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교학점제 시대, 우리 아이에게 맞는 학교는 어디인가

입력 2025-11-23 11: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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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선택은 3년의 학습 구조 설계하는 중요한 선택
자기 속도로 수업·기록 쌓아가는 환경 만날 수 있어야

정범식 달성고 교사
정범식 달성고 교사

고입설명회에서 학부모와 마주 앉으면 예전과 다른 변화를 느낀다. 한때는 "어느 고등학교가 더 좋나요?"가 중심이었다면, 요즘에는 "어디에 가야 우리 아이가 내신을 덜 흔들리게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고민이 먼저 나온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서 고교 선택은 단순히 진학 경로를 고르는 일을 넘어 앞으로 3년의 학습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지 결정하는 선택이 됐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맞춰 과목을 고르고, 정해진 기준만큼 학점을 채우면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다. 학교는 다양한 선택·심화 과목을 개설하고, 학생은 2학년 이후 자신에게 맞는 시간표를 만들어 간다. 어떤 교과를 얼마나 깊이 듣고 그 안에서 어떤 성취를 거두었는지가 생활기록부에 남고, 대학은 이 흐름을 통해 학생의 학업 경로와 역량을 읽어 낸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무엇을 선택해 어떻게 공부했는가'가 입시에서 점점 더 중요한 질문이 되는 이유다.

먼저 전국 단위 자율형 사립고(전사고)의 위치는 예전만큼 단순하지 않다. 학점제가 확산되면서 광역 자사고·과학중점고·일반고에서도 다양한 선택·융합 과목을 운영하는 학교가 늘어, 학생부만 놓고 봤을 때 전사고 출신만의 차이가 옅어지는 면이 있다. 여기에 지역인재 전형 자격이 중·고 6년 재학으로 강화되면서 다른 지역 자사고 진학은 의대 등 지역인재 선발을 노리는 학생에게 오히려 불리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상위권 내신을 유지하려는 학생에게는 지역 내 일반고나 광역 자사고가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편 국제고와 외국어고의 위상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두 학교는 언어와 인문·사회 영역에 무게를 둔 교육과정이 뚜렷하다. 어학과 국제·사회 관련 과목이 폭넓게 열리고, 학생부의 과목 조합과 활동 기록만 보아도 어느 정도 관심과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인문계 지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탄탄한 어학 능력과 인문 소양을 갖춘 학생에 대한 대학의 신뢰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흐름도 있다. 국제적 감각이나 어학 역량을 필요로 하는 진로를 희망한다면 이러한 교육과정이 갖는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그렇다고 학교 선택을 특목·자사고냐, 일반고냐 하는 단순한 구도로만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현재 학업 수준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 그리고 성향이다. 전국 단위 상위권이 모인 학교에서 2등급 후반까지 내려가는 것보다 지역 일반고에서 1등급을 꾸준히 지키는 편이 유리한 전형이 여전히 많다. 특히 메디컬 계열처럼 내신 영향력이 큰 전형에서는 이 한 등급 차이가 합격 여부를 가르기도 한다.

학교 유형이 다양해지고 경계가 흐려지면서 결국 핵심은 한 가지 질문으로 모아진다. "우리 아이가 이 학교에서 3년을 안정적으로 버티고 성장할 수 있을까?"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루틴을 지키며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작은 비교에도 쉽게 흔들리는 학생도 있다. 스트레스에 강한지, 도움을 청할 어른과 친구가 가까이에 있는지 같은 학습 외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환경이 맞지 않으면 실력보다 먼저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를 현장에서 자주 보게 된다.

고교학점제는 '좋은 학교'의 기준을 다시 묻고 있다. 앞으로의 입시는 단순한 내신과 점수 합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꿈을 품고, 그 꿈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 3년 동안 얼마나 꾸준히 공부해 왔는지가 학생부라는 기록 속에 조금씩 드러난다. 제도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이 틀 안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수업과 기록을 차분히 쌓아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나는 일이다.

연금술사들이 금을 찾아 오랜 시간 불을 지키며 실험을 거듭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남은 것은 결과 그 자체보다 그 불 앞에서 마음을 다듬고 자신을 단련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고입을 앞둔 아이에게도 중요한 것은 비슷하다. 어느 학교에 가느냐는 이름보다, 자기 속도로 수업과 기록을 차분히 쌓아 가며 3년을 버티고 펴 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만나는 일이 먼저다. 눈에 보이는 점수 한 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오며 단단해진 마음이 결국 아이의 힘이 된다. 그 선택은 결국 그 빛이 서서히 드러날 수 있는 자리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정범식·대구 달서고 교사(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