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의 외화채권 발행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발행 방식과 장단점 파악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는데, 결과에 따라 관련 법도 개정할 태세(態勢)다. 현행 국민연금법에는 외화채를 발행해 연금 사업 기금을 조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화채 발행은 국민연금이 해외 주식 등에 투자할 때 필요한 외화(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주고 사 오는 대신 일정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다는 말이다. 올해 8월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 1천322조원 중 580조원(44%)이 주식을 포함한 해외 상품에 투자되고 있다. 이런 대규모 투자액을 외화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면 외환시장의 달러 수요를 줄여 환율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국민의힘은 "국민 재산 약탈(掠奪) 선언과 다름없다"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국민이 피땀 흘려 모은 노후 자산은 어떤 정부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면서,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해 연금법까지 뜯어고쳐 보겠다는 파렴치한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일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고환율 문제에 대해 "국내 시장의 경쟁력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근본 해결책"이라면서 "(환율 방어를 목적으로)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절대로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외화채 발행 논란까지 벌어진 것은 그만큼 원·달러 환율이 불안정하게 움직여서다.
국민연금 외화채 발행에는 전문가들도 의문을 제기한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할 때엔 고환율이 부담스럽지만 반대로 원화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해외 자산을 처분할 때엔 오히려 고환율이 유리할 수 있다. 환율 불안 원인은 국민연금과 서학개미 등의 달러 수요도 있지만 대미(對美) 투자 부담이 크다. 기업들이 달러를 내다팔지 않고 있어 고환율이 이어지는 것이다. 구 부총리가 언급한 국내 시장의 경쟁력과 매력이 결국 답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국내 투자 선호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거시경제와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꼼수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