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욱의 대구문화 오디세이] ⑫ 유네스코 창의도시 대구: 지속가능 발전의 패러다임

입력 2025-11-30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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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욱(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1세기는 흔히 '도시의 세기'라 불린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며 경제적 활동과 사회적 교류의 중심이 도시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성장은 새로운 위기를 동반한다. 환경오염, 불평등, 공동체 해체와 같은 문제는 도시를 지속가능하지 못한 공간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에 국제사회는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고, 문화와 창의성이 도시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물리적 인프라와 경제적 요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화적 요소와 창의적 에너지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 대구시 제공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 대구시 제공

◆유네스코 창의도시

유네스코(UNESCO)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이러한 맥락에서 출범하였다. 유네스코는 교육·과학·문화의 보급 및 교류를 통하여 국가 간의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연합 전문기구이다. 2004년 출범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문학, 음악, 영화, 공예&민속예술, 디자인, 미디어아트, 미식, 건축 등 8개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도시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문화적 자산을 공유하고 창의성을 통해 지속가능 발전을 도모하는 초국가적 연합체이다.

현재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전 세계 106개국 350개 도시가 가입(2023년 12월)해 있으며, 단일 문화 네트워크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네트워크에 가입한 도시들은 각자의 특성을 살려 창의적 활동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른 도시들과의 협력 속에서 문화다양성을 증진하고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촉진한다. 단순한 명예나 그럴싸한 타이틀이 아니라 정기적인 성과 보고와 국제회의를 통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므로, 창의도시라는 이름은 곧 책임과 책무의 상징이기도 하다.

국내에는 대구(음악)를 비롯하여 서울(디자인), 이천(공예&민속예술), 전주(미식), 부산(영화), 광주(미디어), 통영(음악), 부천(문학), 원주(문학), 진주(공예&민속예술), 김해(공예&민속예술), 강릉(미식) 등 총 12개의 도시가 창의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그 가운데 대구는 2017년 11월 1일 음악창의도시로 지정되었다. 이는 단순히 음악적 역량의 인정이 아니라 도시발전 전략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유네스코의 선택이었다.

◆대구의 탄탄한 음악적 기반

대구는 어떻게 음악창의도시로서 국제적 공인을 받았을까? 이는 단순히 공연시설과 축제가 많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역사, 인프라, 시민참여, 국제적 잠재력 등 여러 측면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결과였다. 유네스코는 창의도시 지정에 있어 단순히 인프라 규모나 공연 횟수만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도시가 지닌 창의적 잠재력과 이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또한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이 국제교류의 교두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구는 음악적 역사와 현대적 기반, 시민참여와 국제적 잠재력이라는 요소를 균형 있게 갖추고 있었고, 이것이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기준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공연 모습. 대구시 제공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공연 모습. 대구시 제공
대구뮤지컬페스티벌의 공연 모습. 대구시 제공
대구뮤지컬페스티벌의 공연 모습. 대구시 제공

대구의 음악적 기반은 역사적으로 탄탄하다. 대구는 영남문화의 중심이자 대한민국 문화의 거점으로 크고 작은 예술적 족적을 남긴 예향의 도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기의 암울한 시기에도 오히려 예술 르네상스를 이뤄낸 터전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대구는 항상 음악과 함께 호흡해왔다. 이런 역사적 토양 위에서 현대적 인프라가 결합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아시아 대표 오페라축제의 거점이 되었고, 대구콘서트하우스는 세계적 지휘자와 연주자가 찾는 무대로 성장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아시아를 넘어 국제적 규모의 뮤지컬축제로 자리 잡으며 뮤지컬산업과 인재 교류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피아노의 고향으로 알려진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에서는 매년 '100대 피아노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또 대구종합예술제, 국제재즈페스티벌, 포크페스티벌, 대구국악제, 인디뮤직페스티벌, 공간울림 여름음악제(SIMF) 등 다양한 장르별 음악축제가 민관 할 것 없이 다양한 영역에서 개최되고 있다.

대규모 공연장 외에도 여러 곳에서 의미 있는 음악활동을 펼치는 중소규모의 공연장도 많다. 김광석거리, 대구아트웨이, 아트센터 달, 공간울림, 우봉아트홀, 소극장 함세상 등이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대구의 소공연장, 오페라단, 음악단체 등이 자생적으로 형성한 공연테마 거리인 '대명공연거리'도 있다. 이곳에서는 음악 관련 단체 52개소를 포함하여 약 100여 개의 예술단체와 약 600여 명의 예술인이 활동 중이다. 시민 차원에서도 음악은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 아마추어 합창단, 청소년 오케스트라, 생활음악 동호회 등이 도심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음악을 도시의 일상으로 만들고 있다.

아울러 지역 고유의 문화자산을 집대성하여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대구문화예술 아카이브'도 있다. 음악을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 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면서 다양한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문화예술 정보를 보다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대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음악 발전을 위한 성숙된 예술적 분위기와 여건을 갖춰 오면서 글로벌 창의도시로 성장해 온 것이다.

대구문화예술 아카이브
대구문화예술 아카이브 '열린 수장고'. 대구시 제공

◆'창의적 인력' 위한 협치 모델

대구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정 이후 글로벌 창의도시들과 국제문화교류 프로젝트를 다채롭게 추진하고 있으며, 아시아 차원에서는 허브 역할을 맡아 문화교류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문 공연시설과 글로벌 음악축제를 활용한 교류 다변화를 추구하고, 청년예술인의 해외 진출 지원 등으로 음악창의도시의 위상을 높이는 시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2018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글로벌포럼'과 국제교류 협정 등은 대구의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보다 더 필요한 것은 창의적 인력을 발굴, 양성하면서 시민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창의도시 사업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이다. 창의적 인력 없이 문화도시가 있을 수 없으므로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이 창의도시 성장을 위한 전략적 지점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아울러 창의도시 관련 이슈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시민과 공감할 수 있는 연결고리 찾기에도 집중해야 한다. 창의도시 활동은 지자체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술가, 시민사회,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협치 모델이 절실하다.

21세기는 모방이 아닌 창의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와 문화로 승부하는 시대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 레벨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는 창의도시를 도시의 발전전략 내지는 지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은 물론 국내 많은 지자체에서도 문화를 통한 도시의 발전과 경제적 부를 창출하기 위해 창의적 문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유네스코 창의도시 대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문화와 창의성을 매개로 한 지속가능 도시발전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이는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국제사회 속에서 대구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다. 이때, 유네스코 창의도시 사업은 일반적 개발 사업이나 재생 사업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역의 공간적 개발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보유한 문화적 자원을 발굴·발전시키고 이를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다채롭게 활용할 줄 아는 전략 구사가 필요하다. 문화교류 다변화·다각화를 통해 창의도시 교류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하면서 대구의 창의적 역량을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명예이자 책임이다. 그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문화와 발전의 조화를 이룬 도시의 미래가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