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석민] 박쥐 외교

입력 2025-11-2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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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 선임논설위원
석민 선임논설위원

이솝 우화의 '박쥐' 이야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들짐승과 날짐승이 두 편으로 갈라져 갈등을 빚을 때, '날개 달린 포유류' 박쥐는 실용주의적(實用主義的) 꾀를 냈다. 새무리 앞에선 날개를 내세워 '우리 편'이라고 파이팅을 외치고, 들짐승들에겐 "나는 조류가 아니라 포유류"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쥐의 현실적 실용주의는 들짐승과 날짐승 모두로부터 외면받는 외톨이가 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 후 박쥐는 낮에는 동굴에 숨어 지내다가,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겨우 활동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박쥐 외교'의 정수(精髓)는 인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도가 그동안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중립 외교(中立外交)라는 명분으로 오락가락하며 실리를 챙겨온 탓이다. 그런 인도의 모디 총리가 G20(주요 20국)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악수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문제는 그 사진 한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외롭게 또는 고독하게 홀로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 담겼다는 사실이다. 모디 총리는 왜 많고 많은 사진 중에 하필 이런 사진을 골랐을까 하는 의구심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생각해 보면 고의성(故意性)이 아주 짙다. 모디 총리는 바로 옆에서 말을 걸려는 이 대통령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건너뛰고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와만 대화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또 메르츠 독일 총리와 악수하는 사진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독 정상회담 때, 메르츠 총리는 "대한민국의 대(對)중국 인식에 대해 궁금하다"고 질문했지만 이 대통령은 '독일 통일' 하면서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했다.

메르츠 총리는 정적(政敵)이었던 친중(親中)·친러 성향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달리 보수·우파 성향이 강하다. '유럽의 리틀 트럼프'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중국에 대한 인식'을 질문한 것은 "너, 미국과 우리 편이야 아니면 중국 편이야"라고 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대통령의 동문서답은 "난, 박쥐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친미·친중 관계없이 G20 정상 모두가 이 대통령을 외면하는 듯한 영상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어 보인다. 모디 총리는 "박쥐 외교, 아무나 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