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연극리뷰] 죽음∙상실∙망각∙기억∙욕망∙애도 중 <당신이 잃어버린 것> "우연한 사고와 죽음, 상실과 이중적 욕망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

입력 2025-11-0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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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창작 집단'독'의 <당신이 잃어버린 것>(극단 냇돌, 심영민 연출)은"우연한 사고로 인한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다섯 작품의 에피소드로 엮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연한 죽음으로 인한 상실, 망각, 기억, 욕망에 관한 연극이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는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수많은 참사와 죽음을 응시하고 있다. 죽음과 애도의 방식에서 서로 차이를 두면서도, 현재 우리가'사회적 죽음'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는 작품이다. 죽음∙상실∙망각∙기억∙욕망∙애도 중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우연한 사고와 죽음, 상실과 이중적 욕망에 관한 유쾌한 연극 이야기"이다.

◇ 죽음, 상실, 망각, 기억, 욕망, 애도 중 <당신이 잃어버린 것>

이 작품에서 공통으로 설정되는 것들은, 죽음의 기일이 크리스마스 다음 날(12월 26일)이라는 것과 크리스마스트리가 파편화된 에피소드 장면 곳곳에 연속적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특정 사건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어 온 수많은 참사와 죽음들을 호출한다. 특정 개인의 죽음이나 비극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이미 대한민국 사회에서 충분히 마주할 수 있었던 과거와 현재의 사고와 죽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우연한 사고와 죽음으로 상실감에 빠진 사람, 한 노모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지 않는 경찰관(과학수사대), 이전 여자친구의 기일만 되면 애도의 꽃다발을 사 들고 나타나면서도 신생아 초음파 사진을 간직한 채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 남편의 추락사에도 불륜을 지속하다가 오히려 남편의 죽음 이후 두통이 씻은 듯 사라진 여자, 중절 수술 이후에도 허기와 식욕이 더 중요한 20대 커플, 아들의 죽음을 동화(童話)로 기억하고자 하는 작가, 아들의 죽음에도 '먹방'에 열중하는 손님을 바라보며 파스타를 만들어야 하는 셰프 남편, 그리고 단 5분 차이로 집단사고에서 살아남은 택시 운전사 등이 등장한다.

각 에피소드에는 여러 유형의 죽음, 그 죽음의 목격자들, 죽음과 사고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 죽음과 사고를 응시하는 시선들이 병렬적으로 묶여 있다. 우리 각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충격적인 사회 참사와 죽음 앞에서 크게 애도하는 한편,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즐기기도 하고, 사랑의 욕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죽은 자의 곁에서 태연하게 잡담할 수도 있다. 기일 전날까지 과음하다가 정작 당일에는 장중하게 애도하기도 한다. 인간의 복잡한 욕망과 일상은 이처럼 죽음을 깨뜨리고, 때로는 뭉개 버린다. 애도의 꽃다발은 슬픔이 사라진 채 단지 액세서리로 남기도 한다.

그렇게 죽음은 서서히 잊혀지고, 우리는 현란한 수사의 언어로만 죽음을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에서, 죽음과 상실, 망각, 기억, 욕망, 애도 중 무엇이 남아 있는가. 연극은 그 말을 향해, 죽음처럼 파편화되어 있는 에피소드를 삶의 방식으로 묶는다.

심영민 연출은 "사고(죽음)의 기억에서 다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에피소드화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가로 5미터, 세로 3미터 정도의 작은 무대는 큐빅 박스 10여 개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택시, 카페, 도로, 언덕, 실내, 꽃집 등으로 무대가 전환되며 장면을 전경화 한다. 큐빅을 활용해 에피소드를 교차시키는 연출 방식은 매끄럽고, 에피소드를 배우들이 극으로 엮어내는 연기가 작품의 핵(核) 이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 우연한 사고와 상실, 살아야 하는 욕망들

다섯 편의 에피소드는 죽음과 죽음을 마주한 극 중 인물들의 상실 사이에서 '살려고 하는, 살아야 하는 욕망'들이 교차된다. 우연한 사고와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목격하는 인간들로 무대는 채워지고, 큐빅은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예고하듯 극 중 인물이 마치 우연한 사고로 속도를 내는 듯한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 <두통>(고귀재 작 / 안근후·김설·이기현)은 한 70대 노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다룬다. 한 노모의 죽음을 계기로, 죽음을 대면하는 균열을 드러낸다. 현장감식반의 건조한 직무 언어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죽음의 진실'이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자들의 욕망과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의 균열이다. 무대는 살인사건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과학수사대가 출동하고, 큐빅은 부검실이자 노모의 시신이 된다.

노모의 시신을 앞에 두고 과학수사대 차유진과 이석호의 불륜이 드러나는 장면은 통속소설처럼 태연하지만, <두통>이 향하는 지점은 죽음의 기억과 망각, 그리고 '살아야 하는 욕망'이다. 차유진의 남편 사망 이후 사라진 두통은, 죽음에 대한 애도와 연민의 붕괴이자 인간의 욕망만을 위한 생존의 신호다. 마치 우리가 충격적인 사회적 죽음을 목격하거나 죽음에 연루되어 있음에도, 결국은 망각 속으로 흘러가고 이기적인 욕망만이 남아 삶을 지속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매미 소리는, 한국 사회 차디찬 해수면 밑에 깔린 치유될 수 없는 망자들의 소리이다. 소리는 여전히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이석호의 연기는 안정적이고, 김설의 연기가 에피소드를 끌고 가는 중심축이다. 배우 이기현은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부각하는 조미료 같은 역할이 돋보인다.

플래시를 들고 부검을 진행하는 장면에서 노모 남편의 우연한 죽음과 가족사가 엮이며, 차유진의 남편 또한 죽음으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밝혀낼 수 없는 죽음의 원인 사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죽음의 기억을 연소(燃燒)시키며 살아가려는 추잡하고도 절박한 생존의 욕망이다. 작가는 망각되어 가는 죽음의 기억을 '매미 소리'로 봉인하며, 잊혀질 수 없는 "죽음들에 대하여" 다시 기억하고 마주하도록 만든다. 두 번째 에피소드 <하이웨이>(김태형 작 / 노윤정, 김남희)는 한 동화 작가 아들의 죽음을 다룬다.

아들의 죽음과 그 상실의 기억을 동화로 써 내려가는 작가의 이야기이자, 그 죽음을 기억하는 아들의 마지막 친구였던 소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친구 엄마의 동화에 서평 '안티'를 자처하는 소녀는, 자식의 죽음 이후에도 태연하게 '희망'을 써 내려가는 동화 작가를 향해 막말과 악성 댓글을 퍼붓는다. 달리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이 마주하는 순간, 소녀가 깨닫게 되는 것은 죽음을 향한 '가해'의 책임, 그리고 죽음을 마주하는 아픔과 공감이다. 기억은 때로 위로가 되지만, 동시에 당사자가 되어가는 가해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엄마의 동화 쓰기는 애도의 독백이다. 달리는 차 안,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결국 죽음 앞에서 서로 닮았음을 깨닫는다. 소녀를 연기한 김남희의 연기는 도드라지면서도 생생하고, 그 막말과 상처를 조용히 받아내는 노윤정의 연기 내공은 유연하고 단단하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 "갈까 말까 망설여질 때" 기억해야 할 참사와 죽음

세 번째 에피소드 <갈까 말까 망설일 때>(박춘근 작 / 승의열, 이기현)은 '기억의 장소'로 돌아가는 애도의 행위를 다룬다. 참사로 9명이 사망하고 가해자와 동승자를 포함해 7명이 중경상을 입었던 시청역 역주행 사고사를 연상시키는 집단 사회적 사고의 죽음을 다룬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여자친구가 우연한 사고로 죽게 된 남자는 해마다 기일이 되어버린 12월 26일, 4·19탑 근처의 공원묘지를 찾는다. 술에 만취한 그는 결혼을 앞두고 꽃다발을 들고 택시를 잡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지갑을 꽃집에 두고 왔다며 소동을 피우고, 택시를 타고 공원묘지로 향하면서도 결혼 이야기와 혼전임신 이야기를 쏟아내는 장면들은 아이러니한 죽음의 정서를 만든다. 반전은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택시 기사를 통해 드러난다. 여자친구의 마지막 유언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마지막에는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국 남자 친구(택시 승객) 를 선택했던" 택시 기사의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생전에 여자친구가 "넥타이를 바르게 매주고 싶다"라고 했던 말처럼, 극의 마지막 장면은 택시 기사가 남자의 넥타이를 매어주는 행위로 닿는다. 넥타이를 매어주는 장면은 애도의 형식이 아니라, 기억을 서로에게 돌려주는 의식 행위이다.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의 애도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죽음으로부터 가해적 기억 속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갈까 말까 망설여질 때, 다시 한번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대한민국의 사고와 죽음들을 되새겨보게 하는 시간'으로 읽힌다. 몸의 모든 힘을 빼고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배우 승의열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 망각과 기억 사이

네 번째 에피소드 <크리스마스 특선>(천정완 작 / 승의열·노윤정·이기현·김남희)은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와 아들의 우연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이 에피소드는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상실감은 계속된다는 사실과, 죽음을 마주하는 서로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아들의 죽음 이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아내, 매일 카페를 찾아와 한 남자를 마주하는 남편, 그리고 그사이에 스며드는 한 20대 소녀와 남자의 중절 수술 이후의 사랑 이야기가 포개진다. 아내와 남편의 대화는 서로 다른 죄책감과 고통의 언어이며,'먹는 행위'는 상실을 견디기 위한, 살아 있는 자의 생존의 절박함이다.

청춘 남녀가 중절 수술을 태연하게 꺼내놓기도 하면서, 죽음의 통증으로 살아가는 부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의 청춘 남녀의 대화가 한국 사회의 수많은 참사를 망각하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남편 대사다. "뚱뚱한 남자는 내일도 올 거야. 또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겠지. 그런데 내일은 그 남자의 주문을 거절할 것 같아. 나는 그 사람이 그 음식을 먹고 숨을 몰아쉬면서 땀을 닦는 모습을 이제 보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여보."

여전히 우리는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뚱뚱한 남자처럼 파스타를 즐기면서 죽음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에피소드 <언제나 꽃가게>(김현우 작 / 구혜령·김설)는 연출적으로 <갈까 말까 망설일 때>에서 드러났던'죽음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지갑, 꽃다발, 초음파 사진이라는 사물과 죽음의 기억을 끌어낸다. 꽃집에 놀러 온 옥분(구혜령)이 "야, 그 지갑. 그 남자가 찾던 검정 지갑 아니야?"라고 묻고, 꽃집 주인 애린(김설)은 이렇게 되묻는다. "그 남자 말이야. 크리스마스 다음 날 사고로 죽은 여자친구를 못 잊겠다면서도, 태연하게 지갑에 신생아 초음파 사진을 넣고 다니잖아. 인간은 참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존재 같지 않니?"망각과 기억 사이, 죽음과 욕망 사이, 애도의 진실성과 생활의 일상성은 이렇게 맞물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꽃은 애도의 상징이라기보다, 위선의 증거이다. "우리는 정말,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가."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당신이 잃어버린 것. 극단 넷돌 제공.

◇ 다섯 편의 에피소드 중 <당신이 잃어버린 것>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묶는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수많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참사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바쁜 일상에서 서서히 연소하여 가는 죽음들을, 한 번쯤은 '갈까 말까 망설여질 때' 지갑을 잃어버리더라도,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갈아타고라도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잊혀 가는 삶의 기억과 수많은 희생의 죽음을 환기하게 하는 애도의 방식을 묻는 연극이다. 연극은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다.

배우이면서도 극단 전망의 대표를 지낸 심영민 연출은 인천시립극단에서 정년을 한 뒤, 오히려 연출로 더 바빠진 듯하다. 배우를 아는 연출답게 연출적인 구도와 재료는 최소화하면서도, 배우들의 연기와 큐빅 몇 개로 좁은 공간을 이탈 없이 움직이며, 파편화된 에피소드를 한 편의 이야기처럼 끌어낸다. 배우의 힘으로 무대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연출이자 배우이다. 공연을 본 뒤 심영민 연출은 "배우들 캐스팅하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핵심입니다."라고 말했다. 극단 냇돌은 <당신은 아들을 모른다>로 2026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으로 선정됐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