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關稅協商) '타결'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 만에 또 양국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나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7월 말 '한미 관세 협상 합의' 소식에 이어, 8월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던 대통령실 대변인의 말에 이은 세 번째 엇박자이다. 한미 정상들 간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공동성명이나 공동기자회견, 공동팩트시트 하나 없는 협상이 낳은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과연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기는 한 것인지 의문(疑問)이 든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30일(현지시간) 엑스(X)에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 "한국은 자기 시장을 100% 완전히 개방하는 데도 동의했다"고 했다. 전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반도체 관세와 관련, "대만에 대비해서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는 발언 및 "민감성이 높은 쌀, 소고기 등을 포함해 농업 분야에서 추가 시장 개방을 철저히 방어했다"고 한 것과 엇갈리는 주장이다.
투자처를 두고도 엇갈린 주장을 내놨다. 한국 측은 한국 기업이 경쟁력 있는 반도체, 이차전지, 원전, 바이오 등에 활용(活用)한다는 구상을 밝힌 반면, 러트닉 장관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투자를 기정사실화했다. 또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미국과는 끊임없이 협상해야 한다. MOU(양해각서) 문안을 며칠 안에 마무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순 없을 것 같다"고 언론에 밝혔다. 관세 협상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진행 중인 협상이 어떻게 '협상 타결'이 될 수 있는지 당혹스럽다.
게다가 대통령실이 '3천500억달러 투자'에 대한 설명에만 집중한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폭스뉴스는 '한국이 9천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投資)하기로 했다'고 밝혀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3천500억달러 이외에, 한국 대기업들이 별도로 미국에 6천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일 경우 이재명 정부는 일본·EU(유럽연합) 등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불리(不利)한 협상을 한 셈이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5천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EU는 민간 중심으로 6천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반면에, 한국은 정부 주도로 3천500억달러를 대미(對美) 투자하는 것에 더해 민간 기업이 6천억달러를 또 투자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EU의 경제 규모 격차에 비춰 봐도 말이 안 되는 협상이다. 한국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주요 대기업이 모조리 미국에 투자를 집중(集中)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대체 뭘 먹고 살라는 말이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악마(惡魔)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 기술로 건조하는 것과, 미국의 한국 기업에서 미국인이 미국 기술로 건조해 주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숨어 있는 디테일이 대체 무엇인지 정부는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밝히고 설명해야 할 의무(義務)가 있다. 협상 결과에 따른 모든 부담은 결국 국민이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