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每日來日] 민주-평화-통일의 길고 험한 여정, 정말 끝내고 싶나?

입력 2025-11-18 15:49:08 수정 2025-11-18 16:33:39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얼마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임명장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권유해서 한 번 받았다가 지난 정권에서 건너뛰고 이번이 두 번째다. 서울의 스위스그랜드호텔로 오라고 해서 가 보았더니, 세상에 40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속에서도 얼마나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지, 서로 반갑게 부딪히고 인사하고 사진 찍느라고 바빴다.

민주화운동, 평화운동, 통일운동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모여 있는 듯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방용승 선생이 사무처장이 되어 반가웠다. 몇 년 전 그가 전북겨레하나 모임에 나를 강사로 초청하여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경제과학분과에 배정을 받았다. 포스텍(포항공대) 교수라는 직함 때문에 과학 분야로 배정해 놓은 듯했다. 이 분과만 해도 50여 명이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제대로 된 어젠다를 두고 의논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 안에서 또 핵심 소위원회를 만든다고 한다. 청년분과를 두어 새 술을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도 보이나 전반적으로 이 조직은 노회한 조직임을 알 수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어용단체로 시작한 모임이니 환골탈태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각 지방 지역협의회와 해외동포 국가별 협의회에 속한 자문위원단까지 포함하여 전체 2만2천 명이나 되는 거대 조직에 서로 들어가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도층이나 자문위원들이 좌우로 대립하며 갈등도 이만저만 심한 것이 아닌 듯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조직 내에서의 민주화, 평화연대 그리고 하나됨이 더욱 시급한 것 같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해찬 수석 부의장께서 몸이 불편하신 가운데 부축을 받아가며 등단하여 책상 앞에 앉아서 인사 말씀을 하는 모습이었다.

민주화에 공로가 크고 존중받아 마땅한 분이지만, 어째서 거동조차 힘든 분이 이 자리를 또 맡아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이해찬 전 총리의 삶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다. 수많은 이해찬 키즈를 만들어 내어 역대 민주 정부마다 실세 역할을 감당해 온 정치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혜의 왕 솔로몬이 쓴 성경의 전도서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하면서, 우리 인생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물러갈 때는 물러날 줄 알아야 하고, 거동하기 힘든 형편이라면 사양할 줄 알아야 한다. 행여나 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옛 계파 동료들끼리 서로 한자리씩 나누어 가지는 그런 행정 놀음을 해서는 안 된다.

진정 우리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3대 강령, 민주-평화-통일을 원한다면 말이다. 잊었는가? 어렵게 얻은 해방 공간에서 친미·친일파들이 득세하면서 반민특위를 무너뜨리고 우리는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다 잃었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을 80년간 해 오고 있는 중이다. 반민주 반평화 반통일 세력이 일으킨 내란 정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신 차려야 한다.

1970년대 초 유행했던 비틀즈의 팝송 중에 '길고 굴곡진 길'(Long and Winding Road)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가 통과해 온 지난 80년 파란의 근현대사 속에서 피 흘리며 투쟁하고 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면서 걸어온 민주-평화-통일을 향한 그 지난한 길이 바로 그랬다.

평양을 오갈 때, 시내에 가득 찬 '하나'라는 간판들, '하나정보통신' '하나음악원', 그리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표어와 포스터 모자, 심지어 '하나소주'까지, '하나'로 도배해 놓은 그 도시를 바라보며 아~ 이들은 정말 통일에 진심이었음을 알았다.

데리고 들어간 초등학교 3학년 막내딸 정하나가 그 간판들 때문에 눌리고 어른들에게 놀림감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토록 통일지상주의로 허리띠 졸라매고 통일만 외치던 그들도 지난 윤석열 정부 시절엔 진절머리가 나도록 화가 나서 더 이상 그 길을 포기한 듯하다.

그래 너희가 정 그토록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우리 이제 그만 하자. 각자 적으로 따로 살자. 우리도 통일은 이제 잊고 싹 지우고 살아갈게. 이렇게 나온 것이다.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고 싶어하는 주변 국가와 국내에 뿌리내린 친일 친미 분단 세력이 원하는 대로 되어 버린 것이다. 과연 이렇게 끝내도 좋은가?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제발 민주-평화-통일의 최전선에도 새 물결이 들어오게 하라. 새 술은 새 부대에, 그래야 진정한 끝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