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공연계약을 사회계약으로 전환하기

입력 2025-11-06 14: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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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박해남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책]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책]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쎄울, 코리아!" 스위스 바덴바덴에서 날아온 낭보. 우리도 올림픽 개최국가가 되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다고 했다. 올림픽 손님맞이를 앞둔 대한민국은 보여지는 거의 모든 것들을 바꾸려고 했다. 개선과 개량을 통해 세계인에게 한국의 깨끗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지상목표였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모든 부정적 담론을 삼켜버릴 만큼 올림픽은 단군 이래 최대 국가 이벤트였다.

서울올림픽의 사회사적 배경과 준비과정과 이후의 사회 변화까지 탐색한 흥미로운 저작. 계명대학교 박해남 교수의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이다. 책은 우리가 직면한 사회 갈등이 88올림픽이 만든 극장도시로부터 시작했다고 진단하면서, 외국사람 눈에 잘 보여야하는 배우가 되길 자처했던 그 시절의 공연계약을 어떻게 사회계약으로 전환할 것인지 질문한다.

흥미롭게도 박해남은 88체제의 통치전략을 드라마투르기 관점에서 살핀다. 올림픽을 기획 준비 개최하는 과정이 희곡과 연출과 연기로 이어지는 무대 공연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배우가 관객을 의식하듯 개최국 국민은 외국 방문객 눈높이에 맞도록 모든 걸 개조해야 했으니, 타자의 시선에 맞추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서울을 극장도시로 만들어버렸다는 것. 빈민을 외곽으로 몰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다큐멘터리의 전설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 역시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빈민을 양산한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평창 행 고속열차에서 보인다는 이유로 용산역 재개발지구 앞에 가림막을 설치한 것은, 민주정부에서조차 공연계약은 사회계약으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도시개발의 역사는 올림픽 앞에서 정점을 찍는다. 저자는 서울올림픽은 깨끗하게 정비된 극장도시 서울을 만들었고, 서울은 도시적 삶의 모델이 됐다. 고 적고 있다. 서울의 생활방식이 한국사회의 기준이 된 것은 물론이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한강의 기적으로 바꾸고 올림픽까지 치른 나라의 시민이라는 자의식 혹은 자부심도 한몫했을 터. 심지어 2002월드컵 때 보여준 시민정신 즉, 거리 응원 후 자발적인 청소와 정돈. 다툼과 큰 사건 사고 없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실은 '세계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시민들을 억압했던 시선의 주체는 이제 군인에서 세계 또는 외국인으로 넘어갔다"고 꼬집는다. 공연계약이 지속되는 한 우리사회의 불평등과 불합리와 부조리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예리한 지적이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념 대립과 사회 갈등이 극한에 다르고 불평등이 심해지고 체념과 방관 풍조가 만연한 건 88체제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진단은 적확하다. 한국사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을 마무리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2024년 겨울부터 한국사회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사회계약이 아닌 공연계약에 기초한 88년 체제가 사회적 갈등과 분열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반증한다. (중략) 하지만 88년 체제의 한계야말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과제다. 공연계약을 어떻게 사회계약으로 전환할 것인가. 관객석에 앉아 무대 위의 배우를 평가하는 리바이어던을 어떻게 사회 구성원의 삶의 무대를 지탱하는 리바이어던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등의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329쪽)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