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룰'의 딜레마, 표류하는 스테이블코인…골든타임 놓치나

입력 2025-12-09 17: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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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2단계 입법 관련 "10일까지 제출하라" 여당 독촉에도 당국 "사실상 불가능"
"은행 지분 51% 필수" vs "핀테크 진입 막는 규제 알박기"

스테이블코인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스테이블코인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법안)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법안의 키를 쥔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입법 절차가 멈춰 섰다.

9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민주당이 못 박은 정부안 제출 시한인 오는 10일을 하루 앞둔 이날 금융위는 사실상 기한 내 제출이 어렵다는 입장을 국회에 전달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와 감독 권한을 둘러싼 금융위와 한은 등 두 기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금융 산업의 미래가 걸린 법안이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누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것인가'이다. 핵심은 이른바 '51% 룰'이다. 한은은 금융 안정성을 이유로 "은행 지분이 51%를 넘는 컨소시엄만 발행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고수하고 있다.

은행의 검증된 규제 대응 능력과 자본력이 담보돼야 화폐 가치 연동 실패(디페깅) 등의 리스크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당분간은 은행 중심으로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금융위의 시각은 다르다.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 구성이라는 큰 틀에는 동의하지만, 법률에 지분율 51%를 명시하는 것은 과도한 진입 장벽이라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최근 당정 협의에서 유럽연합(EU)의 미카(MiCA)법 사례를 들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15곳 중 14곳이 전자화폐 기관임을 강조했다.

일본 역시 핀테크 기업에 문을 열어준 상황에서, 한국만 은행 과반 지분을 강제할 경우 네이버파이낸셜이나 카카오페이 같은 빅테크·핀테크 기업의 시장 진입이 원천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지분율을 51%로 못 박는 순간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기존 은행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라며 "혁신적인 결제 모델을 가진 핀테크 기업들이 은행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발행 주체 논란 뒤에는 '권한 쟁탈전'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과 금융위 초안은 스테이블코인 사업자의 인가권을 금융위 소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한은은 반발하며 '만장일치 합의 기구' 설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단순한 협의를 넘어, 한은이 실질적인 비토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인 것. 나아가 한은은 자료 제출 요구권, 공동 검사권, 심지어 긴급조치명령 요청권까지 법안에 담길 원하고 있다.

금융위는 한은 부총재가 이미 금융위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별도의 합의 기구나 검사권은 실익이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는 오는 11일 정부안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려 했으나, 정부안 제출이 지연되면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미국 등 주요국이 스테이블코인 패권 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한국은 기본적인 법적 토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1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령 제정 등을 거치면 실제 시행은 2027년 하반기에나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