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건축인문기행] 상하이의 공중정원, 천안천수(千安千樹)

입력 2025-10-30 12: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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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공중정원
바빌론 공중정원

신바빌로니아 바빌론의 통치자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정략결혼으로 먼 고향을 떠나 타국에 온 사랑하는 아내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궁전 발코니 옥상 전체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몄다고 전해진다. 물을 끌어올려서 울창한 수목 정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 속의 일이었다. 지상 높은 곳의 정원은 신의 세계, 곧 유토피아와 닿아 있었기에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전설적 불가사의(不可思議) 건축으로 전해진다.

코로나 시절, 상하이 'M50 예술지구'를 찾아가는 겨울 아침 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건물이 있었다. 기둥마다 나무를 이고 있는 이상한 형태의 건축은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연상케 하는 상하이의 공중정원 '천안천수'였고 금방 완공된 건물은 채 정리되지 않아 커피 한 잔을 마실 여유도 없었다.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설계한 이상한 건축은 곧 세상에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는 몇 해 뒤, 올 여름 다시 찾은 공중정원은 푸름이 울창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하이의 공중정원
상하이의 공중정원 '천안천수- 천 그루의 나무'

◆천 그루의 나무, 천안천수(千安千樹)

중국의 물길 이름은 장강(長江) 황하(黃河)처럼 '강(江)'과 '하(河)'로 구분된다. 상하이의 황푸강(黃浦江) 서쪽으로 흘러드는 쑤저우허(蘇州河) 북측 강변에는, 멀리서 보면 울창한 동산처럼 완만해 보이는 건축물이 있다.

'대양정전 천안천수(大洋晶典 千安千樹)'라는 긴 이름의 이 건물은, 불교적 어감을 지닌 이름 뒤에 '천 그루의 나무(1,000 Trees)'라는 영어 명이 덧붙는다. 실제로 나무가 천 그루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건축 전체가 나무에 의해 지배되는 '역전(逆轉)의 건축'임은 분명하다.

건물은 사각형 박스의 근대주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경 패러다임으로 건축 경관을 재구성하려는 혁신이다. 강변 쪽 건물 높이를 낮추어 전체적으로 동산처럼의 자연 곡선을 만들고, 400개의 발코니가 층층이 쌓여 특별한 도시 풍경을 형성한다. 건물 벽체에서 노출된 콘크리트 기둥은 구조적 지지체이자 각각 독립된 화단으로, 9미터 간격의 모듈마다 나무 한 그루씩 심겨 있다.

400개의 발코니와 함께 기둥 꼭대기는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한 화단이다.
400개의 발코니와 함께 기둥 꼭대기는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한 화단이다.

노출 콘크리트 기둥은 안도 다다오의 매끈한 표면과 달리, 가로 무늬 질감으로 나무처럼의 자연 감을 더한다. 기둥은 뿌리가 되고, 화단은 둥지가 되며,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란다. 건축가 헤더윅은 '2010'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건축에서는 '씨앗'을 심었고, 10년이 지난 이 강변의 공중정원에서 그 씨앗들이 숲이 되어 자라난 셈이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천정 자연광이 스며드는 오픈된 아트리움으로, 밝은 빛이 공간 전체를 채운다. 아트리움에는 '생명의 예 나무'가 천 그루 나무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눈길을 끈다.

아트리움 내부 공간의 상징, 생명의 기둥
아트리움 내부 공간의 상징, 생명의 기둥 '예나무'
자유롭고 대담한 색채 조합이 인상적인 화장실 디자인.
자유롭고 대담한 색채 조합이 인상적인 화장실 디자인.

6층에는 헤더윅이 설계한 세계 각지의 건축 작품 패널들과 함께 천안천수의 모형이 전시된 작은 갤러리가 있으며, 안쪽 공간에 상하이 설계 스튜디오가 있어 이 건물 매력에 빠진 건축고객을 기다리고 있는 듯도 하다. 건축가는 작은 화장실 공간 설계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디자인 실력을 발휘한다. 이곳 역시 그의 유쾌한 감각이 숨어 있어 마티스를 연상시키는 그래픽과 자유롭고 대담한 화장실이 인상적이다.

건물 남측의 입면
건물 남측의 입면 '스트리트 아트 캔버스'는 도시 속 예술 공간을 제공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도시의 기억

북쪽 강변의 녹색 테라스 기둥 화단이 전원적 풍경을 만든다면, 남측도로 변의 커튼월 입면은 상업적 도시 이미지로 양면성으로 나타난다. 모간산로(莫干山路) 50번지 예술 지구로 연결하는 남측 7층 건물 벽면은 도시 속 예술 공간을 의도하는 '스트리트 아트 캔버스'로 불린다. 그러나 보행자 눈높이에서의 높고 거대한 예술 벽면은 현란한 상업 광고처럼 스쳐 지나가 버리게 된다.

황푸 강 연안(bund)들이 그렇듯, 이 지역도 과거 공장과 창고가 즐비했던 근대 산업 지대였으며 상하이 엑스포를 준비하며 환경개선 개발사업이 시작되었다. 1913년에 세워진 이곳 밀가루 공장에서 상하이 전체 60%를 생산했다고 한다. 나무 사이에서 유달리 강조된 동판 플레이트 표면의 강변 쪽 엘리베이터 타워는 사라진 공장의 종탑 이미지를 '예술탑(Art Tower)'으로 재해석하는 설계이다.

인근의 'M50 예술지구' 역시 근대 유산의 골목으로 가내공업 주택 창고들이 변모하여 갤러리 작업실 카페의 상하이 문화 관광 골목이 되었다. 빈티지 예술 거리 풍경과 거대한 상업건축과의 대립적 도시풍경이 서로 상생하게 될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변모할지? 개발의 뒷모습이 본능적? 으로 궁금해지는 것이다.

천안천수 1차는 2021년 12월 완공되었고, 2차는 호텔 및 업무시설의 훨씬 크고 높은 규모로 건설되어 2개의 건물이 서로 연결하고 있어 전체 1km 길이의 산맥이 되었다. 쑤저우 허에 접하여서 강변 산책로와 조각공원 등으로 연결하는 녹지 공간, 공중정원의 '천안천수'는 민간개발의 상업건축이면서도 도시 공공건축에 기여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이 자리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지 않았을까?

상하이의 공중정원
상하이의 공중정원 '천안천수- 천 그루의 나무'.

◆지구환경과 탄소 비용의 딜레마

고전적 건축의 3요소가 '기능, 구조, 미'였다면, 현대 건축은 이제 '에너지 효율, 지속 가능성, 탄소 비용'이 새로운 기준으로 떠올랐다.

천안천수의 공중정원은 인공지능 센서로 토양 수분과 빗물 순환을 제어하며 유지·관리된다. 그러나 그 유지비용과 기술 의존성은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이것은 진정 지속 가능한 건축인가?" 하나의 건축이 연간 21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2,000명분의 산소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콘크리트 화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를 상쇄하려면 155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공중정원은 인간의 기술이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낳은 풍경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 한계를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개의 발코니'와 '천 그루의 나무'는 삭막한 고층 도시 속에서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인간의 심리적 안정에 기여하는 건축적 대안으로 평가되며 기술과 자연,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이 건축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화단은 인공지능 센서로 토양 수분과 빗물 순환을 제어하며 유지 관리된다.
화단은 인공지능 센서로 토양 수분과 빗물 순환을 제어하며 유지 관리된다.

◆토마스 헤더윅, 상상력의 건축가

건축적 수사를 넘어서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찬사까지 받는 영국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1970~ )은 스스로를 건축가가 아닌 '디자이너'라 불리기를 원한다. 건축 출신이 아닌 디자인 전공자로 23세에 런던에서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건축, 가구, 조각, 패션, 공공미술 등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적 작업을 이어왔다.

그가 설계한 드라마틱한 계단 조형건축 뉴욕의 '베슬(Vessel)'은 연이어 발생한 자살 사건과 건물 폐쇄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곳 '천안천수' 역시 2022년 '중국 10대 추악한 건축물' 1위에 선정되는 아이러니를 겪기도 한다. 그의 작품이 겪는 수난(?) 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실험적 창작의 여파이다.

현재 그는 '한강 노들 글로벌 예술섬'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이는 뉴욕 '리틀 아일랜드'와 상하이 '천안천수'의 구조적 디자인 방법론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다. 2년 전, 서울에서 건축전을 가졌고 지금 개최되고 있는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어 한국과의 건축 인연도 한층 가까워 졌다.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