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 감지됐지만 측정기 상 수치 정상 수준인 경우 적잖아
악취 모니터링에 적발되도 처벌은 못해…실효성 지적
대구 염색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악취와 폐수 등 환경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대구 서구청이 도입한 악취 모니터링 시스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악취 측정 지점이 염색산단보다는 인근 주거단지 위주로 분포돼 있고, 측정 수치가 비교적 낮게 나타나는 데다 악취를 감지하더라도 배출원을 특정할 수 없는 구조여서다.
◆코 찌르는 악취…측정기는 '초록불'
지난 5일 오후 7시 30분 염색산단 인근 한 도로는 매캐한 화학 약품 냄새에 더해 인근 상리위생처리장, 방천리 매립장 등에서 나는 다른 종류의 냄새가 뒤섞인 악취로 가득 찼다.
이날 대구 서구청 대기개선팀은 측정 차량에 탑승해 악취 모니터링 단속에 나섰다. 서구청은 2020년 이후 염색산단 인근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지난해 9월부터 별도 측정 차량을 도입해 수시로 악취 정도를 파악하고 있다.
측정 차량이 염색산단 주변 도로를 지나자 유독 시큼한 냄새가 훅 느껴졌다. 단순 냄새 뿐 아니라 춥고 건조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비교적 후끈하고 습한 불쾌한 느낌까지 함께 전해졌다. 동행한 서구청 대기개선팀은 섬유 원단에 열을 가해 다림질하는 '텐타' 공정에서 발생하는 냄새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좀더 떨어진 다른 장소에서는 코를 쏘는 듯한 매니큐어 냄새가 진동했다. 섬유 코팅 시설에서 주로 사용하는 '톨루엔' 성분 냄새였다.
톨루엔은 접착제나 페인트 등에 이용되며 과다하게 흡입할 경우 구토나 시각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이다.
앞서 2023년 9월에는 염색산단의 한 석유화학공장에서 톨루엔이 든 드럼통이 연쇄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며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했다.
차량을 멈추고 본격 측정에 나섰다. 측정기에 나타난 수치는 복합악취 희석배수 0에 황화수소 0ppb, 암모니아 267ppb 수준이었다.
공업 지역에서의 배출 허용 기준치가 복합악취의 경우 희석배수 1천에 황화수소와 암모니아가 각각 60ppb, 2천ppb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사실상 '청정구역'에 가까운 수치가 나온 셈이다.
톨루엔,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이 포함돼 인체에 암과 신경계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TVOCs)은 290ppb만 검출됐다. 휘발성 유기화합물도 배출기준인 20만ppb에 크게 못 미쳤다.
재차 측정에도 측정기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비롯해 모든 항목이 정상 수치를 가리켰다.
◆고성능 측정기 '무용지물'…후각에 의존
이날 서구청 악취 모니터링 단속반의 악취 측정은 결국 직원들의 후각에 의존한 채 진행됐다. 1억원을 투입해 마련한 악취 모니터링 차량에 고성능 측정기가 있음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다.
이날 누구나 코로 맡을 수 있을 정도의 악취가 감지되지만 측정기는 정상 수치만을 가리켰다. 고성능 측정기는 별 문제가 없다는데 정작 쉽게 무뎌지는 사람의 코로 단속을 진행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됐다.
취재진이 코로 냄새를 감지한 뒤, 측정기 활용을 위해 배출원으로 가까이 다가가보자고 제안했지만 단속반 직원은 난색을 표했다. 염색산단에서 수증기를 내뿜는 굴뚝만 수백개인 데다 골목 하나 사이로 전혀 다른 성질의 악취가 뒤섞인 탓에 특정 공장을 배출원으로 지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측정하다 보니, 찰나의 순간 바람에 실려 흩어지는 냄새 입자를 기계가 포착해 수치화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구청이 별도로 염색산단 인근 평리5동 행정복지센터 옥상 등 20여 개 지점에 설치한 고정형 측정기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측정기 절반 이상이 염색산단이 아닌 인근 주거단지에 설치돼 있어 정확한 악취 유발 지점을 특정하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고정형 측정 현장에 가보니 정확한 악취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염색산단 주변에서 맡을 수 있었던 매캐한 냄새 뿐 아니라 인근 상리위생처리장과 방천리 매립장에서 흘러온 것으로 추정되는 악취에 정화조 배기구, 가정집 음식 냄새 등 생활 악취까지 잔뜩 뒤섞인 탓이다.
◆처벌도 못해…단속 실효성 '의문'
악취 모니터링 과정에서 측정이 사실상 무의미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단속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단속반 직원들은 차량 운행 중 악취를 맡으면 측정값과 관계없이 관계기관에 연락해 저감 조치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모니터링을 마무리했다. 실질적인 단속이라기보다는 계도 수준에 머무른 모니터링이었다. 객관적인 측정 수치 없이는 과태료 부과도, 개선 명령도 불가능해서다.
다만, 서구청은 염색산단 악취 측정을 위해 민간 감시원 8명의 상시 감시와 공무원의 야간·새벽 순찰을 병행하는 만큼 심리적 억제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구청 관계자는 "최근에는 그래도 악취가 줄었다. 섬유 경기 악화로 24시간 작업하는 공장이 전체의 40% 이하로 줄어든 데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조업하는 곳도 생겼기 때문"이라며 "측정기는 현재 참고 자료로 판단에 도움만 주는 수준이다. 직원들이 수시로 순찰을 돈다는 사실을 배출 시설이 알다 보니 작업 과정에서 더 주의를 기울여 줄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