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국보] 경북의 문화재 환수 움직임…"발굴된 자리에서 빛나는 문화유산"

입력 2026-01-08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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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천의 환수 요구 확산…국립중앙박물관은 '공유 가치·안전' 강조
APEC 계기 '상설 전시·관리 주체 전환' 목소리
중앙박물관 "원소재지·사적 지정·정밀조사 선행"

경북의 경주를 비롯해 김천과 고령의 국보급 유물들 가운데서도 원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황남대총 북분 금관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경북의 경주를 비롯해 김천과 고령의 국보급 유물들 가운데서도 원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황남대총 북분 금관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문화유산은 발굴된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납니다."

경상북도가 '집 떠난 국보'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와 가야의 터전인 경북은 노천박물관이라 불리지만, 일부 국보는 서울 등 타지에 머물러 있다. 특히 최근 경주와 김천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환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 경주, APEC 계기로 '금관의 귀환' 노린다

경주시는 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문화 주권 회복을 외치고 있다. 현재 경주 밖으로 유출된 경주 출토 국보는 확인된 것만 9점에 달한다. 대표적인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황남대총 북분 금관'과 '금제 허리띠', 그리고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등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APEC을 기념해 신라금관 6점을 한자리에 모으는 특별전을 기획했지만, 전시 종료 후에는 다시 서울과 청주 등으로 흩어질 예정이다. 이에 경주 시민사회는 "APEC 정상들에게 보여준 신라의 정수가 정작 경주에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번 기회에 금관 등 핵심 유물의 상설 전시 또는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신라금관 경주존치 범국민운동연합'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핵심 목표는 일제강점기 등에 반출돼 국립중앙박물관(서울) 등이 소장 중인 국보급 문화재들이다.

박임관 경주문화원장(범국민운동연합 공동대표)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단순한 반환 요구를 넘어, 중앙집권적 문화재 관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박 원장은 "국가유산기본법의 취지는 문화유산의 원형과 '장소성'을 함께 보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유일하게 봉황 세 마리가 장식된 서봉총 금관(보물)은 현재 연고도 없는 국립청주박물관에 가 있다. 이에 대해 "신라와 아무런 역사적 맥락도 없는 청주로 금관을 보낸 건 지역성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경주 밖 국보는 금관만이 아니다. 감산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여래입상'은 1927년 일제가 경복궁에서 연 '조선물산공진회(박람회)' 장식용으로 가져간 뒤, 100년이 다 되도록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박 원장은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은 경주에서 특별전을 한다고 해도 '보존 관리' 등을 이유로 유물을 빌려주지 않았다"며 "이번 APEC을 계기로 아예 관리 주체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북의 경주를 비롯해 김천과 고령의 국보급 유물들 가운데서도 원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경북의 경주를 비롯해 김천과 고령의 국보급 유물들 가운데서도 원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경북의 경주를 비롯해 김천과 고령의 국보급 유물들 가운데서도 원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경북의 경주를 비롯해 김천과 고령의 국보급 유물들 가운데서도 원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 김천 갈항사지 석탑, 고령 출토 유물 등도 서울에

김천시의 상황도 절박하다. 김천시 남면 오봉동 갈항사터에 있던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은 1916년 일제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진 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다. 김천시는 2024년 9월 '국보 갈항사지 삼층석탑 김천 이전 추진위원회'를 출범하고 14만 시민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경북 고령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가야의 금관(국보) 역시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수집한 것으로 법적 소유권은 인정되나, 출토지인 고령 지역민들에게는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역사다.

앞서 환수 사례들도 있다.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의 '오대산 사고본'이 지난 2023년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강원도 평창군(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으로 귀환했다. 민간과 불교계,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다가 오대산으로 다시 온 것이다. 집 떠난 지 110년 만이다.

2017년에는 서울에 있던 '하회탈'이 안동으로 환수됐다. 하회마을 소유였던 하회탈은 1964년 연구 등을 이유로 마을에서 반출됐다. 그해 3월 국보로 지정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해왔다. 보관 시설이 없다는 등의 그동안 이유로 반환을 미루다 53년 만에 다시 안동으로 왔다.

경북의 경주를 비롯해 김천과 고령의 국보급 유물들 가운데서도 원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경북의 경주를 비롯해 김천과 고령의 국보급 유물들 가운데서도 원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 중앙박물관 "금관은 대한민국 대표 유산"

이러한 지역 사회의 거센 환수 요구에 대해 유물을 관리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현실적인 제약과 문화재의 '공유 가치'가 우선"이라는 신중한 입장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는 경주 지역의 신라금관 환원 요구에 대해 사실상 '불가'라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금관은 경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고 전제하며 "경주 지역에 일괄 상설 전시하는 것보다는 신라 문화의 우수성을 국내외로 폭넓게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했다.

이어 "신라 문화 가치의 창출과 확산, 그리고 경주 지역 홍보를 위해서라도 다양한 곳에서의 활용이 더욱 효과적"이라며, '원위치 보존'보다는 '폭넓은 활용'에 방점을 찍었다.

김천에서 추진 중인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환수에 대해서도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박물관 측은 "현재 김천 갈항사 터는 개인 사유지에 위치한 폐사지로, 관리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현 상황에서 원위치 환원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지역 환원을 검토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원소재지의 확실성 ▷사적지 지정을 통한 명확한 관리 주체 ▷원형 그대로 제 위치 이전 가능성 ▷안전을 위한 과학적 정밀 조사 선행 등을 제시했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은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이나 김천 갈항사지 석탑 사리장엄구 등 일부 유물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상설 전시에서 활용 중"이라며 "앞으로도 조사 연구나 특별 전시 등 소속 박물관(대구·경주)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