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정부는 지난 수년간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소득 불평등 완화라는 목적을 앞세워 노동시장의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최저임금 수준을 꾸준히 인상하고 있다. 그러나 의도만 좋은 규제가 늘 그렇듯이 제도의 좋은 면만 기대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한 탓에 정책 목표와는 상반된 결과를 낳고 있다.
우선, 정부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업체가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아니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큰 기업들은 이 같은 규제를 고려할 필요도 없이 충분한 임금을 주고 있지만 자본이 적은 기업들은 형편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계속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아예 채용을 포기하게 된다. 실제로 요식업과 숙박업 같은 영세 업종일수록 고용 감소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 일하던 직원을 해고하고, 급기야 공장을 닫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나마 낮은 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던 근로자들을 아예 실업 상태로 내몰고 있다.
둘째, 최저임금제는 전형적인 명령통제형 가격 규제이다.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은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되기 때문에 노동시장을 왜곡하고 공급 과잉을 초래한다. 즉, 정부가 설정한 임금수준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늘고, 고용하려는 수요는 줄게 된다. 그 결과 고용주는 높게 설정된 임금에 맞는 더 좋은 조건의 직원을 고용하려고 한다. 경쟁에서 밀린 이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제가 원래 목표로 했던 저숙련 노동자들이다. 이를 두고 '규제의 역설'이라고 한다. 규제를 통해 보호하려던 이들을 오히려 위험한 상태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셋째, 최저임금의 인상은 시장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경영에 필요한 비용과 기대 수익을 염두하고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금의 하한선을 정하면 주어진 인건비 총액을 맞추기 위해 편법 아닌 편법을 고려하게 된다. 최근 식당들이 쉬는 시간(break time)을 늘리고, 마트나 카페에서 근로 시간을 나누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인건비를 맞추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의 강제적인 규제로 고용주는 충원은커녕 있는 직원도 내보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시간당 임금은 올랐지만 총 근무 시간은 줄어들어 근로자들 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해고된 이들의 업무는 남아있는 이들에게 분배되어 오히려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말았다.
미국의 경제학자 머레이 로스바드(Murray Rothbard)는 현실 그대로 바라보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 "최저임금제는 결국 강제실업일 뿐이다"라고 일갈했다. 이는 최저임금제가 저임금 노동자를 노동시장에서 쫓아내 더 이상 임금을 받지 못하는 실업 상태로 내몬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제가 도입되면서 누구든 최저시급 이하로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며 범죄행위가 되었다. 말하자면,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상당수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임금 계약이 불법화되었다는 것이다. '범법자'로 몰리는 것을 피하려는 사용자가 많아지면 규제로 인한 실업은 불가피하게 늘어난다. 실제로 학교 앞 커피숍이 하나씩 무인카페로 바뀌고 있고, 무인 아이스크림판매점과 무인문구점, 편의점 무인 이용시간 등이 늘어가고 있다. 특정 분야를 제외하면 시장수요는 감소하는 추세이며, 세계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최저임금제는 상대적으로 단순노동 중심인 저임금 노동시장의 일자리 위기를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결국 0원이다"고 지적한 토마스 소웰(Thomas Sowell)의 통찰은 틀리지 않았다. 정부가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것이라고 최저임금을 인상해도 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최저임금은 결국 무일푼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