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역사와 전통의 가치, 생각하는 계기 됐으면"…한옥카페 묘운 대표 박상혁 씨

입력 2025-11-12 14:35:16 수정 2025-11-12 14: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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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한옥카페 묘운 대표가 별채인 충효당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박상혁 한옥카페 묘운 대표가 별채인 충효당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대구 외곽의 유서 깊은 한 한옥마을. 쇠락해가던 이 시골마을에 한 청년이 들어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역사에 관심 있는 소수의 답사객 정도가 오가던 이곳은, 연간 13만명이 찾는 인기 있는 장소로 변모했다.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 이야기다.

묘골마을은 사육신(死六臣) 중 한 명인 충정공 박팽년 선생의 후손이 정착해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단종 복위를 주도한 혐의로 일가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비극을 맞는다. 하지만 그의 차남 박순의 유복자인 박비가 천운으로 살아남아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을 남길 수 있었다. 박순의 부인 이씨의 친정이던 묘골에서 후손들은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왔으며, 후손이 없는 다른 사육신들의 제사를 함께 지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에 있는 육신사(六臣祠)는 이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곳은 5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집성촌답게 유명인도 여럿 배출했다. 9선 국회의원이자 국회의장을 3차례나 지낸 박준규 의장,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아내 박두을 여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곳도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도시로 이주하는 이들이 늘면서 마을은 점차 쇠락해갔다.

최근 이곳에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한옥카페가 들어서며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박팽년 선생의 22세손인 박상혁(35) 씨가 운영하는 '묘운'이다. 겉모습만 한옥 구조를 따른 게 아니라 전통을 보존하며 현대적 가치를 더한다는 신념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점점 사라져 가는 집성촌의 미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10일 한옥카페 묘운 내 충효당에서 박상혁 씨를 만나 묘골마을과 한옥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상혁 한옥카페 묘운 대표가 별채인 충효당에서 묘골마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박상혁 한옥카페 묘운 대표가 별채인 충효당에서 묘골마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묘골마을에서 나고 자랐나.

▶그건 아니다. 아버지와 선대 어른들의 고향이긴 하지만 제가 태어난 곳은 달성군 화원이다. 이후 달서구 쪽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엔 서울에서 생활했다.

서울은 연극을 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예체능 쪽에 관심이 많았다. 연극뿐만 아니라 성악도 했었고 무용도 했었다.

그렇다고 연극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가선 연기학원을 다녔다. 그곳 선생님께서 20대에 누릴 수 있는 대학을 다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조언에 연기 전공으로 한 학기 정도 대학도 다녔다. 그렇게 3년 정도 연극을 하다 입대했고, 군 생활을 마친 뒤엔 몇몇 음식점 사업을 했다. 다 잘된 건 아니었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무언가 잘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에서 대구로 내려오게 됐다. 서른한 살 때인 2021년 9월의 일이다.

-대구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

▶2020년쯤 아버지 몸이 많이 편찮으셨다. 앞서 누나 두 명도 제가 군 생활을 할 때 동시에 암 진단을 받았다. 이렇게 가족들이 아프다보니 시간이 얼마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보낸 생활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행복했지만 이 상황에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렇더라도 오가는 이의 발길이 거의 없는 도심 외곽 묘골마을에서 카페를 열기로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카페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 건강 문제로 대구와 서울을 자주 오가던 2020년 무렵, 대구로 내려온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했고, 지금 저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충효당이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

충효당은 박팽년 선생의 7세손으로 금산군수를 지낸 박숭고 선생이 별당으로 지어 청년들에게 예와 궁도, 마술(馬術) 등을 가르쳤던 곳이다. 제가 5살이던 30년 전 아버지께서 마을 안쪽 외진 곳에 있던 이 건물을 지금의 자리로 이축해 별장처럼 활용했다.

주말이면 가족들은 이곳을 찾아 시간을 보냈는데, 마을을 방문하신 분들이 이곳이 사유지란 걸 모르고 담장 안으로 들어오시는 일이 잦았다. 가끔씩 방문객들이 물 한 잔을 청하시면 어머니는 음료수나 물을 내어드렸다. 사실 이곳은 슈퍼마켓 하나 없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물 한 잔 마실 곳도, 앉아서 잠시 쉴 곳도 없다. 방문객들은 늘 이런 불편함을 호소했고, 어머니는 이 부분을 참 아쉬워했다.

이런 이야기를 다시 듣다보니 저희 마을을 찾아주신 고마운 분들이 따뜻한 차 한 잔 하며 잠시 쉬어갈 공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것이 묘운의 시작점이었다. 그렇게 충효당 마당 한편에 마련한 공간이 한옥카페 묘운이다.

묘운이라는 이름도 묘골마을의 구름이란 뜻이다. 옛날 시골 어른들이 일을 하다 나무그늘에서 쉬듯 방문객들이 묘골마을 구름 아래에서 편하게 쉬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한옥카페 묘운 전경. 김도훈 기자
한옥카페 묘운 전경. 김도훈 기자

-육신사 옆 보물로 지정된 태고정(太古亭)이란 옛 건물이 인근에 있다. 카페 건물을 신축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사실 이 마을은 문화재 보호구역에 해당돼 많은 제약이 따른다. 카페 건물을 신축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풀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았다. 건물의 크기와 형태는 물론 위치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제약은 꼭 필요하다는 게 개인적 견해다. 무분별하게 마을이 개발된다면 묘골마을의 가치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묘운의 특별함은 뭔가.

▶한옥카페는 수없이 많다. 대형 카페도 넘쳐난다. 그렇기에 이곳에 묘운을 열며 전통의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한식의 요소를 더한 디저트와 브런치, 음료 메뉴를 선보이는 식이다. 맛은 물론 모양새에도 감탄할 수 있도록 한식 명인과 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메뉴를 개발했다.

전통 회화, 서예, 공예 분야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공간을 꾸민 점도 특별함이 될 것 같다. 지금 앉아있는 방석이며 테이블 조명까지 이 공간을 위해 제작한 것이다. 여기에다 공예작가의 다양한 작품과 집안이 소유한 유물을 함께 매장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못지않게 켜켜이 쌓인 우리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상혁 한옥카페 묘운 대표가 별채인 충효당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박상혁 한옥카페 묘운 대표가 별채인 충효당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카페를 연 이후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사실 정확한 집계는 어렵다. 다만 동네 어른들 말씀으로는 카페를 열기 전엔 어림잡아 연간 방문객이 3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2022년 12월 31일 카페를 오픈하고 2023년 한 해 동안 음료가 나간 수량을 집계해보니 13만 잔 정도였다. 한 사람이 1잔을 주문했다고 보면 13만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카페만 이용한 분도 있을 테고, 마을만 둘러본 분들도 계시겠지만 방문객이 많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새로 생긴 카페가 아니다보니 이젠 방문객이 줄 법도 한데,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매년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뿌듯함도 크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의 애정이 없었다면 저 혼자만으론 할 수 없었을 일이다. 어른들께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육신사를 비롯해 사적지 곳곳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신다.

-이곳에서 더 펼치고 싶은 꿈이 있나.

▶카페를 처음 구상하고 '묘운'이란 브랜드를 만들 때 생각한 게 있다. 이곳에 있는 한옥을 활용해 이 마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식사도 하고 여유가 된다면 하룻밤을 묵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다.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카페 건물 신축 때처럼 풀어야 할 게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의도로 어떤 공간으로 운영하겠다라고 설득할 수만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좀 더 알고, 한옥의 아름다움과 전통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