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부터 최중증 자폐 진단, 20년이 흘러도 정신연령 4세에 머물러
하루에 반나절 이상 스마트폰에 집착…2년새 체중 60㎏→102㎏로 늘면서 가족도 제어 어려워
통제 없을 땐 홀로 버스 정류장으로 떠나면서 실종되는 경우도 적잖아
지난 9월 22일 오전 9시 30분쯤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 김나현(23·가명) 씨가 돌봄 센터로 향하기 전부터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나현 씨는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만의 언어로 목소리를 높이며 온몸으로 차량 탑승을 거부했다. 도보로 10분 거리인 센터에 도착하는 데 꼬박 30분이 걸렸다.
센터에 도착하고도 곧잘 들어가는 날이 없다. 2주 전에는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뜻을 알아달라는 듯이, 휴대전화를 던져 수리비만 53만원이 나왔다. 이처럼 나현 씨는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 수범(53·가명) 씨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 최중증 자폐로 태어난 아이
2002년생인 나현 씨는 엄마 뱃속에서 나온 순간부터 여느 아기들과 달랐다. 눈동자가 한곳으로 몰려 있었고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는 일이 없었다. 두 살 터울인 동생이 '엄마', '아빠'를 또렷하게 발음하는 것과 달리 나현 씨는 3살이 다 되도록 옹알이조차 못했다. 결국 그 해에 '최중증 자폐' 진단을 받았다.
학교에 가는 길도 험난했다. 일반 학교의 교문이 열렸던 날은 입학식 하루뿐이었다. 신입생들이 모인 운동장에서 산만하게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본 담임교사가 "왜 이런 아이를 학교에 보냈냐"고 말했던 것이다.
결국 자신처럼 지적·자폐성 등 발달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성인 전공반까지 14년을 보내도 개선은 보이지 않았다. 몸만 커졌고 정신연령은 여전히 만 4세에 머물렀다.
나현 씨는 하루에 반나절 이상 휴대전화를 들여다볼 정도로 스마트폰에 집착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달라', '동영상을 틀어달라'는 요구를 끝없이 쏟아낸다. 디지털 기기에 서툰 수범 씨가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잠들기 전까지 같은 말을 수백번 되풀이한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난폭하게 돌변한다. 지난달 중순에는 달리던 차 안에서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아버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운전대를 잡은 수범 씨가 멈춘 동영상을 해결해 주지 않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가족 휴대전화를 낚아채고 들여다볼 만큼 집착이 심했어요. 진료 중이던 의사 선생님 전화기를 뺏은 적이 있었죠. 그걸 던져 부수기라도 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인지 능력이 부족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지난해 10월 눈앞에서 유방암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나 나현 씨는 여전히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외갓집에 머물렀다는 기억만 남았다. 수시로 수범 씨에게 "외할아버지!"라고 말하며, 외갓집에 가고 싶다는 뜻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납골당으로 데려가 "이제 엄마는 이 세상에 없어"라고 숱하게 얘기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수범 씨는 하는 수 없이 하루에 많게는 3번씩 외갓집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 제압 어려울 만큼 불어난 체중
나현 씨는 특수학교 성인 전공반에서 보낸 2년간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돌봄 부담을 견디기 버거웠던 가족이 기숙사에 보냈던 것.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주말마다 체중은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나현이는 욕구 해결이 안 되면 폭력성을 보이다가도, 음식을 주면 진정돼요. 기숙사에서 이걸 알고 계속 음식을 건넸던 것 같아요."
60㎏ 안팎이었던 체중은 2년 만에 102㎏로 늘었다. 56㎏에 불과한 수범 씨의 두 배에 가까운 무게다. 왜소한 아버지가 자신을 제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껏 알아차린 나현 씨는 행동에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어김없이 찾은 외갓집. 센터에서 점심을 먹고 왔음에도 나현 씨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생라면 한 봉지를 뜯어 먹고는 라면을 끓여 달라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활동지원사가 제지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현 씨는 팔을 휘두르거나 냄비를 던지려 하며 맞섰다. 결국 힘으로 제압하고 뜨거운 라면을 2분도 채 되지 않아 비워냈고, 다시 생라면을 꺼내 씹어 삼켰다. 이 모든 일은 불과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졌다.
음식 앞에선 제어가 어렵다. 편의점에서 눈에 띄는 건 집어 들자마자 입에 넣고 있다. 딸의 체중이 늘면 안 된다고 판단한 수범 씨는 본가 냉장고와 라면이 놓인 선반에 자물쇠를 두 개나 걸어 잠갔다.
◆ 한눈팔면 실종에 경찰 신고
자폐성 장애는 충동과 욕구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잦다. 나현 씨도 마찬가지다. '버스 타기'에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누군가의 통제가 없으면 홀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도 활동지원사가 잠시 화장실을 간 틈을 타 홀로 사라졌다. 수범 씨가 위치 추적 앱을 켜고 쫓아갔지만 이미 730번 버스를 타고 칠곡경북대병원 방면으로 떠난 뒤였다.
나현 씨의 휴대전화에는 착신음이 요란하게도 울렸으나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댈 줄을 몰랐다. 결국 실종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게 됐다. 이렇게 지난 10일간 경찰을 부른 횟수만 3번에 달한다.
"경찰은 사건이나 사고에 매달려야지, 실종 신고 담당하라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승객들이 가득한 버스도 멈춰 세워야 하고, 나현이 한 명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붙들려 있는 건지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돌봄의 손길도 쉽사리 유지되지 않는다. 나현 씨는 지난 1년간 활동지원사만 여럿 돌려보냈다. 과체중에다 예측 불가능한 돌발행동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서다.
"지금 활동지원사도 지인을 통해 수소문하면서 구했어요. 최중증이라서 다른 발달장애인보다 많이 힘들어하시는데, 이분마저 그만두면 앞으로 새롭게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온전히 제 몫으로 오는 건 아닌지 미래가 무섭습니다."
더 큰 문제는 수범 씨도 이미 중장년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세상을 떠나면 나현 씨가 의지할 곳은 여동생밖에 없다. 그러나 동생은 언니의 반복되는 말과 행동에 이미 지친 상태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결국 시설 또는 센터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폭력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장애인거주시설 등에서 거부당한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수범 씨는 딸의 미래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에는 이거 하나입니다. 제가 나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해요. 그런데 저는 당뇨도 있고 성한 곳이 없어요. 제 명이 언제까지 따라줄지 알 수 없다 보니 우리에게는 미래라는 것이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