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한화 임차지엔 삼성SDS 'AI 데이터센터'…2천800억 한화 신공장과 '바통터치'
LIG넥스원, 창고 헐고 3740억 신축… 미코세라믹스 가세해 '투자의 선순환' 완성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새 살'이 돋고 있다. 한때 멈춰 선 생산라인과 공장에 먼지가 쌓이던 그 자리에, 첨단 미래 산업 기업들이 차례로 입주하며 산업 생태계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투자의 선순환'이 있다. 주요 기업들이 나가면 새로운 기업이 들어오고, 그로 인해 주변 산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가동이 중단된 공장을 정비해 AI 데이터센터가 세워지고, 무너진 창고 자리에 차세대 방산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과거의 주력 산업이 퇴장한 자리를 미래 먹거리가 즉각 메우는, 이른바 '산업 나비효과'가 구미 산단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한화가 비우니 삼성이 채웠다
이번 산단 재편 과정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화시스템과 삼성SDS로 이어지는 '연쇄적 투자' 흐름이다. 이는 기업 간 공간 재편이 위기가 아닌 기회로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당초 한화시스템은 삼성전자 구미1사업장의 일부 부지를 임차해 사용해왔다. 그러다 옛 한화 구미사업장(탄약용 신관 생산)이 구미를 떠나게 되자, 한화시스템은 그 빈 부지에 2천800억원을 과감히 투자해 자가 사업장(구미 신사업장)을 짓고 최근 이전을 완료했다.
자칫 대규모 공실로 남을 뻔했던 한화시스템의 임차 공간(삼성전자 구미1사업장 내 유휴부지)은 곧바로 삼성SDS가 넘겨받았다. 삼성SDS는 지난해 해당 부지를 인수해 현재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준비 중이다.
결과적으로 '한화의 철수'는 '한화시스템의 신규 공장 건립'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삼성SDS의 AI 데이터센터'로 연결됐다. 산업 생태계가 서로의 빈 공간을 메우며, 위기를 성장의 계단으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구미산단의 회색빛 철골 구조물 사이로 '디지털 혈관'이 흐르기 시작했다.
◆LIG넥스원 '생산기지 확장'
K-방산의 또 다른 주축인 LIG넥스원은 '리모델링'을 넘어선 '재건축' 수준의 투자를 단행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LIG넥스원은 지난 4일 이사회를 열고 구미 1산단 내 구미하우스 증설을 위해 총 3천740억원 규모의 신규 시설 투자를 의결했다. 이는 지난해 인수한 구미 1산단 내 옛 대기업 자재창고 부지(약 4만7천㎡) 활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LIG넥스원은 해당 부지에 남아있던 낡은 물류 창고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그 자리에 2029년 6월까지 최첨단 방산 설비를 갖춘 신규 사업장을 신축하기로 했다.
최근 '천궁-II' 등 유도무기의 글로벌 흥행으로 폭증하는 수출 물량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로봇·우주 등 미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승부수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급변하는 국내외 방산 환경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 생산 인프라 확충 차원의 투자"라며 "구미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중심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CD 떠난 자리엔 '소부장'
디스플레이 산업의 침체로 멈춰 섰던 공장은 '반도체'라는 새 옷을 입는다.
최근 LG디스플레이는 가동이 중단된 P2·P3 공장과 용지 약 20만㎡(6만평)를 미코그룹 계열사인 미코세라믹스에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밀려 적막감이 감돌던 LCD(액정디스플레) 생산 기지가, 구미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의 핵심 거점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미코세라믹스는 반도체 공정의 필수 부품인 세라믹 히터와 정전척(ESC)을 생산하는 전문 기업으로, 삼성전자가 2대 주주로 참여할 만큼 기술 경쟁력이 높다.
이번 투자가 완료되면 구미는 '웨이퍼(SK실트론)-쿼츠(원익QnC)-세라믹(미코세라믹스)-기판(LG이노텍)'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반도체 소재 생태계를 갖추게 된다.
구미 경제계 관계자는 "LIG넥스원의 대규모 신축과 삼성SDS의 데이터센터 입주는 구미 산단이 단순 제조 기지를 넘어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고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대기업 이탈의 공포를 딛고 이뤄낸 진정한 전화위복의 시기"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