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억원대 로맨스 스캠 조직 총책이 캄보디아에서 한국 대사관을 직접 찾아왔지만 별다른 제지없이 귀가한 당시 상황이 담긴 통화 녹음이 공개됐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측은 적색수배 사실을 직접 고지했고, 현지 경찰에 알리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22일 YTN은 지난해 11월 총책 강 모 씨 부부가 여권 연장을 위해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을 방문했을 당시의 음성파일을 보도했다. 강 씨는 한국에서 120억 원대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으로 수배 중이었고, 인터폴 적색수배 상태였다. 그러나 대사관은 강 씨에게 수배 사실을 직접 통보한 뒤, 별다른 조치 없이 귀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강 씨가 여권 발급 불가 사유를 묻자, 대사관 직원은 직접 수배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녹음에는 강 씨와 대사관 직원, 한국 경찰 수사관이 전화로 나눈 대화가 담겨 있다. 한국 경찰 수사관이 적색 수배 사실을 왜 알려줬는지 묻자 대사관 측은 "적색 수배 여부는 제가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저희가 여권 발급을 안 해주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을 민원인한테 해야 한다"고 했다.
대사관 측 설명에 수사관이 당황하며 "그러면 이제 강 씨가 귀국하지 않고 계속 숨어 있을 수도 있지 않냐"고 묻자, 대사관 직원은 "그건 장담 못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자수 권유 말고는 대사관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또한 대사관 측은 민원인으로 찾아온 강씨를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것에 대해 "모양새가 좋지 않고 부담스럽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대사관 측은 "모양새가 안 좋다"며 "자기 제 발로 들어온 민원인을 대사관에서 경찰 영사가 전화해서 잡아가라 이거는 조금 좀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처럼 대사관은 적색수배자가 직접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 무효 처리 외에 신병 확보나 현지 경찰과의 공조 등 실질적 대응은 하지 않은 채 강 씨를 그대로 돌려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녹취록에 따르면 강 씨는 수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듯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피싱 범죄와의 연관성을 부인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반복했다. 그는 "아버지와 선교활동 차 방문했다"고 주장하며, 친구에게 명의를 빌려줬던 일 외에는 특별한 혐의가 없다고 해명했다.
강 씨는 "제가 친구 통해서 명의를 좀 빌려달라고 그래서 명의 제 것과 아내 명의를 빌려준 적은 있다"고 했다. 이후 수사관이 "빨리 귀국해서 조사받아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강 씨는 즉답을 피하며 시간을 끄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강 씨는 "제가 지금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요. 제가 일단은 제 와이프랑 좀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라고 얼버무렸다.
결국 강 씨는 대사관을 빠져나간 뒤 자수하지 않았고, 잠적했다. 강 씨가 실제로 체포된 것은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사관은 뒤늦게 현지 경찰에 사건 경과를 알리면서 강 씨는 캄보디아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강 씨 부부는 이후 한 차례 석방됐다가 다시 체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범죄인 인도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캄보디아 측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송환이 지연되고 있다.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강 씨 부부의 송환을 캄보디아에 공식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이번 송환 명단에서도 강 씨 부부는 제외된 것으로 파악됐다.
법무부는 캄보디아 측에 강 씨 부부 송환 외에도 사망한 대학생의 수사 기록 제공과 스캠 대응센터 협력, 향후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경우 협조 등을 요청했다.