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드는 마을
금호강 물줄기에 기대어 들어선 마을이 어디 한둘이랴. 영천을 휘돌다 달구벌 대구로 접어들기 직전, 강은 마을 언저리에서 숨을 달랜다. 이러기를 반복하고 되새긴 세월이 오래고 길다. 마을 이름이 참, 곱다. 하양(河陽). 볕으로 물든 강줄기에 의지한 마을이라니. 그런 마을이라면 계절마다 피고 지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쉼 없이 걷고 싶다.
하양이라는 지명은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그 이전에는 하주라 불렸는데, 하주라는 이름보다 하양이 왠지 더 입에 붙는다. 하주교, 하주초등학교 등 하주라는 이름을 붙인 시설이 있지만 이름이 어떻든, 하양이 볕 드는 마을로 사람들의 사랑을 내내 받았으면 한다.
하양은 예부터 사통팔달의 길목이었다. 길의 흐름을 타면 와촌, 청통, 신녕으로 물길을 따르면 영천, 경주, 대구까지 닿을 수 있다. 진량은 곁 마을처럼 가까이 붙어 있고, 자인으로 향하는 길은 오래전부터 열려 있다. 칠곡, 군위에서 흘러내린 팔공산 자락은 하양까지 드리워지니 학이 날개를 펼치고 춤을 추는 듯한 무학산(舞鶴山·588.4m)이 하양까지 도달한다.
하양, 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하양이란 지명이 나그네의 허허로운 몸을 따스하게 데운다. 생명을 일으키고 살리는 볕의 기운이 몸속으로 선선히 퍼진다. 그 볕에 이끌려 양지를 걷고 싶은 소망으로 하양을 천천히, 속속들이 걸어보게 되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몸담은 직장이 멀지 않아 하양을 찾는 게 수월했다.
하양을 가로질러 금호강으로 스며드는 작은 하천이 있다. 조산천이다. 조산천과 금호강이 맞닿는 지점에서 시작해 마을 거리와 골목으로 들어선 적이 여러 번이다. 특별한 답사 목적으로 나선 게 아니다. 어찌 보면, 마실이다. 퇴근길에 문득 마음이 동하면, 조산천 수면을 옆에 두고 하양 속으로 빠져들 듯 걸었다. 그렇게 이 마을과 어느 결에 친해졌다.
◆빛이 머무는 교회
하양 오일장을 거닐다 출출하면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가 허기를 달랬다. 어느 날은 보물로 지정된 환성사(環城寺)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일제 강점기부터 신자를 받은 유서 깊은 하양 성당에도 여러 번 출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문 하나에 이끌려 발걸음을 또 다른 방향으로 내딛게 되었다. 승효상 건축가가 하양에 세워 올린 교회가 있다는 반가운 소문이다. 이름하여 무학로 교회.
언제 처음 그곳에 이르렀는지 또렷하게 짚어낼 수는 없다. 다만 어떤 부름을 받은 사람처럼 종종 들른 기억만은 명료하다. 한학에 능한 조원경 목사님께 인사를 드렸고, 어느 계절의 수요일 저녁에는 경건한 고요가 내려앉은 예배당에 몸을 의탁했다. 그때 문득, 하양의 볕과 무학로 교회가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살이에 지친 나그네를 부드럽게 감싸는 볕과 빛이 하양이나 무학로 교회에 머무는구나 싶었다.
여지없이 12월이 시작되었다. 머잖아 거리에는 옷깃을 여미게 할 찬 바람이 불 것이고 사람들은 예년처럼 성탄을 축하할 것이다. 세상의 말들이 혼탁하게 들리는 탓일까, 그 말들을 지워 버리는 간절한 기도가 그리운 12월이다. 부끄러운 인생을 성찰하고 아픈 이를 위로하며 슬픈 이를 반갑게 품는 등불 같은 기도가 그립고, 그 기도를 바칠 집 한 채가 그리웠다.
무학로 교회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다. 안에서 밖이, 밖에서 안이 스스럼없이 서로 드러난다. 그 경계를 이루는 표지는 벽돌로 쌓은 낮은 담장이 전부다. 위압적인 구분도 닫힌 문턱도 없다. 누구든 자유롭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또 그렇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문을 걸어 잠근 교회가 아니라 사람에게 열려 있는 집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야외 예배당이 나그네를 먼저 맞아준다. 마을 잔치라도 열릴 법한 트인 공간이다. 담장 한쪽에는 은해사 주지 돈관 스님이 아름다운 인연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으로 심은 느티나무가 굳건하게 서 있다. 교회에 보시를 결행한 불제자나 그 뜻을 기쁘게 받은 목회자나 하나같이 존경하고 싶은 대인배다.
야외 예배당 옆에는 높은 종탑의 옛 성전이 담담하게 세월을 견디고 있다. 둘레에는 2m 높이의 벽돌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데, 그 덕에 옛 성전이 궁색해 보이지 않는다. 새로 올린 성전과 이전의 성전이 한 터에 나란히 곁을 튼 풍경이 우애롭고 보기 좋다.
이어서 마당으로 발을 들인다. 마당 한가운데 선 은행나무 한 그루가 새 성전과 높이를 겨루고 있다. 무학로 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각별하게 지켜본, 말 없는 최고령 신자다. 가지 위에는 까치가 둥지를 틀었고 나무 아래 켜켜이 쌓인 은행잎은 가을과 찬란한 작별을 나누고 있다. 신자들은 마당을 오가며 속 깊은 인사를 건네고 식사와 예배를 차분히 준비한다.
이 마당은 교회의 부속 공간이 아니다. 신자들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스치는 손님들의 발길이 포개져 쌓인 교회의 터전이다. 마당 위로 때로는 웃음이 번지고 때로는 한숨이 터졌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마당이 깊이 간직하는 것은 기도하는 이들의 간절함일 것이다.
◆몸 한편에 든 볕과 빛
마당 가장자리에는 목회관과 식당 한 채가 나란히 놓여 있다. 두 채 모두 농촌에서 흔히 보던 구식 한옥이어서 마당을 품은 무학로 교회에 고향집 같은 포근함을 더해준다. 목회관의 이름은 묵정초당(黙靖草堂). 거센 파도를 잠잠하게 한 예수의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마침 목사님이 계시기에 인사를 드렸는데,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겸손이 스며 있다.
목회관을 나서니 식당 채 처마에 일렬로 매달린 곶감이 먼저 눈에 와 닿는다. 12월의 햇살과 바람을 받으며 익어가는 곶감이 교회의 풍경 속으로 녹아든다. 본당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다. 곧장 예배당에 들지는 않는다.
출입구 통로에 서서 맞은편을 바라본다. 통로 맞은편은 수직으로 시원하게 트여 있다. 좁지만 막힘이 없는 이 통로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오고 갔을까, 만감이 교차한다. 통로 옆에는 수반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시골 개울을 떠올리게 하던 수반이 문득 거룩한 물결이 되어 나그네를 비춘다.
수반을 그윽한 시선으로 일별한 뒤 통로로 접어든다. 예배당 출입구 옆으로 가파른 계단이 몸을 비튼 채 서 있다. 폭이 좁아 한 사람씩 겨우 오를 수 있는 계단이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지고, 호흡 또한 신중해진다. 성전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계단을 오르라는 초대장을 받은 심정이다.
계단을 한 걸음씩 딛고 오를 때마다 저절로 숙연해진다. 이 길의 끝에서 천국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끝없이 딛고 오르며 계속 걸어야 하는 걸까. 겟세마네 동산을 예수는 어떤 심정으로 올랐을까. 헤아리려 해도 헤아려지지 않고 닿으려 해도 닿지 않는다.
계단을 모두 딛고 오르니 개인 묵상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홀로 기도하라고 마련된 은밀한 장소다. 하늘을 그대로 드러낸 두 벽 사이의 틈이 자연스레 만든 자리. 그 틈새에는 벽돌 의자가 단출히 놓여 있고, 나그네는 조용히 그 위에 몸을 얹는다.
순간, 정면에 선연한 십자가가 광휘처럼 눈에 잡힌다. 흔히 보는 실물의 십자가가 아니다. 벽 한가운데 아래로 길게 파인 흠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 흠이 십자가의 아랫자락이 되고, 나머지 형상은 기도하는 이가 하늘을 배경 삼아 완성해야 한다. 십자가는 하늘에 걸려 있고 나그네는 여전히 땅에 매여 있다. 하늘과 땅의 그 간극 속에서 나그네는 철저하게 홀로다. 하지만 이 홀로됨을 감당해야 할 나이 아닌가. 그리고 그 홀로됨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기도에 침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살며시 계단을 내려와 예배당 안으로 드디어, 몸을 들인다. 낮은 담장과 마당, 은행나무와 묵정초당, 수반, 계단, 묵상 공간을 거쳐 예배당에 이르고 나니 몸 한 편에 볕과 빛이 든 듯한 기분이 인다.
어떤 화려도 장식도 높낮이도 구분도 허락하지 않는 단아한 예배당에서 나그네는 비로소 깊은 안식의 쉼을 얻는다.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