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팩트시트'로 묶은 한미 협력…이재명 "힘의 외교 아닌 상식의 합의"

입력 2025-11-14 11:12:13 수정 2025-11-14 11: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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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추진잠수함 공식 승인…미 해군 함정, 한국 조선소서 건조 추진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관세·안보 협상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최종 합의를 발표한 후 퇴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연합뉴스

수개월간 이어진 한미 간 통상 및 안보 협의가 공식 문서화되며 막을 내렸다.

양국은 주요 합의사항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를 확정하고, 이를 공동설명자료 형식으로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직접 브리핑을 열고 구체적인 협상 경과와 주요 내용을 국민 앞에 밝혔다.

이번 공동설명자료는 지난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한 당시 양국 정상이 논의한 핵심 사안을 포괄한 것으로, 전략 산업 투자, 관세 조정, 외환시장 안정, 군사·안보 공조, 조선·원자력 협력 등 총 7개 분야에 걸쳐 구체적 합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정·번영을 견인하는 중심축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며, 이를 현대화하고 실질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이정표로 조인트 팩트시트를 제시했다.

한미 통상·투자 구조 전환…3500억 달러 대규모 투자 명문화

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조선 산업에 1,500억 달러 규모의 '승인 투자(Approved Investment)'를 확정했으며,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를 기반으로 2,000억 달러 추가 투자도 추진하기로 했다. 양국은 이 투자들이 에너지, 반도체, 의약품, 핵심광물, AI, 양자컴퓨팅 등 다양한 전략 분야에서 경제·안보 이익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은 2025년 4월 2일부터 발효되는 행정명령 제14257호에 따라, 한국산 제품에 대해 한미 FTA 또는 최혜국대우(MFN) 세율 중 높은 쪽, 또는 15%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자동차, 부품, 목재 제품 등에는 232조 관세가 15%로 인하되며, 의약품과 반도체에 대해서는 이 세율을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는 점도 명시됐다. 특히 반도체와 관련해서는, 향후 미국이 체결할 다른 국가와의 협정 조건보다 한국에 불리하지 않은 관세 조건을 제공하기로 했다.

외환시장 안정 장치 마련…"연간 200억 달러 초과 조달 요구 없다"

양국은 외환시장 안정에 관한 MOU 이행 과정에서 시장 불안을 초래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에 대해 어느 해든 연간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미화 조달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으며, 한국은 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대체 수단을 활용하여 환율 영향 최소화에 노력하기로 했다.

만약 시장에 불규칙한 변동이 예상될 경우, 한국은 조달 시점과 금액의 조정을 요청할 수 있으며, 미국은 이를 성실히 검토하기로 했다.

전방위 산업·상업 협력…대한항공 103대 보잉 항공기 구매 포함

한미 양국은 민간 부문과의 연계 강화를 위해 대한항공이 103대의 GE 에어로스페이스 엔진 장착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기로 한 36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환영했다. 이 항공기 구매는 보잉 737 MAX, 787 드림라이너, 777X 기종을 포함하며, 대한항공의 2025년 총 보잉 주문 수량은 150대를 넘길 전망이다.

또한 양국은 미국 중소기업의 대(對)한국 수출을 촉진하는 연례 전시회 'Buy America in Seoul' 구상에 합의했으며, 이를 통해 양국 간 상업적 신뢰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규제 장벽 해소…자동차·디지털·농산물 분야 집중 조율

상호무역 촉진을 위한 구체적 이행 계획도 포함됐다. 한국은 연간 5만 대로 제한된 미국산 자동차 수입 상한을 폐지하고, 배출가스 인증 절차에서 미국 측 서류 외 추가 제출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농산물 교역에 있어서는 미국산 농업 생명공학 제품의 승인 절차 개선, 신청 지연 해소, 미국산 원예작물 요청을 전담하는 'U.S. Desk' 설치, 특정 명칭을 사용하는 미국산 육류·치즈의 시장 접근 유지 등이 포함됐다.

또한 디지털 서비스와 관련해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고, 개인정보·위치정보·재보험 관련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보장하기로 했다. WTO 전자 전송물에 대한 관세 부과 금지 조치의 영구화도 공동 지지하기로 했다.

한국 핵잠수함 건조 공식 승인…미 함정 한국서 제작 추진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안보 부문이다.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공식 승인하고, 이를 위한 연료 조달 등 기술·제도 요건에 대해 양국이 협력하기로 했다.

양국은 미국 함정을 한국 조선소에서 직접 건조하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이를 위해 조선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유지·보수, 인력 양성, 조선소 현대화, 공급망 회복력 등 다양한 과제를 추진한다.

또한,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한국의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추진을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주한미군 주둔 재확인…한국 GDP 3.5% 국방비 증액 계획 공유

미국은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과 확장억제를 위한 핵 포함 모든 수단의 사용을 재확인했으며, 핵협의그룹(NCG)을 통한 공조 강화에도 뜻을 모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이 가능한 한 조속히 국방비 지출을 GDP의 3.5%로 증액할 계획임을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환영했다. 한국은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에 250억 달러를 지출하고, 주한미군을 위한 330억 달러 규모의 지원도 제공할 방침이다.

또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 한미 양국은 동맹 차원의 협력을 지속하며, 첨단 무기 체계 확보와 방산 협력을 포함한 재래식 전력 강화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사이버, 우주, 군사 AI 분야 협력 확대도 이번 합의에 포함됐다.

대북공조 및 역내 안정…대만해협·자유항행 원칙도 명문화

양 정상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2018년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 이행 의지를 명문화했다. 북한이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대화 테이블로 복귀할 것을 공동 촉구했다.

일본과의 3자 협력 확대, 대만해협 평화 유지, 항행·상공비행의 자유 수호, 국제해양법 존중 등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 안정화 방안도 조인트 팩트시트에 포함됐다.

한미 양국은 이번 합의 내용을 올해 안에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공식 채택할 예정이며, 향후 분야별 실무 회의를 통해 이행을 점검하고 보완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