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 명분" vs "의회 과세권 침해" 공방
미국 연방대법원이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전 세계 100여개국에 부과한 대규모 관세의 적법성을 판단하기 위한 심리에 착수했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경제·외교 정책인 '관세 외교'의 법적 근거를 가릴 중대 분수령으로, 향후 글로벌 통상 질서 전반에 파급을 미칠 전망이다.
◆치열한 법정 공방
이날 워싱턴DC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구두변론은 약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정부 측 대리인과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 및 민주당 성향 12개 주(州)의 변호인단이 각각 나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참석하지 않았으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행정부 핵심 인사들이 방청석에서 심리를 지켜봤다.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한 행위가 대통령의 권한 범위 안에 있는지 여부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수입 규제 권한을 부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4월 미국의 무역적자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선언하며 비상사태를 선포, IEEPA에 따라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한국에는 25%의 관세가 적용됐으나 이후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조건으로 15%로 낮아졌다. 정부 측 대리인 D. 존 사우어 법무차관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다"며 "관세 부과는 국제 협상에서 미국의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원고 측 닐 카티알 변호사는 "관세는 세금이며 헌법상 과세 권한은 의회에만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IEEPA가 언제든, 어느 나라든 대통령이 마음대로 관세를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한 법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지적했다.
앞서 국제무역법원과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를 위법으로 판결했으며, 이번 심리는 최종 판단을 위한 절차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 6명, 진보 3명의 구도로 보수 우위이지만, 보수 대법관 다수도 정부 논리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과세 권한은 전통적으로 의회의 핵심 권한"이라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강조했다.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도 "행정부 권력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 국민이 선출한 의회의 권한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국방 위협이 있다 하더라도 왜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관세를 부과해야 하는가"라며 정부 측에 설명을 요구했다.
반면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닉슨 행정부 시절 유사한 법률에 따라 관세 부과가 허용된 판례를 언급하며 "의회가 대통령에게 비상대응 수단을 부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르면 수주 내 결과
이번 판결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의 무역 구조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판결 시점은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통상 6개월 이상 걸리지만, 이번 사건은 이르면 수주 내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패소할 경우 정부가 환급해야 할 관세 규모는 최대 1조달러(약 1천39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승소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IEEPA를 명분으로 사실상 의회 견제 없이 관세 정책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다만 대법원이 제동을 걸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하더라도, 마음대로 관세를 부과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