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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투자경고 종목이라고요? 시총 400조가 넘는 종목을 거래정지 시킨다고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요즘 주식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습니다. 코스피가 4000대를 돌파하며 역사적인 불장을 이어가고 있는데, 정작 시장을 이끈 주역들이 하나둘 '투자경고 종목'이라는 빨간 딱지를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일 한국거래소는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를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전날 종가가 1년 전 대비 200% 이상 상승했고, 최근 15일 종가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3.75% 떨어진 56만5000원에 거래를 마감했고, SK스퀘어도 5.09% 하락한 30만75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뉴욕증시가 상승 마감했음에도 코스피는 오후 들어 상승폭을 모두 반납하고 0.59% 내린 4110.62로 마감했습니다.

투자경고종목 제도는 원래 중소형 '작전주'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입니다. 한국거래소는 주가가 단기간 급등하고 소수 계좌에 매매가 집중되는 등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있는 종목에 대해 시장경보를 발령하는데요. 투자주의→투자경고→투자위험 총 3단계로 구분됩니다.

투자주의종목 지정 이후 10일간 급등세가 잦아들지 않으면 투자경고를 받고, 주가가 더 오르면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됩니다. 투자위험종목은 지정 당일 1일간 거래가 정지되죠. 특히 이번에 SK하이닉스가 걸린 건 2023년 10월 신설된 '초장기 상승·불건전 요건'입니다. 라덕연 일당이 영풍제지, 삼천리, 대성홀딩스 등의 주가를 장기간 끌어올려 감시망을 회피한 신종 주가조작 사례가 발생하자 거래소가 부랴부랴 만든 규정인데요.

이 요건에 따르면 특정 종목이 1년간 200% 이상 상승하고, 최근 15거래일 중 상위 10개 계좌의 매수 관여율이 일정 기준 이상인 날이 4일 이상 반복될 경우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규정이 시가총액 400조원이 넘는 SK하이닉스에도 그대로 적용됐다는 겁니다.

비단 SK하이닉스만의 일이 아닙니다. 올해 코스피 상승장을 이끈 대형주들이 줄줄이 투자주의·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되고 있습니다. 국내 증시 상승장이 본격화된 올해 6월부터 지난 11월초까지 코스피·코스닥시장에서 투자주의종목으로 지정된 건수는 300건이 넘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190건 남짓이었죠.

특히 '초장기 불건전 유형'에 해당돼 투자주의를 받은 종목은 올해 1~5월 36건에 불과했지만 코스피 상승 랠리가 시작한 6월부터 11월까지는 총 117건으로 3배 넘게 늘었습니다. 종목별로 보면 전력기기 업종의 LS일렉트릭과 조선업의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도 최근 한 달 사이 투자주의종목으로 지정됐습니다. 9월에는 방산 대표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투자주의를 받았죠. 이달만 해도 현대로템, 현대약품, 두산에너빌리티 등 코스피 대형주 9종목이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됐습니다.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되면 매수 시 위탁증거금을 100% 납부해야 하고, 신용융자 매수가 불가능합니다. 거래정지까지 당할 수 있죠. 그런데 정작 투자자들은 해제 조건조차 명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가파른 상승세를 탄 코스피, 코스닥 주도주 종목들의 주식 커뮤니티에는 종종 투경 해제 여부를 관측하거나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글들이 올라옵니다.

"거래소 문의해보니 전일 종가 최고가와 오늘 종가 최고가 보합이면 해제 요건 맞다고 합니다. 내일 하루는 주의 종목 지정이며, 근데 내일 주가가 올라도 월요일 투경 해제랍니다. 근데 또 월요일 해제되더라도 증권사별로 5일 정도 신용거래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잘 나가는 우량 종목 투자자들이 이런 걸 추정하고 고민하고 혼란을 겪고 있는 겁니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시세조종 우려가 덜한 대형주에 대해서도 과도한 제재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한 투자자는 "시가총액이 425조원으로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총의 10%가 넘는 종목을 거래정지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습니다.

증권가에선 SK하이닉스의 목표가를 100만원, 효성중공업은 300만원까지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산업 호황과 외국인 수급 유입에 따른 상승 흐름임에도 시장경보가 반복되면서 투자자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건 일부 투자자들이 시장경보를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장경보를 받은 종목 주가는 대개 조정을 받는데, 조치 해제 이후 이를 저가매수 기회 삼아 주가가 오히려 더 오르기도 합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시장 조치를 '관심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하죠. 요즘에는 오히려 시장경보 받은 종목을 '갈놈갈(상승할만한 종목이 상승했다)'이라며 그것만 골라 매수하는 투자자들도 있다고 하니 시장경보 취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번 상황을 주도주를 잡는 "바보들의 경고"라고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제도의 경고 효과라는 취지 자체가 퇴색하고 있는 겁니다. 때문에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데요.

개인주식투자자 권익보호 비영리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정의정 대표는 "상승 VI 제도가 위험에 대한 주의, 경고 목적이라면 하락 시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며 "단기 과열 종목 지정 제도는 주가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고, 사유재산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거래소도 결국 제도 손질에 나섰습니다. 거래소는 지난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투자경고종목(초장기 상승·불건전 요건) 지정 요건을 단순수익률이 아닌 주가지수 대비 초과수익률을 기준으로 변경하고, 시가총액 상위종목을 제외하는 등 제도 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대형주에 대한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통상 대형주는 거래량이 많아 불공정거래 우려가 적고, 주가가 크게 올라도 정책 수혜나 실적 기대감에 따른 결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코스피가 5000포인트를 향해 달려가는 역사적인 불장입니다. 하지만 시장을 이끈 주역들이 하나둘 '경고 딱지'를 달고 거래정지 위기에 내몰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전주를 잡으려던 그물이 정작 우량주만 옭아매고 있는 건 아닌지, 제대로 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