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남북9축 고속도로 국가계획 반영 총력… "지도 위의 선 아닌, 사람의 길"

입력 2025-11-05 15:09:18 수정 2025-11-05 1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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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시·군 공동행동 본격화… '교통 3무'해소, 내륙 연결성 회복 승부수
응급 이송·산불 대응·농특산물 판로 개선까지… 생활지표 체감 효과 전면화

오도창 영양군수가 지난달 15일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 기원 연합 퍼포먼스식에서 강원도에서 경북을 연결하는 10개 지자체의 이름이 담김 고속도로 표지판 모양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김영진 기자
오도창 영양군수가 지난달 15일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 기원 연합 퍼포먼스식에서 강원도에서 경북을 연결하는 10개 지자체의 이름이 담김 고속도로 표지판 모양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김영진 기자

"지도 위의 선이 아니라, 사람의 길을 잇는 도로입니다."

지난달 15일 경북 영양군 공설운동장은 1만여 군민의 함성으로 들썩였다. 제55회 영양군민체육대회와 함께 열린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 기원 연합 퍼포먼스'에서 강원·경북지역 10개 시·군 대표단은 운동장 양끝에서 출발해 중앙에서 맞잡은 손을 높이 들었다.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을 기원하며 추진한 모의 표지판 제막과 동시에 외친 "남북9축, 함께 잇는다"는 구호는 선언이었다.

내륙을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어 사람과 시장, 병원과 학교, 일자리와 생활권을 하나로 묶겠다는 약속이었다. 퍼포먼스는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다. 영양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쌓아온 연대의 성과였고 2026~2030년 '제3차 고속도로 건설계획' 반영을 향해 내민 현실적 압박이었다.

◆영양군, 교통 3무(無) 지역의 절박함
영양군의 절박함은 익히 알려졌다. 철도, 고속도로, 왕복 4차로도 없는 '교통 3무(無) 지역'.

출산을 앞둔 산모는 안동·포항의 대형병원을 찾고, 응급환자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야 한다. 농산물은 제값을 받기 어려워 산지 물류비가 단가를 갉아먹고, 젊은 층의 진학·취업 이동은 늘 '먼 길'부터 계산한다. 길의 부재는 곧 선택지의 부재로 이어진다.

그래서 영양군은 남북9축을 '생명선'이라 부른다. 도로 하나가 삶의 구조를 바꾸고, 시간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군민들이 스스로 만든 만인소 서명에는 1만5천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길이 없다는 건, 기회가 없다는 뜻"이라는 현장의 말은 구호가 아니라 통계다.

남북9축 고속도로는 강원 양구에서 인제·홍천·평창·정선·영월을 거쳐 경북 봉화·영양·청송·영천으로 이어지는 약 309.5㎞ 구간이다. 지난 2023년 7월 '추진협의회'가 공식 출범한 뒤 10개 시·군은 공동 건의문 채택, 결의대회, 대국민 캠페인, 중앙정부·국회 방문을 이어왔다.

영양군은 실무의 구심이었다. 지난달 펼쳐진 퍼포먼스 동선 역시 '남북으로 갈라진 일상'이 중앙에서 서로 만나는 장면으로 설계했다. 양구의 부군수와 영양의 군수가 중앙 지점에서 염원기를 맞교환하는 순간, 각 지자체의 명패보다 '주민의 삶이 먼저다'라는 메시지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길을 기다린 시간이 길었기에 퍼포먼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상징을 넘어 사실이길 바라는 기도였다.

영양군민 1만여 명이 영양공설운동장에서는
영양군민 1만여 명이 영양공설운동장에서는 '범군민 총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반영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영양군 제공

◆내륙의 균형, '데이터로 말하는 설득'
이제 필요한 것은 열정의 연대에서 '근거의 연대'로의 진화다. 10개 시·군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 공동 데이터 팩트북이 그 출발점이다.

구급차의 현장 도착·응급의료기관 이송 시간, 산불 초기진압 골든타임 도달률, 중증·분만·외상 의료 접근성 지표, 화물차 운행거리와 회차시간, 농산물·임산물 단가 대비 물류비율, 관광 체류일수와 1인당 소비 등 핵심 지표를 하나의 표준으로 묶어야 한다. 거기에 '노선 대안별 환경·경제성 시나리오'를 병행 제시하면 설득력은 커진다.

생태축을 훼손하지 않는 터널·교량 처리, 산사태·야생동물 이동 경로 등 환경변수와 공사 단계별 투자 압축, 병목구간 선행 개통 같은 현실적 해법을 함께 꺼내는 방식이다. 수도권·해안선 중심의 동서축 구조에 더해 내륙 종단축을 세우자는 국가계획의 방향과 딱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왜 남북9축 고속도로가 조기 건설 돼야 하는가?'에 답할 자료는 이미 현장에 있다. 흩어진 수치를 한 권으로 묶어 보이는 일, 그것이 다음 문을 여는 열쇠다.

특히 영양~청송, 봉화~영양처럼 생활권 핵심 구간의 선(先)개통 시나리오는 기대효과를 조기에 체감하게 만든다. 고속도로만 뚫린다고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IC별 접속도로 정비, 간선버스(BRT)·공영버스 노선 재편, 물류거점·관광안내·안전시설 패키지 등 '생활권 연계형 로컬 도로'가 함께 가야 한다. 중앙정부가 '균형발전'을 말한다면, 지방정부는 '접근성 개선의 설계'를 구체로 보여줄 차례다.

하늘에서 바라본 경북 영양군 도심지와 도로망의 모습. 영양군 제공
하늘에서 바라본 경북 영양군 도심지와 도로망의 모습. 영양군 제공

◆10개 지자체의 꿈… 도로 하나가 바꾸는 삶의 질
영양의 목소리가 강원과 만나는 장면은 상징이 크다. 남북9축은 어느 한 지역의 숙원이 아니다. 소멸위기와 재난상시화, 의료 인력 수도권 편중과 교육·문화 격차 확대라는 지방 전역이 공유한 동시대적 과제의 해법이다.

북쪽 강원 양구의 병영도시, 인제의 국제스포츠, 홍천의 농산업, 평창·정선의 산악관광, 영월의 문화유산과 광산도시 기억, 남쪽 경북 봉화·영양·청송의 산림·농업과 밤하늘, 영천의 첨단부품소재와 물류거점이 직선으로 연결될 때 내륙의 지도가 다르게 보인다.

그 변화는 화물차의 분 단위 이동시간과 환자의 소생 가능성, 수험생의 통학 선택지, 청년의 이직 기회, 부모 세대의 돌봄 동선으로 측정된다. '길'은 경제지표만이 아니라 생활표준의 문제다. 수치화가 어려웠던 지역 체감 격차를 이동시간과 접근성으로 번역하는 일, 그 지극히 구체적인 과제를 우리는 지금 마주하고 있다.

현장의 지역민들의 길에 대한 소망은 이미 행동으로 증명됐다. 범군민 총결의대회, 1만5천여명의 만인소 서명, 중앙정부와 국회에 전달된 공동 건의문, 그리고 10개 시·군이 똑같은 현수막을 들고 같은 구호를 외친 퍼포먼스까지. 이번 달 추진협의회가 예고한 '공동 결의대회'는 연대의 모양을 한 번 더 정교하게 다듬을 자리다.

남북9축 고속도로는 단순히 영양만의 길이 아니다. 도로는 한 번 깔리면 수십 년을 버틴다. 자치단체장의 임기보다 길고, 정치적 유불리보다 무겁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고 더 늦출 수 없다. 산불의 계절이 오기 전, 응급환자의 분 단위 골든타임이 허비되기 전, 농산물의 제값 수확이 또 한 해 미뤄지기 전, 정부는 '사람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길이 멀면 기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남북9축은 단순한 종이 위의 선이 아니라 사람의 생을 잇는 도로"라며 "지금 이 문장에 정부의 결단만 더해지면 된다. 영양이 먼저 움직였고 내륙이 응답했다. 남은 것은 국가가 도장을 찍는 일이다. 그러면 내륙의 지도가 바뀌고 사람의 시간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영양군공설운동장에서 영양군을 비롯한 10개 지자체 단체장과 관계자들이
지난달 15일 영양군공설운동장에서 영양군을 비롯한 10개 지자체 단체장과 관계자들이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을 기원하며 실물 크기로 제작한 가상의 고속도로 표지판을 제막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